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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소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
저자 유디트 샬란스키
출판사 서평
“살아있다는 것은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유실되거나 잊힌 인간의 역사와 사물에 관한 독특한 애도의 기록
독일의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가 열두 가지의 ‘사라진 것’과 그 상실을 문학적으로 재현해낸 독특한 애도의 기록이다. 샬란스키는 이 책에서 사라져가는 메아리와 희미해진 흔적, 소문과 전설, 생략부호와 환상통 같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실종된 것들과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기존의 전승이 작동하지 않는 그 지점에서 서사적 힘을 발휘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외진 곳에서 덧없음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이다. 외진 정원 안에 인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은둔자,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창조하는 폐허의 화가,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공허한 일상 속에서 죽음에 대해 묻는 말년의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어린 시절의 공백들에서 구동독의 상실된 역사성을 추적하는 저자 자신처럼.
샬란스키의 이 찬찬한 책은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해 마치 열두 편의 팩션처럼 읽힌다. 사전처럼 충실한 정보와 감탄할 만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저자는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이야기를 펼쳐가며 우리의 존재를 탐구한다. 상실과 부재, 그리고 여백은 어느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는가. 과학적이고 생태학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고른 열두 가지의 이야기는 시적이면서도 면밀한 관찰자에 의해 주제와 형식이 놀라운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전개된다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뭔가를 보존하고, 과거를 눈앞에 되살리고, 잊힌 것을 불러내고,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상실을 애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쓰는 행위를 통해 아무것도 되찾을 수는 없다 해도, 모든 것을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찾아낸 것만큼 찾고 있는 것에 대해,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기억이 존재하는 한 존재와 부재의 차이가 미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_ 30p
어떻게 이런 주제를 골랐을까 싶은 열두 개의 목록은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양의 투아나키 섬, 이제는 어디에서고 더이상 목격되지 않는 카스피해 호랑이, 신화 속의 유니콘, 생전에 단 한 채의 건물도 짓지 않고 오로지 폐허에만 매달렸던 건축가 피라네시, 몇 개의 필름 조각으로만 남아 있는 무르나우의 영화와 유령처럼 맨해튼을 떠도는 그레타 가르보, 부분으로만 남아 있는 사포의 시구詩句들, 독일 북부 지역에 있던 불타버린 성, 마니교의 창시자인 마니의 거의 사라진 교리서들, 한때 그라이프스발트 항구를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어주었지만 이제는 말라버린 리크 강, 숲속에 자신만의 백과사전을 일군 은둔자, 철거된 공화국궁전, 달과 사랑에 빠져 먼 미래에 달에 살고 있는 월면학자 등, 지금은 사라진 것이 확실한 이 목록들을 통해 저자는 소멸과 파괴의 다양한 현상들에 주목하며 부재자의 존재감을 상기시킨다.
책의 이야기는 19세기 중반에 사라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아나키에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태평양 북동쪽 바다에 자리하고 있던 섬, 1842년 말 즈음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저자는 자료들을 찾아 그 섬이 존재했던 흔적을 따라가며, 그곳을 향해 먼 길을 항해했던 탐험가들과 그곳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묘사해나간다.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쓴 카스피해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빠르기는 활과 같고, 모든 강들 중 가장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티그리스강처럼 거칠어서 이름도 타이거가 되었다는 호랑이. 한때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동물계를 호령했던 카스피해 호랑이는 1964년을 끝으로 어디에서고 더이상 목격되지 않는다. 저자는 대대적인 포획과 서식지의 소멸, 가장 중요한 먹잇감의 감소가 카스피해 호랑이의 멸종원인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10월에 출간된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출간 전에 이미 독일의 유수 문학상인 빌헬름 라베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심사위원단으로부터 “매우 이질적인 텍스트들”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서문과 열두 편의 이야기에 정확히 같은 페이지 수가 할당되어 있다. 샬란스키는 그것에 대해 “각 장이 공평한 무게를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상실과 망각, 기억이라는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들에서 작가의 어조는 소재에 따라 다채롭게 변한다. 저자는 저마다의 흔적과 수많은 공백을 남긴 이들에 생생한 목소리를 입혀냄으로써 ‘사라진 것들’에 풍성한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샬란스키는 책 곳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작가적 성공을 안겨준 《머나먼 섬들의 지도》(2009)와 《기린은 왜 목이 길까》(2011)에서 보여주었던 머나먼 섬들과 구 동독에서의 삶에 관한 허구적 탐구가 이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열두 편 중 네 편이 저자의 일인칭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그중 두 편은 그녀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도 담겨 있다.
