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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한테 주문이 많으심
전에 일본오사카(?)인가 고베 콘서트중에 중간에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멘트를 넣겠다.
라고 했었는데 일본쪽에서 절대 안된다고 했었데요 . 근데 나훈아 씨가 그 멘트 안넣으면
공연 안하겠다. 라고 으름장을 놨데요. 야쿠자에게 협박도 당했다고 했지만 결국 쾌지나칭칭나네
라는곡에 독도는 우리땅을 넣어서 불렀다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요 얼마전에 어떤 나라가 독도는 즈그 땅이라고 하는데 오늘 확실하게 매듭집시더.
독도는 우리땅!-
남대문 도깨비시장을 다녀보면 어느 한 가게에서만 팔고 있는 독특한 물건을 보게되는 때가 있다. 이런 물건은 예외없이 비싼데도 가격을 깍기가 어렵다.
물건값의 흥정이란 게 다른 가게에서의 가격도 한편으로 들먹이며 시작하는 법인데, 비교할 대상조차 없으니 말붙이기조차 힘들다. 이런 경우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여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상점의 주인뿐이다.
'가격결정권'이란 상품의 판매가격을 좌우하거나 자유로이 판매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이런 결정권을 가진 '가격결정권자'의 행위는 지극히 주도적이고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런 개념을 전제로 가격결정권을 '자기결정권'이라는 삶의 한 명제로 확대적용해 보면, '자기결정권'이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나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내 의지대로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 자기결정권에 의해 최종적으로 규정된 자기가 타인에게 얼마나 용인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자기결정권이란 한마디로 내가 '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아의 힘이다.
그렇게 본다면 모든 인간에게 '자기결정권'이란 부연설명이 구차할 만큼 지당하고도 필수적인 삶의 지침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
현대인이 많이 겪는 노이로제 중에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는 질병이 있다. 공황장애는 극심한 불안이 예고없이 온몸을 뒤덮듯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운전중이나 대화도중, 또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것만같은 불안이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나타난다. 임상학적으로 그 불안의 강도는 사형집행 직전의 사형수가 경험하는 불안감의 서너배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의 근원은 불안이 엄습하는 그 순간 내 몸, 내 정신이 나의 콘트롤밖에 있다는 느낌, 즉 자기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불안을 공포로까지 심화시킨다.
바로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에 대해 거의 본능적인 공포와 불안감을 갖는다. 가장 걸리지 말았으면 하는 병으로 사람들이 치매나 중풍을 꼽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과 몸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자기결정권'을 자각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슈퍼스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가수 나훈아는 매우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람이다.
'최고'라는 이미지가 나훈아만큼 잘 어울리는 대중예술인은 흔치 않다.
자신을 상업적으로 내놓고 싶지 않다는 그의 고집만 아니었다면 나훈아는 진작에 고급 자동차 광고나 맞춤형 자산관리 광고 모델로 등장했을 것이다.
옷로비 청문회 때는 장관부인들이 단체로 '나훈아쇼'를 보러간 사실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상류층 사람들에게도 그의 공연 표 한 장이 '쓸만한 뇌물'이 될만큼 나훈아는 '최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난 96년 나훈아는 한 방송국의 '나훈아 쇼'를 통해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10억원짜리 옷을 입고 무대에 서면서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비싼 의상을 입은 가수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나훈아의 말은 이렇다.
