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부림절[ Purim ]
hanjy9713
2023.11.15. 19:37조회 19
부림절
[ Purim ]
요약 이스라엘 민족이 페르시아의 총리 하만이 꾀한 유대인 절멸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
1. 축제 정의
부림절(Purim)은 매년 이른 봄, 히브리력의 마지막 달인 아다르(Adar) 월 14일 또는 15일에 지내는 유대교의 축제로 그레고리력으로는 2월에서 3월 사이에 해당한다. 『구약성경』의 「에스더서」(Esther)에 등장하는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권력자 하만(Haman)의 음모에서 유대인 동포들을 구해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부림절은 다른 종교적 절기에 비해 세속적인 성격을 지니며 유대인들이 마음껏 취하고 소란스럽게 즐기는 기쁨의 축일이다.
부림절을 맞아 「에스더서」를 낭독하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맞아 페르시아 총리 하만의 유대인 멸절 계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에스더를 기리며 시너고그에서 「에스더서」 두루마리를 낭독하고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에스더는 유대인 모르드개(Mordecai)의 사촌으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의 왕비가 된 인물이다. 그녀가 유대인을 모두 없애려는 하만의 음모에서 유대인들을 구출하기에 앞서 금식을 했다고 전해오기 때문에 부림절 전날에는 금식을 하고, 부림절 당일에는 유대교 사원인 시너고그(synagogue)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한다. 「에스더서」에서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장난감 ‘그레거’(Gregger)을 돌려 하만의 이름을 지우는 풍습이 있다. 이날 유대교 가정에서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만찬을 열고 ‘하만의 주머니’라는 의미를 가진 전통 과자 하만타셴(Hamantaschen)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또한 친구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보내고 가난한 이를 도우며, 거리에 나와 가장 행렬을 벌이거나 장난감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축제를 즐긴다.
부림절의 거리 행렬
부림절이 되면 온 거리와 광장이 축제의 장이 된다. 대규모 거리 행진과 떠들썩한 공연이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2. 축제 어원
‘푸림’은 제비뽑기나 주사위를 의미하는 아람어 ‘푸르’(pur)에서 온 말이다. 하만이 제비뽑기로 유대인을 학살할 날짜를 정한 데서 ‘푸림’이라는 축일의 이름과 날짜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림절, 부림제 등으로 부른다.
3. 축제 유래
부림절은 유대교의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토라, 곧 모세 5경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부림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1) 「에스더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부림절의 유래는 『구약성경』의 「에스더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기전 6세기 말경 페르시아는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많은 유대인을 메소포타미아로 끌고 가 박해했다. 그 중심에 교만한 총리 하만이 있었다. 하만은 문지기인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기를 거부하자 이를 빌미로 유대인을 전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Ahasuerus,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청해 전국에 이에 관련된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사촌 동생이자 수양딸로 유대인임을 숨긴 채 왕비가 된 에스더로 인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고함으로써 유대 민족을 구해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던 처형대에 대신 매달렸고 하만의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은 유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이렇듯 부림절은 유대 민족이 죽음에서 벗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해방의 날이며, 유대인은 여러 기념일 가운데 부림절을 가장 유쾌하게 보낸다. 이 역사로 인해 유대인에게 ‘하만’이라는 이름은 절대적인 악인이나 일반적인 원수의 대명사가 됐다.
아르트 더헬더르, <에스더와 모르드개>(1865)
에스더 이야기는 예술 작품의 주제로 애용됐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아르트 더헬더르(Arent de Gelder)의 작품으로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비에게 하만의 음모를 고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부림절의 기원을 설명한 「에스더서」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의 발생 시기는 크세르크세스 1세(서기전 486년~서기전 466년 재위)가 통치하던 서기전 5세기경인데 반해, 이 경전이 편집된 시기는 서기전 2세기 초 셀레우코스(Seleucos) 왕조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억압하던 시기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에스더서」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느헤미야서」, 「에즈라서」 등에 나타나지 않으며, 쿰란(Qumran)에서 「에스더서」 이외의 모든 경전이 발견되었고 이들 경전 대부분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에스더서」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논쟁을 부추겼다.
