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내년 언론인 해외연수와 국제교류를 160여명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검찰 출입기자들을 향해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발언해 후폭풍이 간단치 않은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이른바 '김치찌개 만찬'을 통해 약속한 언론인 해외 연수 세 자릿수 확대를 발빠르게 구체화한 것이다.
언론재단이 기자들을 상대로 내건 해외 연수 '당근책'과 이 대표의 '막말' 중 어느 쪽이 더 언론계에 독이 될까? 나는 전자가 훨씬 치명적이고도 지독하며 역사에 작지 않은 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대거 해직, 보도지침 통제 등으로 인한 언론계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프레스센터를 건립하고 기자들의 처우 개선과 해외 연수 확대 등을 당근으로 제시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상호는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에서 언론통폐합에 대해 "언론매체시장의 독과점을 제도화시킴으로써 박정희 정권 시기부터 이미 진행되어온 언론의 거대기업화를 심화시켰다. 이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얻은 언론사들은 권위주의 통치에 순응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와 국내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른 언론사 급료체계는 언론의 비판적 기능 저하를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한 것도 돌아봐야 한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취임 2년 동안 언론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드러내 왔다. 미국 순방 중 욕설 파문을 일으킨 뒤 오히려 이를 보도한 언론을 옥죄고,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며, 공영방송 이사진을 대거 해임하고, 가짜뉴스 심의에 나서는 등 언론사를 통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총선 참패 이후 대국민 소통 노력을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아예 차단하는 민생토론회, 국정브리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언론 자유 지수를 최악으로 떨어뜨려놓고 이제 와서 해외연수에 목말라 하는 기자들의 속내를 간파해 낯뜨거운 유화책을 제시하는 이 정부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해서 언론재단이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해외연수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언급한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주재 특파원 축소로 언론사의 국제관계 및 국제경제, AI·반도체·양자 등 첨단과학 분야 글로벌 취재역량 부족 상태 지속 및 생성형 AI 등장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개별 언론사들의 디지털 대응 능력 향상 필요” 운운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억지로 짜맞춘 느낌이 물씬하다. 언론재단은 구체적으로 올해 기준 62명인 해외 연수 인원을 내년 161명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신문사에 재직한 33년 6개월 동안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해외 연수의 기회를 붙잡으려고 치열하게 애쓰는 지켜봐 왔다. 정말 빠듯한 시간을 짬내 학원에서 어학을 익히고, 없는 시간을 쪼개 유력 인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적어도 기자들의 직업 윤리와 도덕적 감수성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해서 해외 연수 기회 확대가 얼마나 많은 기자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여질지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재단을 통해 해외 연수를 다녀온 이들이 그 인연을 이어가며 그 재단이 속한 재벌그룹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도 익히 알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입을 틀어막고 재갈을 물리려는 의사만 앞선 이 정부가 국민 세금을 활용해 갑자기 세자릿수로 언론인의 해외 연수를 확대하려는 저의를 꿰뚫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 세금을 활용해 확대된 해외 연수의 기회를 살려 기자 역량을 키우는 계기로 삼는 일도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뻔히 독이 발라진 성배를 굳이 마셔야 하겠는가 말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기꺼이 그 독배를 마시려 들 것이다. 이 정부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이도운 홍보 수석이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검찰의 애완견' 발언으로 궁색한 처지에 내몰린 상황에 언론재단이 노골적인 언론 장악 의도를 드러낸 해외 연수 확대 방안을 발표하는 정무 감각에도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한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17일 TV 조선에 출연,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관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그건 그냥 내 편에 유리하게 하고 싶은 장악 의도라고 본다면 이 사람(이 대표)은 언론을 싸잡아서 언론 혐오를 보여주니까 트럼프가 꿈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재밌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그냥 내 편에 유리하게 하고 싶은 장악 의도'라고 가벼이 넘기고 '이 대표는 싸잡아서 언론 혐오를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정부를 움직여 그 의도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그럴 힘을 갖고 있는 윤 대통령의 언론관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이 의원은 자신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민주당 소속 위원들을 만날 때마다 '진짜 언론이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생각하냐'라고 물어야 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 의원이 던져야 할 질문은 '윤석열 정부가 언론을 애완견으로 바라보고 다루려 하는 것인가', 또 '그런 언론관이 언론에 얼마나 치명적인 해독을 끼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