"나는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한다.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부를만한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도 따지고 보면 궁극적인 지향점은 '나훈아=최고'라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이미지 또다른 나(이미지 만들기)"라는 제목의 TV프로그램에서 해설자는 나훈아의 자기관리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훈아. 그 인기뒤에는 방송출연을 극도로 자제하고 절대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대중에게 궁금증과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철저한 이미지 관리가 숨겨져 있다"
베일속에 가려진 그의 사생활과 완벽한 무대공연은 이미지 메이킹과 관련된 TV 다큐멘터리의 한 성공사례로 등장할만큼 철저하고 지속적이다. 데뷔한지 35년이 넘었지만 나훈아의 '스타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견고해 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 불가사의한 인기의 원천은 상상을 초월하는 '나훈아식 자기결정권'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해 추석 TV를 통해 방영된 나훈아 콘서트의 제목은 '대한민국 소리꾼, 나훈아'였다. 또 몇 년전 5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해 만들었다는 나훈아 음치탈출 클리닉 비디오의 타이틀은 '대한민국 나훈아'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 나훈아'라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에 걸맞지 않는 나훈아의 모습은 대중에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대중들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대한민국 대표가수, 나훈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점에서 나훈아의 '자기결정권'은 경이적이다. 나훈아 자신이 규정하고 싶은 '자기의 모습'과 대중이 인식하는 '나훈아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내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이 있게 마련인데 그게 바로 '이상적 자기(Ideal Self)'다. 나훈아의 '이상적 자기'를 향한 집념은 강력하고 확고하다. '이상적 자기'를 향한 자기결정권은 필요한만큼의 능력과 의지가 수반되어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자기결정력은 놀랍다. 나훈아가 주창하는 '이상적 자기'는 그의 스타론에 다름아니다.
나훈아는 '스타는 구름 한 점없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스타는 뭔가 보통 사람과 달라야 하며, 대중연예인 특히 스타는 완전히 갖추어진 모습이 아니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거나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때도 정장을 입는 것 또는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훈아의 스타의식은 유명하다. 방송가에선 한번 '떳다'하면 시청률이 보장되는 보증수표로 통하기 때문에 한번에 1억 이상의 출연료를 제시하며 '모셔서' 특집프로그램을 하려 하지만 그는 오라는 대로 다 가지 않는다. 스타는 자기가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오랫동안 하늘에서 스스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잘난 척 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스타의식의 전부는 아니다.
나훈아는 스타가 스타다운 대접을 받으려면 스타로서의 자존심과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밤무대에 설 때면 꼭 사람을 미리 보내 그 업소의 자금사정에서부터 무대의 조명시설, 오디오 등까지 낱낱이 파악한다고 한다. 만일 밤업소의 자금사정이 어려울 때는 아예 개런티를 낮춰 부르는데, 일단 요구한 개런티는 절대 깍아주는 법이 없단다. 개런티는 바로 자신의 자존
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공연요청이 올 때 늘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그러한 스타의식의 연장선상이다.
"당신네 나라의 슈퍼스타가 받는 개런티와 4명의 수행원을 붙일 것, 호텔은 최일류로 스위트룸이어야 하며 음식도 가장 비싼 것으로...."
현란한 몸짓으로 섹시함을 과시하던 가수도 일단 무대에서 내려오면 순박한 청년이나 처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비공개적인 자리에서도 나훈아의 스타의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나훈아는 국내외 어느 호텔에서든 '최고가의 방'에서만 묵고 팁을 줄 경우 호텔 종업원 모두를 불러 확실하게 준단다. 어느날 그와 무척 가까운 동료 연예인이 나훈아에게 "왜 맨날 최고급 방에서만 묵냐? 그리고 웬 팁은 그렇게 뿌리냐?"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에 대한 나훈아의 대답은 이렇다.
"야가 뭐라쿠노? 임마야, 내가 이래도 한국 대표가수 아이가? 내가 이런데서 잘해놔야 후배가수들이 와도 대접을 잘 받지 싶어 그런다 와? 톱(top)은 그 값을 해야 되는기다. 구질구질하게 굴먼 안되는 기다"
'밤이 깊어도 연구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어느 제약회사 광고 카피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가수, 나훈아'라는 스타의식은 아무리 장소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병적일 만큼 폐쇄적인 일상, 스타의 사생활? 묻지마소!
나훈아의 철저한 프로정신과 엄격한 자기관리는 전설처럼 인구에 회자된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콘서트 무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공연외의 시간에 밖에서 나훈아를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의 일상생활은 거의 병적일만큼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술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법도 없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약속을 하는 일도 없으며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일도 거의 없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자 그의 대답은 '묻지마소'였다. 모르는 게 있어야 궁금한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혼자 노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혼자서 멜로디를 구상하고, 책을 읽고 남는 시간엔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을 시작한 것도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수들이 큰 공연을 끝낸 뒤 밀려오는 허전함은 무대에 서본 사람만 안다.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딴 짓을 하게되면 내 몸만 축난다. 나는 공연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미친 듯이 화폭을 메운다"
나훈아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과 TV뉴스를 보는 것도 큰 공부이기 때문에 절대 빼놓지 않고 본다. '갈무리'나 '무시로'같은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한 잡지는 나훈아의 자기관리 비결을 이렇게 분석한다.