게다가 「에스더서」에는 신의 이름인 여호와(יהוה)나 성전(聖殿)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다른 경전에 비해 세속적인 특성과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띤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이 이민족에게 관대해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았으며 경전의 기록과 페르시아 궁중 관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연대가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에스더서」가 후대에 기술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에스더서는 유대 민족을 살피고 이들을 절멸의 위기에서 구하는 신의 은혜가 가장 잘 드러난 경전으로 평가된다.
2) 여러 가지 유래
부림절의 유래를 성경이 아닌 곳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부림절이 「에스더서」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하던 명절에 가상의 역사가 덧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에스더서」에 기술된 사건이 바빌로니아 신화를 받아들여 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모르드개가 바빌로니아 신화의 으뜸 신인 마르두크(Marduk)에서, 에스더가 바빌로니아의 여신 이슈타르(Ishtar)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부림절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축제인 파르바르디간(Farvardigan)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파르바르디간은 초기 페르시아 제국 시기에 행해지던 모든 영혼들의 축제로, 조로아스터 달력 마지막 달에 5일간 열렸다고 전한다. 이 축제 때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파수꾼으로 세우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유대인 유민들이 받아들인 이 전통이 후에 부림절로 유대 역사에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림절 축제에 등장하는 가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장난감, 만찬 등이 성경이 등장하기 이전의 이교 의식에서 기원했다고도 한다. 역사가 하임 샤우스(Hayyim Schauss)는 『유대인의 축제』(The Jewish Festivals)에서 “부림절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는 하만과 관련이 없다. 부림절은 고대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과 관련해 치르던 의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에는 계절이 바뀔 때 사악한 영이 큰 힘을 가지고 모든 것에 해악을 끼치려 한다고 믿었고, 이 사악한 영에 대항하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 바로 소음이었다”라고 썼다. 이스라엘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스라엘 고(古)유물청은 웹 사이트에 흙으로 만든 고대 가면과 소리를 내는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
4. 축제 역사
1) 부림절의 역사
서기전 100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경(外經) 「마카베오서 하」 15장 36절에 “그들은 모두 이날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념일로 지내자는 결의에 따라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그날은 열두 번째 달, 아람 말로는 아다르 달 열사흗날이며 모르드개의 날 하루 전날이었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에 나오는 ‘모르드개의 날’이 바로 부림절을 가리키는데, 시기적으로 「마카베오서」의 배경이 서기전 2세기였다는 점을 들어 이 무렵부터 부림절 축제를 즐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세기에 고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저서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에서 에스더 이야기를 부연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 책이 93년경 그리스어로 작성된 것을 고려할 때 요세푸스가 살던 1세기에 이미 부림절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유대 축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2세기 무렵에 부림절은 히브리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널리 행해지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유대 법전인 『미쉬나』(Mishna)에 따라 부림절에 시너고그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는 전통이 생겼다. 로마 제국의 침입으로 인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이후에도 유대인 유민들은 부림절을 지켰다.
이러한 역사는 부림절을 금지하려던 로마 당국의 기록으로 확인된다. 유대인에게는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하만 인형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었는데, 408년 동로마제국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가 이 관습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서로마의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Flavius Honorius) 황제 역시 하만 인형 태우기 풍습을 금지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관습은 9~10세기까지 이어졌으며 14세기에도 종종 행해졌다고 한다. 20세기에도 이란과 쿠르드 족이 살고 있는 쿠르디스탄(Kurdistan)의 일부 공동체에서는 부림절에 하만 인형을 태우는 전통이 이어졌다.
