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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죽일 놈이 하나 있다. 내가 언제부터 그 놈을 타켓으로 삼았느냐 하면 중학교 2학년 때 그 놈이 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와서 내 옆에 짝꿍으로 앉게 되면서부터 바야흐로 시작이 되었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의 신문로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성북구 정릉에 있는 촌으로 오게 되었으니 이미 그 놈은 건방짐의 도를 넘어서 있었다. 그 놈은 학급에서 무엇이든 아는 척을 유난히도 많이 하였고 교복은 두 벌을 가지고 교대로 하여 항상 깨끗하게 다려서 입고 다녔으며 도시락 반찬에는 매일같이 달걀말이나 김, 멸치조림과 장조림 이따위 것들을 가지고 와서 친구들을 포섭하여 자기의 추종자로 만들어갔다.
나는 지금도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이 놈이 가지고 온 반찬을 단 한 개도 먹어본 사실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 놈은 나보다 조금은 못생겼다. 특이한 점은 이마가 넓다는 것이다 그 놈은 윈스턴 처칠이나 링컨이 이마가 매우 넓었다고 떠벌리고 다녔고 저보다도 키가 큰 나를 싱겁이라고 불렀었다. 몸집으로 보면 그놈은 나와는 상반되어서 중간 키에 멸치같이 마르고 피부는 유난히도 하얀 놈이었다. 서로의 낯설음을 막 벗어난 시점에 이르러 언젠가 남산도서관에 놀러(?)가서 여학생을 꼬드기기로 하고 출정을 했었는데 자기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해서 내가 여학생 셋을 꼬드기는데 성공을 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죽일 놈이 그 중에서도 가장 예쁜 여자아이를 자기가 가로채기도 했었다. 그 놈의 집안은 교육자 집안이었다. (아버지만...) 아버지는 서울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큰형은 월남전에 다녀와서 해병대 대위였고 둘째형은 한국일보에 다녔고 작은형은 해병대를 입소했다. 그러니까 이 놈이 막내다. 이렇게 그 넘아의 집안 사정을 낱낱이 알았던 것은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 그 넘아의 기세를 꺾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런 중에도 특별한 경우이긴 해도 이 놈아가 기특하게 생각된 때도 있긴 하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여 얼마 안 된 시절인 이등병 때, 강원도 홍천에 있는 야수교라는 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나를 만나러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면회 왔을 때이다. 그 때도 나를 만나러 온 것까지만 기특했고 그 나머지의 행동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가지고 온 통닭을 그 놈이 그 자리에서 거의 해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군대가 좋아졌기 때문에 가지고 오신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 아버지의 등을 떠밀다 시피 해서 버스에 오르시게 하여 아쉬워하는 나의 미련을 송두리째 앗아간 놈이기도 했다. 그 놈은 그 때까지만 해도 자기는 빽(?)으로 방위로 빠질 것이라고 자신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놈은 나보다 6개월 뒤에 입대했는데 공수부대로 차출이 되어 훈련을 받던 도중에 자기에게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너무도 과도한 훈련이라고 생각되었던지 게거품을 자주 뿜어내는 바람에 육군으로 후송이 되는 전과(?)를 올렸었다. 군대얘기를 하다보면 지금도 그 놈이 하는 얘기지만 자기 내무반에서 공수부대 낙하산 마크가 뻐젓이 군복에 있었던 놈은 자기 하나뿐이었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공수부대로 입소를 해서 육군으로 제대를 한 지지리도 못난 놈이다. 제대 후에 내가 태평양화학(아모레 화장품)에 입사를 하여 총무를 지내다가 27살 나이에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아 관악구 신림동에 파견이 되었을 때. 그 놈은 지점장의 친구라 하여 거의 빼놓지 않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정시 출근을 하여 외판을 준비하는 아가씨들을 꼬드기기에 만사를 젖히고 혼신을 다했었다. 아가씨들의 대화와 몸짓들을 감상하는 것에 빠져들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인지 그 놈은 내가 화장실을 갈 때까지 참았다가 항상 같이 따라나섰다. 그 놈은 나와 함께 화장실에 갔을 때마다 허약체질이었던 까닭에 한번도 나의 오줌줄기를 이겨본 적이 없는 놈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가씨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용을 썼어도 그 놈은 나중에 나이 34살이 되어서야 결국 가까스로 장가를 들었다. 내가 장가가기 전날에 부지런히 그 놈이 나를 찾는다고 하여 결혼식 전야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 넘아의 끈질긴 추적으로 인해 만났었다.
