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卯年 첫 산행.
며칠 째 계속되는 한파여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참석률 저조할까 봐서도 애태웠고, 힘든 산행될까 봐서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덜 추웠나 봅니다.
배낭 속 아이젠이 세상 구경을 못했거든요.
386년전 1월 30일 남한산성.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의 47일간의 처참했던 역사 현장을, 나라의 임금이 세자를 동반하여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빠져 나간 서문도 돌아 보았습니다.
김희국,이운식,정철권 해설사의 해설에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답니다.
참석했던 친구들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수고많았습니다.
[산행 결과 보고]
1. 산행지 : 남한산성
2. 일 자 : 2023.1.28.토.맑음
3. 참석자 : 김정윤,김희국,박재규,정철권(선약으로 하산 지점 남문에서 헤어짐),윤광진,이재선,하태용,이운식,안병식(9명)
4. 산행코스 : 10:00 산성입구역 집결→11:30 불망비→12:00 남문→13:20 수어장대→13:40 서문→북문→14:10 남한산성 종각 →14:20 행궁→14:55 남문→15:20 스포랜드 사우나→16:40 만찬장(목현리 원조오리농장)→18:00 종료
5. 수.지 내역
전월이월 2,064,093원
수입 : 참가비 240,000원(30,000원*8명)
지출 : 수수료40원
목욕비72,000원
식대 및 주대 188,000원
잔액 : 2,044,053원
6.토의사항 : 회비 인상 건. 8명전원의 찬성으로 20,000원에서 30,000원(2023.1월부터 시행)으로 인상 결의.
※2023년도에는 좀 더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산행코스와 비정기 즐길거리로 여러분을 초대할 예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적극 호응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사진↓올린 이 안 병 식
[사진]
조선 후기 문신 수어사 서명응, 부윤 홍일필, 이명중 세 사람이 백성을 사랑한 공적을 잊지 말자는 뜻을 새긴 것.
하나의 바위에 3기의 碑 형태로 되어 있으며 백색파도문이 수려하다.
점심을 마치고13:00↑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 방귀 사건으로 회자되는 위인, 당시 경기도지사 이익홍이 이승만의 팔순을 기념해 제막한 송수탑. 높이 8M의 팔각탑 꼭대기에는 청동 봉황새를 조각해놓았다는 탑. 1961년2월4일 해체되고 지금은 원탁테이블처럼 보이는 구조물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설명도 없다. 정철권 해설사의 해설에 의하면 탑은 땅밑에 묻혔고, 탑으로 오르는 계단80계단 중 40계단은 해체되고 지금 현재는 40계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인조15년 1637년 1월 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빠져 나간 바로 그 문.
↑↓守禦將臺.남한산성의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라고 불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으나 영조 27년(1751년)에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고 되어 있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헌종2년(1835년)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 그 형 박주수가 쓴 것이다.
이 동종의 몸체에 새겨진 글귀에 따르면 고려 현종1년(1010년)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고려 태조4년(921년)에 태조가 창건한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의 천흥사에 있었다. 높이170㎝,입지름100㎝의 크기. 현재는 용산 국립박물관에 소장. 남한산성 종각의 종은 2012년에 원형의 문양 및 형태를 그대로 재현,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해 약 3배정도 더 크게 제작한 것인데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겼는 지는 알 수 없다.
↓남한산성 행궁
첫댓글 안회장님의 정성들인 산행기를 잘 보았습니다.
이번 남한산성 못갔는데 산행기를 보고 통한의 역사 말고도 그곳에 숨겨진 많은 비사들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품도 안팔고 거저 얻은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