"대중예술은 클래식과 달리 걸러지는 체가 없다.
학벌을 갖춰야 할 필요도 없고 권위있는 콩쿠르에서 수상한 경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대중스타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유지시켜 나가는 능력까지 갖춘 이는 적다. 근 30여년을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나훈아는 독서의 힘이라고 말한다. 독서를 통한 지식이 스스로 자신을 거르는 체가 되었고 세상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는 책에서 자기관리의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훈아의 자기결정권은 극대화된다. 그는 스스로를 잘 포장하고 숨길줄 알며, 목마른 이의 갈증을 채우듯 화려하게 무대 위에 나타나는 순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완벽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공연에 대한 그의 집착과 노력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2시간짜리 공연을 거의 혼자서 기획, 연출, 출연하면서 엄청난 물량과 피나는 연습을 거친다. 덕분에 그의 공연 스태프들은 매번 녹초가 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공연을 할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땀을 안 흘리고 노래하는 가수는 다 가짜 노래를 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단순히 목으로만 부르는 게 아니라 온 몸을 써서 노래를 토해내다보면 저절로 땀에 젖는다는 것이다. 나훈아의 공연관(公演觀)은 그의 성격처럼 화끈하다.
"다음 공연을 위해 아껴두지 않는다. 몽땅 쏟아 붓는다. 비싼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
일본 대중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 이규형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려면 30-40대에게 '그 돈을 내고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을 갖게 해서 관객층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 해답은 '완벽한 준비'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일본 가수들의 한국 공연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우리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준비기간이었다. 거액의 개런티를 주겠다는데도 '준비기간이 10개월밖에 안 남아서 못 하겠다'는 경우를 봤다. 우리가 보통 2-3개월 만에 준비하던 마인드로는 이해가 안된다."
나훈아는 이규형 감독이 말한 '완벽한 준비'를 하는 몇 안되는 대중예술가 중 하나다. 그와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훈아는 섭외가 누구보다도 어려운 가수지만 일단 무대에 섰다 하면 그의 표현대로 죽기살기로 비지땀을 흘리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가수들이 흔히 지방 밤업소에 서고 나서 '형편없는 밴드 때문에 노래 다 망쳤다'고 투덜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일단 출연을 약속했으면 형편없는 밴드조차 그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수준까지 연습시키고 나서야 무대에 세운단다.
그 모두가 진짜 프로페셔널 나훈아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해 그는 생전 처음 TV 드라마 주제곡을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했는데 그 노래의 홍보를 위해 이례적으로 TV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하면 '기대치'가 있으니까 부담스럽다고 심적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만일 가수도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면 나훈아에겐 '특급'을 줘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평가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가수, 팝에서 트로트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가수, 현존하는 트로트 가수 중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모든 세대에게 먹힐 수 있는 유일한 가수, 트로트계의 슈퍼스타라는 수식어가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전부터 가수 나훈아가 지향하는 컨셉트는 '젊고 건강한 나훈아'인 듯 하다. 21세기를 여는 첫 콘서트에서는 너덜너덜 찢어진 낡은 청바지에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하얀쫄티, 텁수룩한 수염, 희끗한 머리로 무대에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그가 늘 얘기하듯이 팬들이 자신을 보며 "언제적 나훈아야, 아직 괜찮네"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였단다. 자신이 늙어 보이면 그 노래를 애창해 온 팬들이 스스로 더 늙어버린 것 같이 느낄 수 있으므로 그런 차림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연예인이라지만 찢어진 청바
지와 민소매 셔츠가 어울리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그렇게 흔치는 않을 것이다.