히틀러 또한 부림절을 금지했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 다음 날인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는 연설에서 “유대인은 하룻밤에 페르시아인 7만 5천 명을 난도질했다. 만약 독일인에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유대인들은 독일에서도 새로운 부림절을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는 유대교의 명절에 맞춰 유대인을 공격하기도 했다. 1942년 부림절에는 고대에 유대인이 하만의 아들 열 명을 매단 것에 대한 복수로 유대인 열 명을 처형하는가 하면, 1943년에는 폴란드 피오트르쿠프(Piotrków)의 유대인 집단 거주지에서 유대인 열 명을 사살했다. 같은 해 부림절 전날에는 쳉스토호바(Częstochowa)에서 1백 명이 넘는 유대인 의사와 그 가족들이 나치의 총에 사살됐고, 그 이튿날에는 라돔(Radom) 출신 유대인 의사들이 시드워비에츠(Szydłowiec)에서 저격당했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는 이렇게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또 다른 부림절을 만들어나갔다. 핍박과 고통에서 벗어난 역사를 공동체의 부림절로 삼고 기념한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부림절 가운데 프랑크푸르트에서 부림절 바로 다음 주에 치르는 ‘푸림 빈츠’(Purim Vintz)가 유명하다. 이날 이 지역의 유대 공동체는 1616년에 유대인을 말살시키려 했던 빈첸츠 페트밀히(Vincenz Fettmilch)의 계획을 저지한 일을 기념하고 있다.
또 다른 공동체 부림절인 ‘푸림 타카’(Purim Taka, 창문 부림절)는 1741년에 벌어진 사건에서 비롯됐다. 현재 팔레스타인 땅인 헤브론(Hebron)에 자리한 유대인 공동체에 엄청난 세금이 부과됐고,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지 못하면 죽거나 노예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때 유대인 구역의 시너고그 창턱에서 세금과 정확히 일치하는 금액의 금화가 발견됐다.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해 헤브론의 유대인들은 ‘푸림 타카’를 지낸다. 이렇듯 부림절은 유대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지속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 부림절의 날짜
유대인은 모든 명절이나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히브리력을 사용한다. 유대력이라고도 부르는 히브리력은 태음태양력으로 한 달이 29일이나 30일이며 1년은 353일, 354일 혹은 355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19년 주기로 윤달을 7번 추가해 날짜를 맞추되, 윤달은 마지막 달인 아다르(Adar) 월 앞에 넣는다. 이때 중간에 끼워 넣은 윤달은 ‘첫 번째 아다르’라는 의미의 ‘아다르 알레프’(Adar Aleph), 매해 되풀이되며 윤년에는 뒤로 밀리는 아다르 월은 ‘두 번째 아다르’라는 의미의 ‘아다르 베트’(Adar Bet)라고 이른다. 일반적으로 하루가 자정에 시작해 자정에 끝나는 것으로 여기나, 히브리력에서는 해 질 무렵 하루가 시작되고 다음 해가 질 때 하루가 끝난다.
부림절은 아다르 월 14일, 그레고리력으로는 2월이나 3월 사이에 해당한다. 부림절의 그레고리력 날짜는 고대 히브리인이 태음력을 사용하던 전통에 따라 매해 달라지는데 안식일과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안식일에는 「에스더서」를 비롯한 유대의 연례 절기를 다룬 다섯 권의 경전 두루마리 메길라(Megillah)를 읽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윤달, 즉 첫 번째 아다르 월이 추가되는 해에는 두 번째 아다르 월의 14일을 부림절로 정한다. 이는 최초의 부림절이 윤년의 두 번째 아다르 월에 치러진 것을 따르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경우에는 부림절을 아다르 월 15일로 잡는다. 「에스더서」 9장 18절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에 있던 유대인들은 15일을 경축일로 지켰고, 그 외 지역의 유대인들은 14일을 명절로 지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5일의 부림절을 ‘수산 부림’(Sushan Purim)이라고 부른다. 유대의 법전 『미쉬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15일에 부림절을 축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땅 안에서도 성벽이 없는 텔아비브(Tel Aviv)는 아다르 월 14일에, 고대부터 성벽이 있던 예루살렘은 아다르 월 15일에 부림절을 기념한다.