그러나 그 때 그놈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평생을 가는 후회와 오점을 남길 줄은 진정 몰랐다. 그 놈은 나에게로 다가와 포장마차에 가서 우리끼리 딱 한잔만 하자고 했었다. "내일이면 너는 예식을 할 것이고 총각으로서의 너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에서 오늘은 너와 꼭 한잔을 기어코 해야겠다"는 간절한 친구의 말을 나는 뿌리칠 수 없었다. 포장마차 안에는 노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놈은 나에게 "너는 내일이면 네 마누라 되는 사람과 흠씬 재미를 보겠지만 자기가 너무나도 불쌍해 보이지 않느냐"고 하면서 저 노란 미니스커트의 여자를 꼬드겨달라고 하면서 귓속말로 나에게 생떼를 썼다. 나는 그 성가신 그 넘아를 위하여 노란 미니스커트의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내 귓가에 다소곳이 다가오더니 자기는 원래 직업여성인데 원래는 이것 (손가락 7개를 펴보였다)인데 오늘은 특별히 봐줘서 이것 (손가락 5개를 펴보인다) 으로 넘어갈 의향이 있다고 한다. 결국은 나의 주선으로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그 여자와의 순조로운 대화가 진행이 되었고 쾌재를 부르며 잠시 후 그 놈은 자리를 박차며 일어서더니 자기 주머니에 손가락을 푹 찔러 넣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갑을 놓고 왔다느니 하며 또 상투적인 언젠가도 나에게 써먹은 핑게를 댔다. 그 넘아는 곧 그 여자를 포장마차 밖으로 나가게 하더니 나더러 돈이 조금 필요하니까 2만원만 빌어달라고 하면서 그 여자가 먹은 음식값(소주 2병에 부침개)도 나에게 자~알 부탁 한다고 얼버무리며 거금의 부채를 내게 안겼다. 양심의 싹이 아직 조금은 남아서인지 나에게 덫붙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너는 진짜로 좋은 친구"라고..... 돈을 빌어줄 때마다 그 놈에게 듣는 얘기였지만 오늘은 하나를 더 추가했다. "넌, 친구니까 얘기인데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이발이나 면도를 하지 말아라' 그 당시 나의 모습은 어깨를 거의 닿는 장발에 야성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턱수염을 약간 길렀었다. "결혼하기 전날에 이발하고 면도하면 재수가 옴 붙어서 평생 후회하는 일이 생길 거다" "이발과 면도는 결혼식 당일 날 이른 아침에 해야 원래 더 멋져 보이는 거다. 알지?" 나는 그 놈이 하는 말을 친구로써의 진심이 담긴 말로 듣고야 말았다 그것이 나에게 올무가 되어 평생을 처갓집에서 장모에게 씨암탉 한번 못 얻어먹는 결과를 낳게 될 줄이야 그 땐 난 정말 몰랐었다. 결혼식 이른 아침에 나에게 오겠다는 그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놈의 말처럼 이발과 면도를 하지 않았다. 종로 3가의 신혼예식장에 도착을 하니까 신부가 곧 올 거라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 예식장의 미용실은 값이 너무 비싸기만 하고 얼굴 화장을 못한다고 소문이 난 예식장이라서 외부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와 신부화장을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다리기에 앞서 이발과 면도를 해야 했다. 거리로 나갔다. 이발소가 저만큼 보였다. 어슬렁거리며 가까이 다가가니까 빙글빙글 돌아가야 할 이발소의 등이 돌지를 않는다. 내려져 있는 셔터에 조그맣게 써 있는 종이쪽지에는 "매월 2째 주 토요일 정기 휴일. 종로구 이 미용협회"
다시, 나는 종로 3가에서 택시를 타고 동대문에 있는 창신동으로 갔다. "매월 2째 주 토요일 정기 휴일. 동대문구 이 미용협회" 동대문에서 택시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 순간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과 벼락이 번득이더니 줄기차게도 소나기를 퍼부었다. 비를 피하여 건물의 처마 밑에 한참을 서 있다가 시계를 보았다. "예식 시작 30분전" 억수같이 퍼붓는 소나기 속에서 나는 그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만큼 어린 여자아이가 우산을 받치고 가는데 나는 비를 맞으며 그쪽으로 무조건 달려 나가 우산 속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소녀에게 동전을 주며 나를 조금만 바래다 달라고 부탁했다.