돈에 대한 감각이 없을만큼 벌고 또 쓰며 산 남자,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보일 만큼의 정상에 오른 50대 중반의 남자가 지금도 자신의 노래를 위해, 자신의 무대를 위해, 하루 3갑씩의 줄담배를 새삼스레 끊고, 병들지 않고 건강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하루 두 시간씩 운동을 한다. '젊고 건강한 나훈아'라는 목표를 위해 "춤에는 영 '제로'"인 나훈아가 최근 공연에서는 테크노 댄스까지 선보이고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의지에 비해 '이상적 자기'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으면 강박증 환자가 되기 쉽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그 목표가 매우 낮다. 나훈아는 '이상적 자기'를 거의 천상의 수준에 올려놓고도 그에 준하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나 의지를 두루 가진 특별한 사람처럼 보인다.
나훈아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유달리 '자기결정권'이 강한 것은 그의 특별한 능력이나 의지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듯 싶다. 그 첫째는 아마도 타고난 그의 건강에서 비롯하는 육체적인 자신감일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권투, 야구, 태권도 등 안해 본 운동이 없는데 초등학교 때 야구실력 때문에 학교에서 놓아주지를 않아 2년을 더 다니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도 1년을 더 다녔단다.
가수생활을 하면서도 '상당히 빠르고 좀 센' 싸움실력으로 무례한 깡패들을 제압하다가 경찰서에 폭력으로만 일곱 번을 드나들었을 정도다. 지금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나훈아의 몸매는 또래의 중년남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건하고 탄력적이다. 많은 경우 신체적 건강은 심리적 당당함을 수반하며, 심리적으로 당당한 사람은 자기결정권 사용에 거침이 없다. 그만큼 매사에 주도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훈아가 '자기결정권'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도 충분한 '휴지기'를 거친, 남다른 그의 연예 경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편의상 나훈아의 연예생활 경력을 세 부분으로 나눠보면 이렇다. 첫 번째는 데뷔 때부터 군복무전인 26세까지고, 둘째는 군복무 3년과 그후 6년의 휴지기로 26세에서 35세까지의 시기, 세 번째는 30대 중반에 연예계 컴백 후 현재까지의 20여년 세월이다.
나훈아는 십대 후반에 민요의 창법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창법으로 '가지마오'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을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7년여 동안 가수로서 정상의 인기를 원없이 실감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어렸을 때라 청중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면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어서 그 맛에 정신 못차리고 무대마다 불려 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다.
남진과 가요계를 양분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팬클럽 탄생 등 새로운 가요신화를 창조하던 나훈아는 74년, 조금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다. 군복무 중 1년 반정도 트럭을 가설무대 삼아 노래를 하면서 위문단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나훈아는 군입대를 계기로 정상의 인기를 뒤로 한 것이다.
인간 최홍기로 살며 내공을 쌓았던 '나훈아 패턴'
76년6월, 3년 간의 군복무를 마친 나훈아는 개인적인 이유로 가수활동을 중단한다. 특별한 은퇴공연이나 기자회견은 없었지만 그로부터 6년 간 나훈아는 일체의 연예활동을 중단한 채 지방의 한 도시에서 사업에만 몰두한다. 사업에 대한 그의 집착이나 미련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므로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내가 개인적으로 '휴지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나훈아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은 듯 하다. 군복무를 합치면 거의 10여년의 세월이지만 특히 30대초반부터 중반까지 6년동안 나훈아는 '스타 나훈아'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고 좀더 객관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깊이 발담그고 있던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관전자의 입장에서 다른 연예인들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유심히 살펴보았으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타를 배우고 책을 읽는 등 '인간 최홍기(나훈아의 본명)'로서 내공을 쌓는 데 주력했다. 급하고 직선적인 자신의 성격을 '기(氣)'가 짧은 것으로 자가진단한 나훈아는 기가 길어지는 한 방법으로 동양화와 붓글씨공부를 병행하기도 했다.
훗날 한 잡지에서 나훈아는 이 시기를 회고하며 '만약 그 기간이 없었다면 인간적으로 이만한 깊이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중예술가로서 그의 독특한 감수성도 이 시기에 본격적인 토양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훈아는 총 200여장의 앨범에 2600여곡을 발표했으며 그 중 800여곡을 직접 작사, 작곡할만큼 탁월한 싱어송 라이터인데, 자작곡의 대부분은 그가 휴지기를 거치고 가요계에 컴백한 후 발표된 곡들이다.