한편 윤년에만 돌아오는 첫 번째 아다르 월의 14일을 ‘작은 부림절’이라는 의미의 ‘푸림 카탄’(Purim Katan), 15일을 ‘수사의 작은 부림절’이라는 의미의 ‘수산 푸림 카탄’(Shushan Purim Katan)이라고 부른다. 작은 부림절 또한 기쁜 날로 여겨 금식과 장례를 금하지만 축제를 열지는 않는다.
유대 가정의 부림절
절멸의 위기에서 벗어난 기쁨을 나누는 부림절에 유대인들은 푸짐하게 먹고 마시며 즐긴다. 부림절 점심부터 시작되는 식사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가정에서 즐기는 부림절 만찬
부림절에는 오래된 풍습에 따라 주로 견과류와 전통 과자, 만두와 비슷한 음식 크레플라흐(Kreplach)를 먹는다.
5. 축제 주요 행사
일반적으로 유대인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림절은 모세 5경에 기록된 절기가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다. 이날 유대인들은 시너고그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고 가정에서 부림절 파티를 연다. 예배 의식에는 다른 날과 달리 묵도인 ‘아미다’(Amida)를 올리고 식후에 ‘알 하니심’(Al hanisim)’을 추가한다. 알 하니심은 ‘기적을 위해서’라는 의미의 특별한 기도로 하누카에도 낭독한다
한편 부림절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미츠바’(Mitzvah, 계율)가 있다.
첫째, 시너고그에서 「에스더서」 낭독하거나 이를 듣는다.
둘째, 친구들에게 음식이나 선물을 보낸다.
셋째,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푼다.
넷째, 축제 음식을 먹는다.
1) 「에스더서」 낭독
미츠바 가운데 첫 번째로 언급되는 것이 시너고그에 모여 「에스더서」 두루마리를 낭독하는 일이다. 유대인들은 절기에 따라 정해진 ‘메길라’(Megillah)를 읽는다. 메길라는 유대 절기에 관련된 책 다섯 권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메길라’하면 「에스더서」를 가리킨다. 「에스더서」가 대략 서기후 70년에서 250년까지를 이르는 미쉬나 탈무드 시대 초기에 시너고그에서 낭독되는 유일한 두루마리였기 때문이다. 부림절에 시너고그에 모여 「에스더서」를 함께 읽는 것은 민족의 역사에서 기인한 부림절의 의미에 따라 공동체 의식을 더하기 위해서다.
「에스더서」를 읽을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먼저 구속에 관한 네 구절(2장 5절, 8장 15절~16절, 10장 3절)은 큰 소리로 읽는다. 또한 유대인을 몰살시키려 했던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시너고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각자 준비한 도구를 사용해 소음을 내고 발을 구르며 야유를 보낸다. 「에스더서」에는 하만이 총 54번 나오며, 9장 7절에서 10절 사이에 나오는 하만의 아들 열 명의 이름은 이들이 한 번에 처형된 것을 상기하며 단숨에 읽어야 한다.
2) 선물 교환과 이웃 돕기
대부분의 축제와 마찬가지로 부림절 역시 민족과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는 축일이다. 「에스더서」 9장 22절의 “이달 이날에 유대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을 얻어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해 길한 날이 됐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라는 구절에 따라 부림절에는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미슐로아흐 마놋’(Mishloach Manot)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부림절 바구니라고도 불리는 미슐로아흐 마놋은 부림절에 선물하는 음식과 마실 것을 뜻하며 한 사람 앞에 최소 두 가지 종류의 음식물을 보내야 한다. 기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는 풍습은 「에스더서」가 쓰이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느헤미야서」 8장 10절에는 핍박에서 벗어나 모세 5경을 다시 공식적으로 낭독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가난한 자들에게 선물을 보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때 음식물을 두 가지 이상 보내는 이유는 ‘마놋’이 복수형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림절의 풍습
부림절에는 가난한 이에게 도움을 주거나 가족과 지인에게 음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유대의 종교법인 할라카(Halakha)에도 부림절에는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음식을 보내고 가난한 사람 두 명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너고그에서는 부림절에 맞춰 정기적인 자선 행사를 열고 기부금을 받기도 한다.
