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부채 증가 폭 문정권시대는 연 80조원 윤정부는 70조원 / 9/20(금) / 조선일보 일본어판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을 결정하는 국무회의에서 지난 정부가 5년간 400조원(약 43조엔) 이상 국가채무를 늘려 현 정부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 국정브리핑에서 "건전한 재정기조를 굳게 지킨 결과 국가재정이 더 튼튼해졌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문재인 정권이 5년간 정부 채무를 400조원 이상 늘린 것은 사실이다. 정확한 수치는 409조원이다. 그런데 건전한 재정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건 윤 정부도 2년 새 정부채무를 128조원 늘렸다. 세 번째 예산 편성인 2025년까지 포함하면 윤 정부가 3년간 늘리는 정부 채무는 209조원에 이른다. 연평균으로는 문 정부가 80조원, 윤 정부가 70조원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비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두 가지 있다. 문재인 정권 당시에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가 있었지만 윤 정권에는 그다지 특대의 돌발 악재가 없었다. 더욱이 윤 정권의 정부 채무에는 재정상 꼼수로 인한 변수가 숨어 있다. 윤 정부는 지난해 환관리자금을 적립해 둔 외국환평형기금에서 20조원을 빼내 세수 부족을 메우는 데 썼다. 이 자금은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 매각으로 얻은 자금이 원화로 적립된 것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기금이므로 정부 채무에는 계상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세수 부족을 메우는 묘수라는 주장도 있지만 전례가 없는 꼼수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3회계연도 결산분석'에서 "달러 대응 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를 향후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로 전환해 정부 채무의 질이 악화됐다"고 모호하게 지적했다. 쉽게 해석하면 정부가 새로 빚을 내는 대신 보유 자산을 팔았다는 의미다. 미래 세대가 쓸 수 있는 '군량'을 먼저 먹어버렸다는 의미에서는 빚과 오십보 백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4년 예산안을 보면 정부는 올해도 외평기금을 43조원을 인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지만 그대로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30조원 이상의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처럼 외평기금을 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의 꼼수도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21년 만에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8조원 이상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금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정부는 내년에 사상 최대인 201조원 규모의 국채도 발행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세수 부족을 더 이상 메우기 어려워지면서 국채 발행으로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방만한 재정운용 탓에 윤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정부부터 시작된 과도한 가계부채 때문에 내수 회복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감세가 반도체 경기침체 사이클과 맞물리면서 세수 펑크를 촉발한 점은 윤 정부의 불운 혹은 실책으로 볼 수 있다.
윤 정권의 어려운 정책 환경은 국민도 아는 바이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다 잘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체감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한 가지 드러난 것은 기초연금병사(병장) 임금 월 200만원, 대학생 75% 국가장학금 지급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보수정권이든 혁신정권이든 정부채무 증가세를 막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스스로 제동을 걸 수 없기 때문에 샌드백을 발로 끄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유럽처럼 재정 적자가 대 GDP비의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재정 준칙」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