81년 본격적으로 가요계로 돌아온 나훈아는 그때부터 방송출연을 자제하면서 공연에 주력하는 현재의 '나훈아 패턴'을 정립해 나간다. 흥미있는 것은 컴백후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과의 인터뷰 횟수나 방송출연이 점진적으로 줄어들면서 현재와 같은 공연 위주의 방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대중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대한민국 대표가수, 나훈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결정권을 점점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노출하고 완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자신
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훈아식 자기결정권'은 자신이 규정한 '이상적 자기'를 목표로 설정한 다음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채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고문자와 피고문자'의 관계처럼 100%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과 자기결정권이 거의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나훈아를 출연시키거나 인터뷰하기 위해서 '더러워 죽겠지만' 꾹 참고 그의 처분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PD나 기자들은 그 말뜻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나훈아는 그 긴 세월동안 대중들이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서 적절하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 그런 점에서 대중예술가로서 나훈아의 감각은 탁월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자기모습보다는 외적인 잣대에 의한 방법론적 차원의 자기결정권은 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을 종래는 강박적이거나 또는 단순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가령 '아들에게 존경받는 남자'로 인정받고 싶은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목표를 향한 자신의 방법론에 치우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
설정목표 자체에 대한 강박적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부작용을 '나훈아식 자기결정권'에 적용하여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얘기다.
요즘은 유행이 되다시피 했지만 아마도 나훈아만큼 호텔 디너쇼를 많이 개최한 가수도 없을 것이다. '고급 이미지'를 지향하는 나훈아의 컨셉트와 특급호텔의 상업주의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일 터이다.
어느 해 어버이날, 디너쇼 형태로 열린 나훈아의 공연장에서 나는 씁쓸한 경험을 했다. 지금도 효도선물 중 으뜸으로 나훈아의 콘서트를 꼽는 사람이 많다는 조사결과처럼 그곳에 참석한 대부분의 관객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다. 그들에게 부적절해 보이는 식단도 그랬지만 정작 문제는 무대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좌우로 벌어진 좌석 배열이었다.
중앙좌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양 날개 좌석들은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라서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쪽으로 가서 선 채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비록 나훈아의 구성진 가락과 흥겨운 몸놀림에 묻혀 버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자손들의 짜증과 조금이라도 더 무대를 잘 보려고 고개를 길게 빼고 앉아있던 노인들의 그 안타까움이라니.....
그러나 그 몇 개월 후에도 나훈아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또 다른 컨셉트의 디너쇼를 개최했다. 나훈아는 20년 가깝게 1년에 수십회의 콘서트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콘서트에 온 관객 중 70% 이상은 공연장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훈아의 공연에는 '볼 게 많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래서 나훈아가 디너쇼를 하면 한 장에 15만원정도 하는 티켓이 사흘 안에 다 팔린다고 한다. 입장료가 비싸기는 하지만 나훈아가 최고의 무대를 보여 주어서 관객들 입장에서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최고의 입장료를 내고 최고의 무대를 보고 왔다'는 자랑거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건 언젠가 나훈아가 밝힌 자신의 공연에 대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 소문처럼 두 번 다 그의 공연내용은 훌륭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훈아는 공연이 임박하면 며칠밤을 현장에서 새우면서 공연의 구성에서부터 음향, 조명, 특수효과까지 모든 연출을 직접 도맡아 한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객석에서 자신의 공연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 가에 대한 시각적 계산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나훈아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상업적 이유 때문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방치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건 어쩌면 '나훈아식 자기결정권'의 한 부작용일지 모른다. 내가 지향하는 이미지를 향한 자기결정권 행사에만 몰두하다보니 그 대상(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는, 매우 심각하지만 어이없는 그런 오류같은 것. 공연내용에 대한 어느 팬의 애정어린 지적도 비슷한 맥락의 얘기일 것이다.