미슐로아흐 마놋(Mishloach manot)
부림절에 주고받는 음식 선물을 ‘미슐로아흐 마놋’(Mishloach Manot)이라고 부른다. 이때 음식물은 두 가지 이상이어야 한다.
3) 부림절 음식
기쁨을 나누는 부림절에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는 것이 용인된다. 일반적으로 점심부터 저녁까지 푸짐한 음식을 먹고 부림절 오후가 되면 축하연을 연다. 14세기에 쓰인 책 『마세켓 푸림』(Masechet Purim)에는 부림절에 먹는 고기 요리가 무려 27가지에 달했다고 쓰여 있다. 부림절에 반드시 먹는 요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견과류와 강낭콩
부림절에는 호박씨나 해바라기씨, 호두 등의 견과류와 강낭콩을 먹는다. 견과류를 먹는 것은 에스더가 궁에 살면서 유대인의 율법 코셔(kosher)를 지키기 위해 견과류만 먹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또한 강낭콩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장례식 때 먹어온 음식으로, 강낭콩을 먹으며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애도한다.
② 하만타셴(Hamantaschen) 또는 오즈네이 하만(Oznei Haman)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중부와 동부에 주로 거주했던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은 양귀비 씨나 치즈, 과일을 넣어 만든 삼각형 모양의 파이 하만타셴 또는 오즈네이 하만을 먹는다. ‘하만타셴’(Hamantaschen)은 ‘하만’(Haman)의 이름과 가방 또는 주머니를 뜻하는 독일어 ‘타셴’(Taschen)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하만의 주머니’라는 뜻이다. 하만의 ‘만’과 발음이 비슷한 양귀비 씨앗 ‘몬’(Mohn)을 주요 재료로 삼으며, 하만의 주머니가 항상 뇌물로 가득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한편 이 과자의 다른 이름은 ‘하만의 귀’라는 의미의 ‘오즈네이 하만’(Oznei Haman)이다. 파이가 삼각형인 것이 하만의 귀를 닮았다는 설, 하만이 즐겨 썼던 모자가 삼각형인 데서 따왔다는 설이 있으나 뚜렷한 근거는 없다. 일부 사람들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삼각 모자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계 유대인 세파르디(Sephardi)는 파주엘로스(Fazuelos)라고 하는 과자를 먹으며 이것을 ‘하만의 귀’라는 뜻의 에스파냐어 ‘오레야스 데 하만’(Orejas de Haman)이라고도 부른다.
부림절에 먹는 과자 하만타셴(Hamantaschen)
부림절에 먹는 전통 과자 하만타셴은 ‘하만의 주머니’라는 뜻으로, 양귀비 씨나 치즈, 과일을 넣어 만든다. 양귀비 씨의 발음이 하만의 ‘만’과 비슷한 것과 하만의 주머니가 항상 뇌물로 가득했던 것을 빗대어 만든 것이다.
③ 크레플라흐(Kreplach)
크레플라흐는 고기와 으깬 감자, 양파 등을 소에 넣어 빚은 뒤 닭 육수에 끓여 먹는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한 음식으로, 아슈케나지 공동체에서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레플라흐’(Kreplach)라는 이름은 프랑스어 ‘크레프’(crêpe)에서 유래한 독일어로 추측된다. 크레플라흐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잘게 썰거나 자르는 동작이 시너고그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며 발을 구르거나 그레거(Gregger)를 돌리는 것과 비슷해 부림절에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밀가루 피 안에 소를 숨기는 것이 마치 「에스더서」에 여호와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나 그 안에 신이 숨어 있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④ 다양한 빵
각 공동체마다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들어 부림절을 기념한다. 헝가리나 루마니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후손은 바닐라 커스터드를 채운 도넛 볼을 만들고, 모로코 유대인들은 하만의 머리 모양을 흉내 낸 빵을 굽는다.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이 축일에 먹는 빵 ‘할라’(hallah)를 먹는데, 하만을 매달 때 사용했다는 밧줄을 흉내 내 꼰 모양으로 만든다.