키가 큰 내가 우산을 받쳐들으니까 키 작은 소녀의 얼굴에 비가 부딪혔다. 그래도 소녀는 비 맞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손에 쥔 동전만을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얼마만큼을 가니까 좁다란 골목 안에 미용실 간판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셔터 문이 30센티 가량 열려 있었다. "시간은 예식 시작 10분 전"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까 어느 여자가 머리에 둥근 비닐 같은 것을 썼고 그 안에는 개뼈다귀 같은 것들이 고무줄에 엉기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머리를 만져주고 있던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빨간 개뼈다귀를 머리에 얹은 여자와 깔깔대며 한참 수다를 떨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셔터 문을 힘껏 올리며 말했다. "아줌마! 저 머리.... 빨랑 좀 해주세요" 녹슬은 셔터가 열리는 앙칼진 문소리도 그랬겠지만 새 양복에 새 구두를 신고 비에 젖어 헝클어진 긴 머리와 꺼칠한 턱수염의 낯선 남자가 불쑥 들어오니 무척이나 놀랬나보다. 뚱뚱한 아줌마가 내게 말을 했다. "아저씨 우리는 오늘 영업을 하는 게 아니에요" '얘는 제 동생이고요..." 나를 단속 나온 사람으로 오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 나의 사정을 다 듣고는 아줌마가 자리에 앉아 보라고 하면서 자기는 남자머리는 안 해봤다고 했다. 자신의 남편도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한다고 한다. 하기야 그 당시에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하는 남자는 없었을 것이다 일회용 면도기도 없었을 때였으니까. 시계를 보았다 "이미 예식시간 5분이 지남" 머리를 대충 다듬고 미용실 아줌마의 아저씨가 쓰던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난 후 시계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예식시간이 20분이 지남..." 결혼식장 맞은편 건널목 신호등 기둥 옆에 숨어 예식장을 바라보았다. 창문에는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모두 길가를 향하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얼굴들 중에는 어제, 그 놈아의 얼굴도 보였다.
죽일.... 자금 생각해도 가슴떨려서 더 못쓰겠당..... 생각난 김에 전화를 해서 좀 퍼부어야징~~~
오늘은 여기까지...
- 然松 - |
첫댓글 본인에게는 그닥 유쾌한 일이아니지만 이런 멜랑꼴리한날 유쾌하게 웃을수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ㅋㅋㅋㅋㅋ
본인에게도 유쾌한 일이지요. 당시에는 황당한 사건이었던 일이 지난 후에는 좋은 추억이 되는 것 같네요. 그 넘아 있잖아요 지금은 자기 가족만 알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자기 와이프에게는 못말리는 일방적 닭살이 된지 오래된 놈입니다.
늘 가슴 한켠에 자리한 하고자 하는말이 너무나 꾸밈없이 순수함으로 드러나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훈훈하게 덮여주시네요.,,구슬같은 아름다운 글에 가슴 더움을 느낍니다 ...장마철에 건강 유의하시구욤... 오늘도 활짝 웃는날 되시옵소서~~~~!
카페 가입한 이후 답글 조차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얻기만 한 것같아서 좀 써보았습니다. 소개한 글이 장문의 글이 되어서 읽는 분들이 텁텁한 장마철에 회원께 불쾌지수만 키워 드리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창밖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있으면 나는 왜 지난 과거가 그렇게도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비오는데....
그 넘아는 결국 미니스커트에게 당했다고 하더군요. 술값, 2만원 등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샤워 중에 노란 미니가 지갑을 가지고 나갔다나 뭐라나...그 후 본일이 X...ㅎㅎㅎ 이튿날 의리상 걸어서 예식장까지 왔다더군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 믿을 수가 있어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