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 B조 경기 잉글랜드 대 파라과이전을 TV로 시청하면
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데이비드 베컴이 뛰는 경기를 현장
에서 직접 관람하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하고 말이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 찾은 많은 사람들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저지를 입고 뛰는 베컴
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상상을 했을까. 넋이 나갔을까? 아니면 그냥 스타
플레이어가 뛰는구나 생각했을까? 아니면 파라과이 국민이라서 베컴을
경기 내내 증오했을까?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 많은 한국인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
장인 베르나베우 경기장을 찾아가서 레알 마드리드 경기도 보고, 세계적 클
래스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경기장 뒤편에서 직접 만나보면서 기념 사
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선수들과 직접 만나본 사람들 이
야기를 들어보면, 카시야스나 호베르투 카를루스 (현 페네르바체), 라울 곤
잘레스 등을 만나뵐 때는 신기함과 경외심의 마음에 가슴이 떨렸지만, 데이
비드 베컴을 보면 갑자기 사지가 마비(?) 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잘생겨서,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할 말을 잃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만큼 베컴은 세계적인 미남 스타이고, 축구를 좋
아하건 안 좋아하건을 떠나서 만인의 연인인 셈이다. 베컴의 영향력이 얼마
나 대단하면, 축구와는 담을 쌓는 사람들도 베컴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화젯거리가 생기게 되고,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그의 가쉽거리나 스토리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된다. 남성패션지 <아레나> 3월호 커버 모델이 베컴인데,
베컴 커버 스토리에 이런 말이 있다. '베컴은 신보다 유명하다' 라고. (대충
이런 뉘앙스의 글귀다)
베컴이 한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을 당시, 그러니까 2001년에는
난 중학교 3학년 코흘리개였었다. 그냥 베컴이나 맨유 이야기는 먼나라 이
야기라고 생각하고, 그의 경기를 한번 보고싶은 생각은 들었으나 그게 막 실
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왜냐면 너무 어린 나이라서 잉글랜드로 떠나는 것
이 두려웠고, 또 주변에서 같이 갈 사람도 없고 해서 말이다. 누가 세상에 해
외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중 3짜리를 데리고 잉글랜드를 가겠는가.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피구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 오른쪽 중앙 미드필
더를 보던 (피구도 오른쪽 윙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2005년, 정확히
얘기해서 04-05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 자체가 싫었었다. 혼잣말로
돈으로 처발라서 (?) 팀을 만들어 재산을 과시하는 레알 마드리드라는 부자
구단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미워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더불어 베컴에 대한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던 시기인 것 같다. 그래도 베컴 경기는 한번쯤 보고 싶
었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천적인 FC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와 그
유명한 '엘 클라시코 데르비' 를 치를 때 한번 찾아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
지만 난 당시 재수를 하고 있었고, 해외에 나가 축구 경기를 관람한다는 것은
천노할 짓이었기 때문에 마음일랑 접었다.
이번엔 베컴이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LA 갤럭시로 이적했을 때, 두 가지 생각
이 들었다. 하나는 베컴의 기량이 절대 심하게 저하된 것이 아닌데 벌써부터
축구의 변방국에 갈려고 한다니 거기에 굉장히 실망하고 아쉬워했다. 베컴의
LA 갤럭시행은 그에게 있어서 06-07 시즌 극적인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메라
리가 우승이라는 당근 때문에 멋지게 유럽 축구 무대를 퇴장하는 계기가 되었
지만, 그의 마지막 유럽 축구 대항전은 고작 06-07 챔피언스리그 8강 바이에
른 뮌헨전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강하게 미국행을 추진하던 베컴을 보며,
정말 헐리우드의 돈벌이가 그렇게 좋아서 그런건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두 번째 생각은, 그렇다면 베컴의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는 것이었다. 일단 미국 LA의 토렌스 지역에 우리 막내 고모 집안이 살고 있다.