⑤ 주류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유대인들도 부림절에는 마음껏 술을 마시고 즐길 수 있으며, 오히려 술에 취하는 것을 권하는 편이다. 탈무드에는 부림절에 포도주를 마실 때는 ‘바루흐 모르드개’(Baruch Mordecai, 모르드개에게 축복을)라는 말과 ‘아루르 하만’(Arur Haman, 하만에게 저주를)이라는 말을 구분하지 못할 때까지 마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과거 탈무드 시대에 부르던 부림절 노래와 관련이 있는데, 위 두 문장은 거듭 반복되는 후렴구로 쓰였다.
4) 가장 행렬
옷을 차려입고 가면을 써 여러 모습으로 꾸민 채 거리를 행진하는 가장 행렬이 부림절에도 존재한다. 15세기 말 로마의 카니발에서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유대인들이 가장 먼저 부림절에 가장 행렬을 시작했고, 이 풍습이 점차 다른 공동체로 퍼져나갔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행사를 가리키는 단어 ‘마하리 민츠’(Mahari Minz)는 1508년경 베네치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같은 전통은 고대의 축제에서 가면과 소리를 내는 장난감을 사용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신명기」에서 남자는 여자 옷을 입지 말라고 못박아두었지만, 부림절은 유일하게 남녀가 옷을 바꿔 입을 수 있게 허락된 날이다.
부림절을 즐기는 유대인들
부림절에 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대규모 거리 행진과 공연이 펼쳐지곤 하는데, 이는 서구의 카니발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거리로 나와 가두 행진을 하는 행사를 ‘아들로야다’(Adloyada)라고도 부른다. 이는 ‘누군가가 더는 알지 못할 때까지’라는 뜻으로, “‘모르드개에게 축복을’이라는 말과 ‘하만에게 저주를’이라는 말을 ‘더는 알지 못할 때까지’ 포도주를 즐겨야 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912년 텔아비브에서 최초로 부림절에 ‘아들로야다’라는 이름으로 거리 행진을 개최했다.
부림절의 거리 행진 아들로야다(Adloyada)
아들로야다는 유대인들의 부림절 거리 행진을 이르는 말로, ‘모르드개에게 축복을’이라는 말과 ‘하만에게 저주를’이라는 말을 ‘더는 알지 못할 때까지’ 포도주를 즐겨야 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5) 시끄러운 소리 내기
부림절에 「에스더서」를 낭독할 때는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큰 소리를 내어 하만의 이름을 지우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구약성경』 「신명기」에 나오는 “나무와 돌에서조차 아말렉(Amalek)족의 기억을 지워버리겠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16세기 폴란드의 랍비 모세스 이세를레스(Moses Isserles)는 하만을 사악한 아말렉족의 후손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런 관습이 생긴 것이라고 추정했다.
보통 소리를 내는 데는 손잡이를 손에 쥐고 돌리면 나무토막이 톱니 바퀴를 지나갈 때마다 따다닥 소리를 내는 기구 그레거(Gregger) 혹은 라아샨(ra’ashan)을 이용한다. 그레거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Yiddish)어로 소음을 의미하며, 라아샨은 히브리어로 소음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나무로 만들지만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다. 하만의 이름을 지우는 방법에는 매끄러운 돌이나 석판에 하만의 이름을 쓴 뒤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른 돌로 문지르거나 부딪쳐 지우는 경우도 있다.
그레거(Gregger)
그레거스 손잡이를 돌리면 나무토막이 톱니 바퀴를 지나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레거로 소음을 내 하만의 이름을 지운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림절 [Purim]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
블로그/카페 공유수0
클린봇이 악성 댓글을 감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