심각하지만 어이없는, 자기 결정권의 부작용
"나훈아는 자신의 성적매력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공연에서 약간은 그런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치다보니 양념이 많이 들어간 요리를 먹는 기분이었다"
공연때마다 반복되는 '우히히히' '으히히히!'하는 나훈아 특유의 웃음에 대해 '유치함의 매력'을 상품화시킨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그런 부적절하고 억지스러운 웃음이 관객의 수준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콘서트 때는 손짓 하나 눈빛 하나까지 면밀하게 계산한다는 '나훈아식 자기결정권'을 고려한다면 그런 웃음에 더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브의 지존'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매년 50여회 정도 개최되는 그의 공연은 독특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성공요인 중의 하나로 그의 탁월한 비즈니스감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훈아가 '휴지기'를 가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때문이었지만 그는 연예계로 돌아온 81년 이후에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수도없이 반복했다. 지난 80년대 초반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훈아는 "아직도 내 책상에는 경영학 원론, 비즈니스 위크같은 책들이 놓여 있다. 공부를 해서 세계를 다니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80년도 후반의 한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15년전부터 AFKN을 보면서 영어를 익혔다며 "나는 사업이 잘 맞아요. 이 다음에 돈벌면 꼭 무역업을 해보고 싶어요"라며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자신의 가수생활을 '아주 많이' 후회하고 있다는 고백도 수없이 발견된다. 주로 이런 내용이다.
"항상 후회속에서 살아왔어요. 모르고 가수생활을 시작했어요. 성격적으로는 전혀 가수가 안 맞아요. 이제와서 이 일을 놓을 수도, 버릴 수도 없어서 기왕에 하는거 베스트를 다하는 거지 다시 태어나면 절대 노래를 안할 겁니다"
심지어 남자는 영구직업을 택해야 하는데 연예인은 영구직업이 아니므로, 노래를 그만두고 인간 최홍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각오를 다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 최홍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업이다. 대한민국 최고가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사업에 대한 미련을 얘기하는 나훈아를 보면,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상에 선 자의 사치스러운 오만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질투심 비슷하게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전력을 다해 달려드는 상대방을 가볍게 쓰러뜨리고서 "내는 한 발만 써도 이 정도다. 근데 두 손과 두 발을 다 사용하면 어떻겠노?"라고 말한다면 바닥에 누운 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지금도 한국과 일본의 음반제작회사와 미국의 무역회사 등 몇 개의 기업체를 운영하는 나훈아를 주위사람들은 '최회장'이라고 부른단다. 아마 나훈아 본인이 원하는 호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 '최회장'을 만난 사람의 전언에 따르면 그의 방은 꼭 IT회사의 CEO사무실처럼 꾸며져 있다고 한다.
그런 비즈니스 마인드를 바탕으로 그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나 그의 사업가적 관심 혹은 자질에 대해서 왈가불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가수 나훈아를 바라보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사업가 타령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
동료 연예인의 감탄처럼 가수를 하지 않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계속했더라면 나훈아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병철이나 정주영이나 잭웰치를 능가하는 사업가나 경영자? 만일 사업가로서 그들만큼의 명성이나 업적을 이루지 못할거라면 나훈아는 정계입문을 권유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신이 했다는 말을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정계에 입문하면 그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누가 불러? 나 아니어도 정치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보다 이 노랠 잘 부를 사람은 없을테니 무대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 절정기를 맞고 있는 가수들 중에서 2,30년의 세월이 흘러도 자신에게 열광했던 팬들을 이끌고 지금의 나훈아처럼 유유히 문화의 강을 건널 수 있는 가수가 있을 것인가.
나훈아의 공연에 열광하는 중년의 팬들은 공연을 통해 자신이 그와 같은 세대라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게 되고, 우리 세대에도 이렇게 매력적인 스타가 있으므로 나도 동시에 매력적인 인간으로 계급 상승하는 느낌을 가지며 콘서트장을 빠져 나간다. 어느 신문기자는 2001년 나훈아의 체육관 공연을 '문화침공'이라고 명명하면서 "쇼도 쇼지만 구경하러 온 4,50대의 사람들이 더 인상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나는 현장에서 또 TV중계를 통해 그 공연을 다시 시청하면서 기자의 말을 실감했다. 그의 공연장에 함께 있던 중년의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온 일행과 얼굴을 마주보며 손뼉을 치고, 흥에겨워 일어서서 춤을 추며 말 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렇다. 나훈아처럼 완벽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 비록 현실세계에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도 그런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잠재의식의 충족이 그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이제 마지막으로 나훈아의 모창가수 나운하의 특이한 삶을 되돌아 보면서 얘기를 끝맺자.