스스로가 “몽타주 작업”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한 이 책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것들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살아있다는 건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모든 것을 잊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새삼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일상을 벗어나 작가와 함께 낯선 시간과 구석들을 돌다 보면, 세상이 지구본처럼 하나로 보이게 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들도 우리가 그것을 기억 속에 담아두기를 원하는 한, 사라진 것은 생기를 잃지 않는다는 소중한
목차
일러두는 말
서문
투아나키
카스피해 호랑이
게리케의 일각수
빌라 사케티
푸른 옷을 입은 소년
사포의 연가戀歌
폰 베어 가문의 성
마니의 일곱 권의 책
그라이프스발트 항구
숲속의 백과사전
공화국궁
키나우의 월면학月面學
색인
옮긴이의 말
https://naver.me/53l6z3sF
링크 참조
https://naver.me/Fr7qHKRG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
맨해튼/ 푸른 옷을 입은 소년
또는 죽음의 에메랄드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첫 영화는 1919년 봄에 뮌스터 지역의 피셔링 성과 베를린 교외에서 촬영되었다. 가장 중요한 소도구는 토마스 게인즈 버러의 <블루 보이>를 모사한 그림이다.
원본의 얼굴은 무르나우 영화의 주인공인 토마스 반 베르트 역할을 맡은 에른스트 호프만의 얼굴로 대체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공통적인 것은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주인공이 선조들의 성에서 일하는 늙은 하인과 함께 가난하고 외롭게 산다는 것이다. 그는 자주 선조들의 초상화
중 하나를 바라보곤 한다. 흡사한 외모 때문이 아니
라 어떤 신비로운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에게 불운을 가져왔다는 악명 높은 죽음의 에메 랄드를 가슴에 단, 푸른 옷을 입은 젊은 사내의 환생 일까?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조상 중의 한 명이 에메 랄드를 감춰두었다. 어느 날 밤 토마스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 이 그림에서 나와 그를 은닉처로 데려가
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난 후 토마스는 실제로 그 곳에서 에메랄드를 찾아내고 보석을 당장 내버리라
는 늙은 하인의 애원을 무시한다.
같은 시간 유랑극단이 성에 나타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에메랄드는 도난당하고, 성은 불타고, 초상화는
망가진다. 토마스는 병이 들지만, 아름다운 여배우의 순수한 사랑과 헌신으로 목숨을 건진다.
* 이 무성영화의 개봉은 지금까지 증명되지 못했다. 당시의 어떤 비평가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한 번도 정식으로 상영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소실되었다고 여겨진다. 베를린의 독일 영상자료원
에 이 영화의 짧은 필름 조각 35개가 다섯 가지 색의 '유실영화 컬렉션'의 일부로 보관되어 있다.
ㅡ》
사람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 있다. 자신의 부모, 자신의 언어, 자신의 국적, 그러나 유년의 기후는 아니다.
그럼에도 4월에 피는 장미, 달콤한 오렌지꽃 향기, 메이버리 로드의 습하고 안개 낀 날들, 유일하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장소인 해변의 아침, 결국 모든 도주의 시도는 날씨 때문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디에 정착했던가? 포름알데히드, 땀과 쓰레기 악취가 풍기는 이 도시였다.