90년대 후반에 이민을 가서 벌써 그곳에 뿌리를 완전히 내린지 10여년이 되었
다. 그래서 베컴의 LA 갤럭시 홈 경기가 열리는 홈디포센터 (LA 갤럭시 홈 구
장) 에 갈 일이 생기면, 그 막내고모네에 들려서 며칠 숙박하면서 친척분들도
만나뵙게 돈도 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에
서 가장 손쉽게 갈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MLS 경기 일정을
잘 조율해서 직접 찾아가 관전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빠르면 2009년 여름 즈음에 미국 LA로 날아가서, 막내고모댁도 찾아
뵙고 베컴의 경기를 보기 위해 LA 갤럭시 홈 경기 티켓을 구할려고 생각도 해봤
다. 하지만 인생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2009년이라는 연도가 굉장히
막막하게 느껴졌다. 혹시 베컴이 그 즈음에는 (설마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축구
화를 집어던지고 영화배우로 직업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도 베컴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뛰길 원하며, 잉글랜드 대표팀 재승선이 간
절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2009년은 한참 먼 미래의 이야
기이고, 그때 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성질이 급한 나는 어서 베컴의 경기를 보
고는 싶은데 사정이 안되다보니 또다시 예전처럼 그 목표를 포기할려는 생각까
지 가지고 있었다.
이때,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축구 팬, 그리고 베컴 팬들을 위한 굉장히 매
력적인 소식이 들려져왔다. 베컴이 2월 말께 우리나라에 드디어 발을 내딛게 되
고,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하면서 대외 활동을 벌이다가 3월 1일, 서울 상암월드
컵경기장에서 FC 서울과 친선 경기를 벌인다는 것이다. 이미 이 소식은 1월 말
즈음에 확정되었다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 전체에 알려졌고, 많은 이들은 베컴
을 한반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적잖게 흥분했다. 나 또한 펄쩍펄쩍 뛰면서 베
컴의 방한 소식을 기쁘게 맞이했다. 그리고 2월 19일, 어머니께서 고이 모아두신
돈으로 나와 친동생에게 베컴 경기 관람 티켓에 사랑의 마음으로 투자해주셨다.
나는 이것만은 자신할 수 있다. 베컴의 경기를 관전한다고 해서, 거기에 대해 목
에 힘주고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내가 단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베컴의
경기를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감명깊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해서 좀 오바 (?) 를 떠는 것이지, 누구에게 이걸 과시하는 목적으로 하는 것
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전세계에 빛내는 자랑스런 박지성 선수의 맨유 경기를 보
는 것도 아니고, 일개 해외 서양 스타 경기 보는 것에 그렇게 목에 힘주고 얘기하
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듯이, 나는 베컴의 경기를 실제로 관전하면 과연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오래전
부터 있었다. 당시 2006년 여름밤, 오직 TV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던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의 B조 조별리그 경기를 보면서, 베컴이 뛰어다는데 과연 그 관중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당시 베컴은 전반 3분 자신의 전매특허의 오른발 프리킥으로 파라과이 골문에
볼을 배급했고, 그 프리킥은 파라과이 주장 센터백 카를로스 가마라가 잘못 걷
어내는 바람에 파라과이 골망을 뒤흔들어 자책골로 1-0이 되었다. 그리고 경기
는 막을 내렸었다. 그때 당시 경기를 주관하는 심판진은 물론이고 각 방송사에
서는 그 골을 베컴의 프리킥이라고 알고 있었고,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는 베컴의 득점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물론 나중에는 가마라의 자책골로 최
종 판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이렇게 이른 시간에 프리
킥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수퍼스타 베컴의 경기를 실제로 보자! 그렇게 마음
먹은지 2년 후에, 내 손에는 LA 갤럭시와 FC 서울 경기 홈티켓이 쥐어져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근데 그 경기가 당시 월드컵에서 가장 재미없는 게임이었어요.^^난 잉글랜드가 왜 이렇게 정이 안가지...음악빼고....국대로 모였다 하면 뻥축구로 초지일관....^^제가 제일 싫어하는 클럽은 만체스터 유나이티드......전 세리에를 제일 좋아해요.프리미어 리그 스타일은 좀 안 맞고....^^결과적으로 밀란 짱!!!!이게 먼 소린지.......
밀란 올해 목표가 리그 중위권 안착이라던데...
박주영,이청용,기성용의 힘을 보여주었으면~ 백암택배에 맞서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