나운하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나훈아의 모창가수 들중에서 최정상급이다. 지난 28년 간 나훈아 노릇을 하다보니까 자기가 진짜 나훈아인줄 아는 '착각병'까지 생겼다고 고백한다.
그는 나훈아의 국내외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 수십개를 수백번씩 보면서 단순한 모창뿐 아니라 나훈아의 동작과 말투 버릇까지 철저하게 연구한단다. 모창가수 나운하의 젊은 시절 사진과 지금의 외모를 비교해 본 가요평론가들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실제 외모까지 나훈아를 닮아가는 '진화'에 성공했다"고 감탄할 정도다.
이런 경우 모창가수 나운하의 자기 설정목표는 너훈아같은 다른 모창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진짜 나훈아와 가장 비슷한 이미테이션 가수"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운하가 행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은 수없이 많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퍼머하고,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따라하고, 튀어나온 턱뼈를 수술하고, 매일처럼 녹음실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모창가수 나운하가 진짜 나훈아를 능가할 수는 없다. 얼핏 다양해 보이는 그의 자기결정권들은 모두 '모창가수 나운하'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만원 한도내에서 물쓰듯 펑펑 쓰는' 셈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의 한 수단으로 생각마저도 나훈아와 닮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 박승창(모창가수 나운하의 본명)'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모창가수 나운하의 자기결정권은 표피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짜 프로페셔널임을 자임하는 슈퍼스타 나훈아의 '자기결정권'은 어떤 종류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문화의 변방으로 쫓겨난, 감정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받는 중장년들의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그렇게 쉽게 이끌어 내는 나훈아의 존재'가 너무 귀하고 고마워 노파심에서 던져 보는 질문이다.
출처는
정혜신씨가 운영하시는 심리분석연구소 같은곳이예요.
-모르겠습니다만은 요 얼마전에 어떤 나라가 독도는 즈그 땅이라고 하는데,
오늘 확실하게 집고넘어 가입시더. ~독도는 우리땅!-
다른건 모르겠고~그저 트롯가수로 치부하기엔~음악적 재능이 많으신거 같애요~
하
어느분야에 대단한건 대단한거고, 요즘 말나오는 그거하고는 다른문제징
팬으로써 요즘 나훈아씨를 부정적으로 보는것 같아 '나훈아는 이런면도 있다. 알고보면 멋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예요~
사랑이오다님 말씀에 동감/ 일은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잘못한일은 잘못한거고 비판받을일은 비판받아야죠.
전 이 글 정혜신씨가 쓴 책으로 읽었었는데 생각해볼게 많은 글이에요.
어느분야에서건 자기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건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겠죠. 개인적으로 트롯트 별로 안좋아하고 이분 노래할때 그특유의 웃는표정 느끼해서(?) 솔직히 아주 식겁을 할때가 많지만.. 사실 저역시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이 트롯트가수들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지만 무대에 임하는 자세나 트롯트가수란거에 대해서 전혀 주눅들지않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있는 거의 유일한 트롯트가수(개인생각) 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글이 너무 길어서 도저히 못읽어보겠네요. --;;
다 읽어봤는데 1위,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데에는 확실히 이유가 있어보여요. 하지만 도를 넘은 자신감은 오만하게 보일때도 있다는거-
길어서 중간중간 읽
중간중간 읽긴했는데 좋은글이네요.. 나훈아는 그냥 옛날에 한시대를 풍미했던 트로트가수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는데.. 예술가 경지시네요.. 고개를 끄덕이게되네요.... 멋지다..... 굿굿굿!!!!
뭐 사생활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요.. 부모님들한테 큰 기쁨을 주는 사람인거는 사실.. 부모님한테 나훈아 콘서트 표 선물했더니 너무너무 샤방샤방하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기억나서..
최고의가순 가수인거고 ... 아닌건 아니지 ..........
-_-아무리 그래도 부도덕한 인격은 좀0_-
솔직히 말해서 가수의 부도덕한 인격은 우리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죠...;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봉사의무가 있으므로 품위유지의무가 있겠지만 가수는 전~혀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