☆☆
바빌로니아/ 마니의 일곱 권의 책
마니는 216년에 티그리스 강 유역 셀레우키아 ㅡ크테시폰 인근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페르 시아인이었으며,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유대교 재세 례파 분파에 속했던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계시를 받았다. 24세에 엘카사이파를 떠나 설교를 시작하면서 추종자와 적대자 들이 생겼다. 바빌로니아 전역과 메디아,간자크, 페르시아, 인도와 파르티아 제국은 물론 로마왕국 주변에서 선교했다.
마니는 사산제국의 통치자인 샤푸르1세와 그의 아들
호르미즈드 1세의 지원을 받았으나, 두사람의 후계자 인 바흐람 1세는 조로아스터교 사제의 요구에 따라 276년 또는 277년에 마니를 투옥했다. 투옥된 지 26일째 되던 날 그는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은 훼손 되고 머리는 잘려 군디샤프르의 성문에 방치된 채 썩어갔다.
마니교는 메소포타미아를 넘어 지중해 전역,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및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넘어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와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니의 혼합종교적인 가르침은 페르시 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에, 서양에서는 영지주의적 기독교에, 그리고 동양에서는 불교에 접목 되었다. 고대 후기에 이르러 마니교는 세 개 대륙에 걸쳐 신도를 가진 세계 종교가 되었다.
*마니교의 몰락에 대해서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않고, 고대와 중세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문서가 파괴되었으며, 전 지역에서 신앙생활이 억압되고 신자들은 박해를 당했다. 832년부터 서로마제국에서 마니교 신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중국에서는 843년에야 금지되었으나 동투르키스탄의 일부 지역에서는 13세기 까지, 남중국에서는 심지어 16세기까지 명맥을 이어 갔다.
동아람어로 저술된 마니의 전작이 그리스어, 라틴어, 쿱트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팔라비어, 소그드어,위구르어와 중국어 같은 선교국의 언어들로 번역되었음에도 남아있는 텍스트는 거의 없다.
전승된 것은 《생명의 복음서》의 시작 부분,《서한집》의 잔재, 《거인의 서》의 단편들, 그리고 중세 페르시 아어로 작성된 선교서 《샤푸라간》의 일부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마니의 가르침은 그의 추종자들과 후대 아랍의 백과사전편찬자들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1902년에 이르러 보존상태가 불량한 마니교 원전의 일부가 중앙아시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투르판에서 발굴되었다.1929년에 이집트의 파이윰에서 발견된,
콥트어로된 마니교 서적의 상당 부분이 베를린 컬렉션에 포함되었다. 마니의 편지들이 포함된 책을 비롯한 필사본들 중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 들이 2차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으로 옮겨지던 중 소실되었다.
ㅡ》
이세상의 모든것은 악을 동반한 선, 어둠을 동반한 빛, 물질을 동반한 영혼, 삶과 죽음처럼 명백히 다른 영역에 속하는 두 본성의 혼합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집처럼 느끼지 않아야 하며, 집조차 짓지 말아야 하며, 아이도 낳지 말고 고기도 먹지 말 것이며,육신의 즐거 움에 빠져서도 안 된다. 최소한의 물질만 소유하도록, 모든 것은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땅을 경작하고. 채소를 자르고, 열매를 따는 것들은, 그렇다,풀 한 포기를 밟는 것조차도 그 안에 담긴 빛을 아프게 한다.
☆☆☆
스위스 온세르노네 계곡/ 숲속의 백과사전
베른의 스위스 연방 경제부 사무보조원이던 아르만트
슐테스는 50세에 티치노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결심했다. 젊은 시절 제네바와 취리히에 지점을 둔 여성기성복회사 메종 슐테스를 운영했던 그는 1951년 직장을 그만두고,1940년대에 이미 18헥타 르에 이르는 토지를 마련에두었던 온세르노네 계곡으 로 이사했다.
