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묘비명
'장미빛 인생 룰루랄라'
3년전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우울감이 심했다.
주위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위로한다며
" 너는 무슨 고민이 있니? 너같이
속 편한 사람이 있을까? 니가 우을증이면 우리는 우울로 이미 다 죽었다."하며 우울해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잃은 단순한 상실감 정도니 곧 좋아지겠거니 했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불면증,어지럼증,
무기력증 등 다양한 증상을 보며 몸도 애도기간을 겪는 중이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도 우울감이 지속되고
점점 심해져 가던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어져 아버지가 계시는 망월동 가족묘지로
향했다.
"장미빛 인생 룰루랄라"
아버지의 묘비명을 다시 본
순간 마음이 벅차 오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진한 위로를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버지의 유언이라며 묘비명을 결정 하셨을 때
나는 심하게 반대 했었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좋은매너
영어,불어,일어 외국어도 잘 하셔
'영국 신사'라는 닉네임으로
에디뜨피아프의 'La vie en rose'
를 좋아하셨던 멋진 내 아버지의
묘비명은 장미빛 인생 (La vie en rose)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경박해 보이는 룰루랄라가
웬 말이람.
뜻을 꺽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아버지의 인생을 살펴 보았다.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들의 기대와 큰 포부로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외교관을 꿈꾸었으나 할아버지의 실직과 보증으로 고시를 볼 형편이 안되어
외국어 교사를 급하게 구하는 사립
학교에 6개월만 다니다 다시
시험 준비를 해야지 하셨단다.
그렇게 시작된 교직은 부모님의
병환,동생들의 진학,동생들의 결혼으로 다리를 붙잡다가 결국은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 평생
직업이 되었다.
아버지는 몽상가셨다.
어린시절 엄마에게 혼난
사남매를 모아놓고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동요를 가르쳐 주곤 하셨는데
'쉬르폰 다비뇽 옹리당스
옹리당스 꼼씨 꼼샤'
우리 사남매는 뜻도 모르는
그 노래의 불어 발음이 너무 재미
있어서 신나고 행복했고
아버지의 눈매는 아련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호인이라 법도 필요없는 사람
이지만 생활을 모른다고
불평 하시곤 했다.
장미빛 인생을 꿈꾸었지만
삶의 무게에 눌려 아버지의 인생도
녹록치 않고 마냥 장미빛 만은
아니었음을 이제야 안다.
꽤 오래전에 하하 문학기행에
부모님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안에서
진행자가 소감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조용히 샹숑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를
부르셔서 나도 깜짝 놀랐다.
숫기없는 아버지가 이런 자리에서노래를 부르시다니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오셔서 아버지가
"아란이가 하하에서 선한 사람들과
행복해서 참 좋구나.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드라.힘든일 기쁜일도 다 지나가지드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재밌게 살아라."하셨다.
내가 하하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시고 엄마께도 화요일은 아란이 바쁘니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아버지의 묘비 앞에 다시 선 순간
"아란아 힘드니? 세상사 별거 없단다.너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아라.
장미빛 인생이란 니가 최선을
다해 사는 삶 이란다. 쓸데 없는
고민말고 룰루랄라 신나게 살아라"
말씀 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3월이 되어 함께 살던 아들도
독립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우울감이 스며든다.
힘내서 예쁜 봄꽃 한 다발
들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
'장미빛 인생 룰루랄라'
아버지의 묘비명 앞에서 속삭여
드려야겠다.
"아빠 사랑해요"
첫댓글 저도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싶네요.
마음이 가라앉을 때 우리도 봄볕 맞으러 나가요. 룰루랄라~^^
아버님의 묘비명. 멋지십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너무 애틋해서 눈물이 납니다.
묘지명처럼 장미빛 인생만 사셨을거라 생각했는데 한국 전통의 여느 장남과 같은 희생적인 삶이셨네요. 장미빛 인생을 꿈꿨지만 녹록치않은 현실에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셔야만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묘비명,
'장미빛 인생 룰루랄라'!
서글픕니다.
호기롭고 유머, 위트, 명랑, 솔선수범, 활발함으로 늘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가온 님에게 아픈 마음이 있으리라 전혀 생각 못했습니다. 하하를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가온 님, 우리 하하 님들이 더 가까이 다가갈게요.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장미빛 인생' 함께 노력해요 우리.
버스 안에서 '장미빛 인생' 부르셨던 멋지신 아버지 모습, 아직도 생생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힘들었을 때에도
지금도 하하가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묘비명이 참 좋습니다. 저도 저런 센스있는 묘비명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언니의 위트와 밝음이 아버지를 닮으신거네요
역시 멋진 아버지에 멋진 딸이십니다.
3월의 따사로운 햇살 많이 받아 광합성하셔서
미모가 다시 피어나신 것처럼 새로운 힘도 솟아 나시길요
언니, 눈물 나요! 상실감 😭 ..
멋진 아버님의 멋진 묘비명처럼 살고 싶네요.
하하 새이름에 룰루랄라 넣고 싶어지네요.
오래전 시각장애인들과 문학 기행을 갔을때 부모님이 오셨었죠.
딸과 함께 참여하신 두분이 참 좋아보였고 부러웠었지요.
물론 장밋빛인생을 부르시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다시는 뵐수없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리워할수밖에 없는게 슬퍼요.
멋진 아버지는 잘 계실거예요.
장미빛인생 룰루랄라
아침부터 가슴 뭉클해지는 얘기네요
참 인생별거없다 다 지나간다라는 말씀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빈둥지 증후군 언니도 다 떠나 보내고오는 우울감인듯요
같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