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각의 뒤쪽 맞배지붕 모습입니다.
올라오는 이의 시야를 가로막지 않도록 외벽을 안쪽으로 깊숙히 집어 넣었으며,
풍벽도 달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극락의 세계로 가볼까요?
안양루의 부석사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라고 하네요.
화엄종찰로써 어떻게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신앙을 융합하였을까 살펴보았더니
의상대사의 중국 유학시절 스승인 지엄대사도 화암신앙과 정토신앙 모두를 아우르는 분이었다고 하네요.
아울러 둘이 하나요. 하나가 곧 둘이라는 화엄사상의 융합정신이 작용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동시대 인물인 원효대사께서 설한 '일체유심조'와도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이런저런 사상과 설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만 그랬거나 말았거나,
무량수전의 넘치는 기품은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자석과 갖습니다.
1994년 한국의 건축가 2백명에게 가장 잘 지은 고건축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건물도
바로 이 무량수전이지요.
무량수전의 편액은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이곳으로 피난 왔다가 돌아가면서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니 34-49-44의 늘씬한 배흘림기둥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부연이 그다지 길지 않아 기둥 아래쪽은 비바람이 심한 날, 물기의 침범을 수시로
받았을 터인데, 아, 어찌 이리도 1천년의 세월을 강건히 유지하고 있는지...
몇 번의 중창을 거치면서 상한 부재는 새것으로 갈았겠으나, 끼워 맞춰야 하는 목조건축의 특성상
원형을 잘 지켜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심플한 공포만으로도 1천년을 너끈히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네요.
그저 정방형 무늬의 연속인 창살에도 눈길이 머뭅니다.
부석사 이름의 출처가 되는 뜬돌 부석.
뜬돌의 주인공인 선묘 아가씨 이야기는 선묘각으로 패쓰.
사진촬영 금지라고 무량수전 입구부터 써 있더라구요.
사진에 욕심이 많은 저이지만 법당 안에 상주하시는 보살님까지 계셔서
가볍게 목례를 드리고, 불상의 양식과 위를 막지 않아 천장 부재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지붕 안쪽 등등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데, 보살님이 일부러 자리를 비켜 주신 건지 물을 버리러 자리를 비우셔서
한컷 남겼습니다. ^^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만, 선불교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불교에서 불상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 이치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선불교(선종)의 그 유명한 중국 선승인
단하 스님(739~824)의 소불단하 이야기를 찾아보심 좋겠습니다.
아! 혜곡 선생님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찾고 또 찾으셨다'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 보는 일망무제의 소백 풍광입니다.
안양루에 걸려 있다는 중수기의 내용을 빌려봅니다.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이 발 아래 다투어 달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이 가슴 속으로 거두어들어오니 가람의 승경이 이와 같음은 없더라"
방랑시인 김삿갓이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 읊었다는 싯귀의 마지막 두행만 남겨봅니다.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을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무량수전 오른쪽 뒤에 1칸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선묘각입니다.
선묘각 내부의 선묘 아가씨 그림입니다만,
아직 세월의 후광을 받지 못해서인지 이곳에 모시기에는 조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묘아가씨는 의상대사가 중국에 공부를 하러 갔을 당시 의상대에게 마음을 준 중국 처자입니다.
의상이 위국할 때 몸을 바다에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신라까지 무사히 보내주고,
부석사 창건 당시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이교도들을 돌이 되어 그 위에 떠서 시위를 함으로 하여
그들을 내쫓고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짓게 해주었다는 분입니다.
지금도 용으로 변한 선묘아가씨가 석룡이 되어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 속에 있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
일본에서는 선묘아가씨를 화엄사상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절과 신사 등을 지어서
기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1천년전 만든 선묘아가씨 목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교토박물관 수장고에 있답니다.
부석사의 일몰은 장엄하기로 유명하지요.
일행들이 노을을 감상하는 동안 저는 조사당과 응진전 등을 다녀옵니다.
조사당 앞의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조사당 자체도 국보 제19호로 지정된 고격이 넘치는 건물이랍니다.
조사당 안에 모셔진 의상대사 조각입니다. 그 뒤로 의상의 일대기를 팔상도에 비추어 그린 듯한
탱화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의상의 스승인 지엄대사와 중국 화엄의 1대조 두순 스님으로
추정되는 영정이 있습니다.
왼쪽의 신장그림은 원래 있던 그림의 모사본이며, 원본은 무량수전으로 옮겨서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조사당 오른쪽 벽에는 선묘아가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선묘각에 안 계시더니 조사당으로 이사하셨네요. ^^;
언제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선생이 1994년에 쓴 책에
조사당 내에 '선묘아가씨'가 함께 모셔지지 않음이 매우 안타깝다고 했는데,
이렇게 함께 계시니 정말 보기에 좋습니다.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면 응진전과 자인당이 나옵니다.
응진전 내부입니다. 응진전이란 전각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시는 전각의 이름이랍니다.
자인당입니다.
본래 선방의 용도로 쓰던 건물인데, 동쪽 15km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운 석불을 이곳으로
옮겨서 당호를 '자인당'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이는 부처님을 자안대사라고 하는데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옆에는 단하각이라고 있습니다.
이 전각 이름은 모시는 분이 다양해서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이제 슬슬 내려갈 때입니다.
눈이 있어서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해동화엄종찰'
부석사의 위상을 말해주는 편액이 일주문 뒤쪽에 자리합니다.
무량사 식당에서 맛나는 저녁을 먹습니다. ^^
식당에 걸려 있던 사진
밥을 먹고 나왔더니 어느새 어두워졌네요.
나오는 길에 찰칵!
이틀간 우리와 함께 한 버스에 승차합니다.
선비문화수련원 강당에서 소백산자락길과 순흥에 대한 다양한 역사문화 강의를 경청합니다.
강의는 배 위원장님께서 직접 맡아주셨습니다.
열심히 경청중인 걷기동호인 여러분들.
십승지에 속한다는 양백지간과 다양한 특산물이 있는 곳,
음이온이 많아 건강에도 그만인 순흥만의 자랑들을 다양하게 예시를 들어가며 알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순흥에 대해 정말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첫댓글 선묘아가씨의 전각은 오른쪽에 있었군요^^
눈으로, 사진으로 바쁘게 살피는 발견이님 시선이 그려집니다.
상식을 넓히는 후기네요. 감사드립니다^^
실제보다 사진이 더 멋져보이는 건 찍는이의 시선때문이겠죠~^^
처음 가 본 부석사 무량수전의 감흥 다시 생각이 나네요...
멋진사진 감사합니다. ^*^
대기지수 오존 미세먼지농도 0.단위의 구름 한점 없이 최고로 청명한 날
부석사 삼층탑 뒤에서 바라보는 선명한 해넘이는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넘 멋지네요~~좋은시간 보내신분들 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