그 동안 서서히 숲속의 백과사전으로 일궈왔던 작은 밤나무 숲이 이제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숲에는 인류의 지식을 주제별로 선별해 요약해 놓은 천여 개의 함석게시판을 걸었다. 다수의 언어로 작성된 게시 판의 내용에는 특정 지식 분야에 대한 초록ㆍ 목록ㆍ
도표와 참고문헌은 물론 여가활동을 제안하며 연락을 바란다는 말도 종종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그는 사람 들과의 교류를 완강히 거부했고 죽을 때까지 은둔자로 살았다. 그는 1972년 9월 28일 밤에 자신의 정원에 서 탈진과 오한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1973년 7월 그의 상속자들은 책과 서류,가재도구들로 가득찬 집을 정리하고 대부분을 소각하거나 쓰레기로 내놨다. 이틀에 걸쳐 유품을 정리하는 동안 약 70여 권의 저작이, 아마도 성을 주제로 한 콜라쥬 기 법으로 제작된 책들이 불에 탄 것으로 보인다. 정원 부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몇 개의 함석게시판과 아 홉 권의 저작만이 살아남았다. 그중 세 권은 로잔의 아르 브뤼 콜렉션이 소장하고, 나머지는 개인 소유물 이 되었다. 지금은 집의 이름만 남아 한때의 소유자를 기억하게 한다. 카사 아르만트.
ㅡ》
여기로 오는 사람들은 함석판을 읽지만 제대로 읽지 않는다. 그들은 전혀 읽을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적 자극과 감정적 흥분을 주는 것만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무릇 정리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하기 전에 어떤 것이든 우선 한번 베껴 적어야 한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질서가 잡힌다. 나의 기준은 같은 것을 한 범주에 넣는 것이다.
☆☆☆☆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유토피아로서의 폐허
소중한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는 고인의 유품과 더불어 고통과 슬픔, 후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남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제였던 누군가는 기억이 되고, 차츰 허구로 되어간다. 남겨진 유산 중의 어떤 것은 보관되지만,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잊히고 왜곡되고 돌이킬 수없는 파괴의 과정을 겪는다.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이러한 상실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대상의 부재로 인해 생겨나는 갑작스러운 공백을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 다양한 문화 속에서 폭넓게 관찰 한다. 특히 그녀의 관심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었던 것 들, 또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모두가 외면했거나 침묵했던 지점, 작가의 표현으로는 '상처의 지점'에 머문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치 빙의된 여사제처럼 지 금까지 묻혀 있던 폐허의 목소리들을 우리에게 들려 준다.
ㅡ옮긴이의 말 중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사물은 언제나 예정된 폐기물'(17쪽)
이고, 모든 건물은 미래의 폐허이며 모든 창작은 붕괴와 다름이 없다.'(18쪽)
지구 스스로가 과거가 된 미래의 페허 더미임은 잘 알려져 있고, 인류는 다양하게 뒤섞여 끊임없이 전유되고 개조되고 버려지고 파괴되고 무시되고 밀려나야 할 경이로운 선사시대의 유산상속공동체이므로, 세간의 믿음과는 달리 미래가 아닌 과거가 진정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재해석이 새로운 지배 체제의 첫 역할이다.(21쪽)
테오도어 레싱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집필한 그의 책 <무의미한 것들에 부여되는 의미로서의 역사>에서 말한다. 여기서 그는 논리적으로 진화하는 역사의 모든 초안은 주로 내러티브 규칙을 따르는, 시작과 끝, 흥망성쇠, 개화와 쇠퇴의 이야기로서, 형태가 없는 것들에 사후에 형태를 부여한 것임을 폭로한다
(23~24쪽)
홍태양은 매초 4백톤의 질량을 에너지로 바꾼다.
태양의 핵에서는 수소원자가 헬룹으로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빛이다.
태양은 자기자신을 빛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따뜻함과 안락을 위해 태양 빛을 찾는다.
태양빛을 빼앗긴다면, 특히 긴 겨울동안 빼앗긴다면.
우리는 그리움에 미치거나 열망에 사로 잡힌다
태양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빛을 준다.
우주속으로 걷다_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