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성 축빠였다. 사원 체육대회에서 축구 경기가 치뤄지면 선수로 몸소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다고 하고, 축구단 창단을 위해 당시 잘 나가던 여자 실업배구단까지 해체했다고 한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만든 대우 로얄즈는 상당히 잘나갔다. 삼성이나 금성이 야구단을 창단하자 우리도 야구단 창단하자는 간부를 병신 보듯이 바라보며 즉각 거부할 정도였다.이런 축구 사랑으로 아낌없이 축구에 투자하니 대한축구협회 회장(정몽준 이전에 회장을 맡은 이가 바로 김우중이다)을 역임했다. 안정환의 해외진출도 김우중이 힘을 실어줘서 가능했다. 안정환이 이탈리아에서 씁쓸히 물러났던 이유 중 하나도 대우그룹이 기울면서 스폰서가 끊겼기 때문이다.
- 한류스타 이병헌의 양아버지이다. 1990년, 아들 선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부인 정희자가 TV에서 이병헌을 보고서 "선재와 닮았다"고 하면서 호감을 느껴 이병헌과 친분을 맺었고, 노조의 반발로 접기는 했지만 이병헌을 위해 신형 세단 아카디아를 선물하려 했다고 한다.
- 골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원래 일이 취미다라고 말할 만큼 일 중독자였다. 밥도 초스피드로 폭식 + 과식 스타일로 먹었는데도 소화불량에 걸린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운동을 할 시간이 없을 때는 무협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고, 훗날 대우전자 내에 비디오사업부를 설치해 20세기 폭스,워너브라더스 등의 작품을 수입하고, 1995년 케이블TV 사업자 선정 때 세간의 예상을 깨고 영화 채널 부문에 응모할 정도였다. 이것이 현 OCN의 모태가 되었다.
- 경기고 재학 당시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후 동문회장을 역임했고, 상경대학 건물 신축시 기부금을 내고 (이 때문에 한동안 연세대 상경대학 본관의 별칭이 김우중관이었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부지를 기증하는 등 여러 모로 연세대를 도왔다고 한다.
- 경영 스타일은 전형적인 독불장군형. 그룹의 모든 일을 자신이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증언이 "구조조정본부장을 만나보니 그룹 실상조차 제대로 모르더라."(강봉균 당시 경제수석, 현 민주당 국회의원).
- 김대중 대통령과의 친분을 지나치게 믿고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재계 총수들과의 첫번째 회의 자리. 내정간섭 수준의 각서까지 요구할 정도로 기세등등한 IMF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부탁하는 대통령의 말이 있었다. 이후 회의가 끝나고 김우중의 후배인 타 재벌의 총수가 김우중에게 "어떨 것 같습니까?"하고 묻자 김우중의 말 : 뭐 별일 있겠어. 다 들어서고 나면 처음엔 저렇게 군기를 잡잖아. 이번에도 별탈 없을거야. (출처 : 공병호,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해냄, 2011) 참고로 당시(1998년) 대우그룹의 모기업이었던 (주)대우의 부채만 22조원(...). 이헌재 역시 김우중의 현실인식이 비교적 안이함을 지적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IMF 이후로 이미지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베트남에서의 평가는 현재까지도 매우 높다. 이는 대우가 베트남 진출할 때에 라이따이한에 대한 복지 지원, 현지인 대우 등에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베트남에서 존경하는 한국인을 꼽으면 김우중을 꼽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에서 한국 대기업의 선전도 사실 대우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수혜를 받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 1985년, 김우중과 형인 김관중(대창기업 회장) 등의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에 도서관을 짓고 이를 제주도에 기증했는데, 그 도서관이 아버지 우당 김용하의 호를 딴 우당 도서관이다.
- 아버지가 납북될 때, 둘째 형도 납북되었는데 2003년 제8차 이산가족상봉시에 둘째 형이 살아 있음이 알려졌다. 당시에는 김우중도 도망 다닐 때라 만날 순 없었지만..
첫댓글 아직도 김대중 때문에 대우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더군요. 김우중이 참 아까운 사람인데 김대중때문에 저렇게 되었다고-_-;
대우는 당시에 이미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했을 겁니다
근데 김대중이 안 도와서 망했다라...
김대중이 도와줘서 대우가 안 망했으면 대한민국이 망했을 듯
김우중 회장에게 또다른 형이 하나 있죠. 김덕중씨라고. 아주대 총장을 지낸분이 있는데 그분이 아주대에 있을때가 아주대 리즈시절이라네요.
예전에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나네요 ,
미국에서 무일푼으로 시작 ,꼴지로 들어가서 정말 악착같이 주경야독하여 수석(가물한데 무튼 우수한 성적으로)으로 졸업 ,위스콘신대 최고의 교수에도 올랐지만 조국에 기여해야한다며 귀국 ,,,
아주대 취임하자마자 한일이 총장실을 줄인일이고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수한 학생유치를 위해 애쓰는등 ,본받을점이 굉장히 많아서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
아주대 리즈 시절에 아주대 공대는 연고대 공대 급이었죠. 지금같이 이공계 위기 아닐 때에요.
연고대 한양대 아주대 이렇게가 비슷한 때가 있었죠.
김덕중씨가 김우중씨의 둘쨰형입니다.그래서 마지막 줄의 내용은 잘못된겁니다...
이런 글 본다고 지은 죄가 미화가 되지 않죠...
근데 대우가 망한 진.짜. 이유는 뭔가요? 소위 말하느 그 탱크주의라는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나중에 실패의 원인으로 변한걸까요?
대우가 망하고 삼성LG 이런 기업이 급부상하기 시작한거 같은데...
세계경영이니 뭐니 하면서 너무 급격하게 몸집을 불렸죠.
그것도 감당하지도 못할 빚을 떠않으면서-_-;;
원래는 불가능했을 대출을 당시에는 재벌이면 막 퍼주던 시절이니....
재벌이면 막 퍼주던 시절... IMF 사태도 원인일지도..ㅋ
요즘 STX의 흥망성쇠가 대우가 참 닮았죠.
그럼...
대우그룹이 망했는데도 대우증권은 어떻게 있는건가요?
대우증권이 증권계에서 상급이라 하던데 오래전부터 업계에서 최상인 곳이었나요??
IMF 이후 대우증권은 이름만 대우증권이지 정부산하 산업은행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기술은 사서 쓰면 된다고 개드립치다가 망한회사가 대우차죠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김현수네요. 방망이 좀 사서쓰라고 친구에게 핀잔주던ㅋㅋ
방망이가 아니라 배팅장갑이죠~
저 책 읽은 기억이 있네요.ㅋ
엔하위키 미러에 있는 글 그대로 퍼오신 거네요? 출처 표기는 해주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이제이"에 나왔던 얘기 아닌가요??
세월이 약이라더니 이 사람이 미화가 되기도 하는군요.
저 때는 대우가 삼성이나 LG보다 잘나가던 시절인가요?
제 어릴 때 기억으로 삼성보단 대우가 더 컸던 기억이 나서요.
현대 빼고는 다 비슷한 2인자 그룹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대중 김우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연대 상경관은 지금도 대우관으로 불리더군요~자세한 건 이이제이 김우중편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기업 규모의 확장 방식이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