V. 맺는말
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노선과 에큐메니칼 노선이 서로 대립, 갈등
을 경험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
로교만 해도 고려파와 총회신학 측은 에큐메니칼을 거부하고 있고, 한국
신학계통은 에큐메니칼의 좌측을 걸어가고 있고,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통
합측은 복음주의 노선으로 나가면서도 건전한 에큐메니칼을 지향하려 하
고 있다. 물론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한 교단들의 교회 가운데도
에큐메니칼의 부정적 측면들을 비판하는 교회들이 있고, 복음주의를 지향
하는 교단들의 교회 가운데도 에큐메니칼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는 교회
들도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WCC의 분과보고서와 WCC의 지나
침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반응에서 우리는 이 두 진영 사이에 대립
갈등만을 발견하는가 아니면 어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종교개혁 전통이 18세기 영미 계통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거쳐
19세기의 복음선교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고,1910년의WMC 이후 1921년과
1923년의 IMC의 역사를 통해서 1927년 로잔의 "신앙적 직제"로 이어져
1948년부터는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의 복음주의전통 보다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노선이 자리잡기 시작하였지만, 우선 우리는 종교신학과 19세기의
복음주의 전통이 신정통주의적 복음주의와 결코 단절하는 관계를 갖고 있
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1927년 이래 "신앙과 직제"의 역사는 신앙과 신학 차원에서
의 에큐메니칼을 지향해 온바 1975년 나이로비의 WCC 가 세례,성만찬,직
제의 관한 "신앙과 직제"문서 제73호를 인정한 이래, 1982년엔 'BEM
(Beptism, Eucharist and Ministry;세례,성만찬 및 직제)'문서를 낳았고,
1983년 벵쿠버의 WCC이후론 "성경과 초대교회에 나타난 사도적 신앙"에
관하여 계속 연구케하고 있다. 그래서 역대 "신앙과 직제"문서들에 나타
난 사도적 신앙"(여기에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사도신조 등을 취
급한다)으로 표현된 WCC 의 신앙과 신학은 신정통주의적 경향으로 나감에
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 복음주의와는 물론 세계교회의 신앙
내용과도 기본적인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WCC (1948)의 형성과정에서 IMC (1921년과 1923년)와
"삶과 사업" (1925)의 역사가 이미 교리와 신학을 초월하는 사회윤리 차
원의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있음을 보았고, 1952년 윌링겐의 IMC
가 주장한 '하나님의 선교'이래로 WCC 의 '선교'개념이 점차 복음주의의
복음전도 개념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사회참여가 1968년 웁살라의 WCC와 1973년 방콕대회(CW
ME)에서 절절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WCC 의 모든 분과보고서는 북음과 교회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
여라고 하는 두개이 기둥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
는바 심지어 1968년 웁살라와 1973년 방콕에서조차 이 두 기둥이 긴장
가운데 버티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적어도 우리는 이같은 WCC 의 두
얼굴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기둥이 (비록
신정통주의적이긴 하지만) 종교개혁전통과 19세기의 복음주의전통으로부
터 결코 단절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이후 1960년대 WCC 의 선교개념과 교회의 과격한
사회참여에 대응하여 등장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세계대회들을 나열했고,
특히 "프랑크푸르트 선언" (1970) "로잔 언약"(1974), "마닐라 선언"(19
89)에 나타난 성경과 복음, 복음전도의 개념 및 교회의 사회참여에 관하
여 인용하였다. 일찍이 1968년 웁살라 WCC 의 분과보고서는 교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 세계의 필요 앞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실제적으로 이단이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위의 3개의 복음주의 문서들은
결코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닐
라 선언"에 와선 교회의 사회적 행동이 매우 강조되고 있으며, 심지어 교
회가 구조악에 대응하는 사회적 행동까지 해야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주의 교회들은 WCC로부터 결코 '이단'이란 정죄를 받기에 합
당치 않다. 뿐만 아니라 위 세 문서에 나타난 복음과 복음전도의 개념 그
리고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 "신앙과 직제"의 전통, 나아가선WCC
의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기둥과 결코 불연속선상에 있지 않
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였다.
우리는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상화 비판적으로, 서로 보완
적으로 그리고 상부상조하면서 오늘의 20세기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복음주의는 에큐메니칼이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경향에서 현
대사회의 구조악을 바로 보아야 하고 에큐메니칼의 '탈교회중심주의적'사
회침투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 동시에 에큐메니칼 측은 무엇인가 배워
야 한다. 동시에 에큐메니칼 측은 성경, 복음, 교회 등 기독교의 본질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복음주의 계통에서 자신의 정체성 위기의 극복 가능성
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엇이 서로 다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무엇이
서로 같은가를 강조하면서 피차간에 신앙의 형제됨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은 유럽에서 기원했고, 미국을 거처 우
리나라에 들어왔는데, 한국의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대립은 미국 '근본
주의'와 '자유주의' 대립의 한국적 재판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한국의
'복음주의'는 사실상'성서주의(biblicism)'에 가깝기 때문에, 종교개혁적
이고 신정통주의적 복음주의가 진정한 복음주의이며 이 북음주의는 wcc
의 "신앙과 직제"의 전통과도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