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추석 연휴 기간을 앞두고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 감독의 <벨라>가 개봉되었다.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감독의 첫 작품이 벨라였고, 그 첫 작품이 한국 극장에 개봉하였으니 처음 들어 보는 감독의 이름일 수 밖에 없었다.
-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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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
출연 에두아도 베라스테구이,타미 브랜차드
개봉 2009.10.01 미국,멕시코, 9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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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와 한국 영화의 인연은 3년 전(2006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 때부터 시작됐다.
2006년 31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한국에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 신인 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디스커버리 부문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분에,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 비전 부문에 각각 초청되었던 것이다.
이 때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 감독의 <벨라>가 관객상을 수상하며 북미 사회의 파란을 일으키는 영화가 되었었다.
토론토 국제 영화제 토론토 국제 영화제는 매년 9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영화제이다. 1976년 다른 영화제에서 출품된 우수 작품을 모아 새로운 영화제로 만든 것이 시작이 되어 현재는 북미 지역의 가장 큰 비경쟁 영화제 중의 하나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캐나다는 물론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300여 편 이상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영화제로서 올해로 34회를 맞고 있다.
올해에도 한국 영화 중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세계 현대 영화 부문에 출품 되기도 했다.
사랑과 생명, 치유에 관한 당신의 이야기 <벨라> <벨라>는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었던 남자 주인공 호세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자 주인공 니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세는 스페인 유명 프로 축구팀 입단 기자 회견을 앞두고 자신의 동네 차도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둘러 싸인다. 아이들은 프로 축구 선수가 된 호세에게 싸인을 해달라고 한다. 호세는 나뿐만 아니라 호날두 같은 유명한 선수들의 싸인도 받아서 공을 돌려 주겠다며 하며 그의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고 기자 회견장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어린 소녀가 호세의 차에 부딪혀 죽게 된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호세는 축구를 그만 두게 되고, 그의 큰 형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게 된다.
니나는 호세의 큰 형이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레스토랑에 출근을 하지 않고 슈퍼마켓에 간다. 슈퍼마켓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임신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늦게 레스토랑에 출근을 하게 되지만 호세의 큰 형은 지각하는 직원 따윈 필요 없다며 그녀를 해고한다.
"니나, 곰 인형 떨어 뜨리고 갔어요." 니나가 해고를 당하는 모습을 지켜 본 호세는 니나를 뒤따라 간다. 그녀가 떨어 뜨리고 간 곰 인형을 건네며 "내 도움이 필요 없나요?"라고 물으며 니나와 함께 지하철에 타게 된다.
영화 <벨라>는 프로 축구 선수의 꿈을 접고 도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호세가 원치 않는 임신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해고를 당한 니나를 뒤따라 가며 시작된다. 호세는 니나의 새로운 일 자리를 주선해 주기도 하고, 해변 근처 멕시코의 한적한 자신의 고향 집에 데려와 니나의 기분을 풀어 주기도 한다.
영화는 마치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멜로로 향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꼭 결말도 아름답게 임신을 한 여자를 남자가 사랑하게 되어 그 아이를 낙태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이 우려했던 결론과 다른 방향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사랑 이상의 사랑 호세와 니나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이 아니었다. 호세가 니나에게 연민을 느껴 레스토랑에서 해고된 여직원을 따라 간 것도 아니고, 니나를 사랑해서 그녀를 따라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 준 것도 아니었다.
호세는 교통 사고로 어린 아이를 죽였다는 자책감으로 축구를 포기한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니나 또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지만 남자 친구는 책임을 회피하며 그녀를 떠나 그 때문에 상처 받은 여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에서 치유를 시작한다.
▲ 호세의 집 앞 해변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 실버스픈 벨라
니나 "나 임신했어요. 오늘 지각 한 것도 임신한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남자 친구는 애를 떼라면서 자신은 책임 없다며 도망갔어요."
호세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나나 "애 낳을 생각은 없어요. 행복한 가정 아래에서 애를 낳아 키우고 싶어요. 제가 어릴 적에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행복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요."
호세 또한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 그가 교통 사고를 냈던 차에 앉아 니나에게 자신이 축구를 포기하게 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니나 "옛날에 축구 선수였어요?"
호세 "네. 프로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한 여자 아이를 죽게 만들었어요. 그 여자 아이의 엄마는 혼자서 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삶의 희망을 아이를 통해 얻었는데 제가 그걸 짓밟아 버린 거죠."
잔잔한 감동의 <벨라>…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행동하게 하다 <벨라>는 통속적인 사회 관계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대신 새로운 관계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다. 통속적인 사회적 관계와 사랑은 서로가 사랑을 하게 되면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을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감싸 주는 것이다.
하지만 <벨라>에서는 호세와 니나의 뜨거운 키스 신 하나 없고 니나의 원치 않는 임신의 문제를 결혼이라는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다. 서로의 삶과 삶이 교차하여 각자의 상처를 하나 하나 치유해 나가는 새로운 관계(혹은 사랑)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벨라>의 잔잔한 감동은 2007년 현지에서 개봉 당시 뉴욕 타임즈 독자 설문 조사에서 해당 연도 영화 중 관객 평점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온라인 Yahoo!, Rottentomatoes.com, fandango.com 등에서도 관객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발적인 홍보 대사가 되어 온라인 추천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오프 라인에서는 포스터와 전단 게시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도 했다. 또 기업의 프로모션을 제안하고, 언론사에 기사를 요청하는 등 관객이 영화를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었다. 이런 현상은 북미 사회에 이슈가 되어 영화 뒷 이야기를 엮은 책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통속적인 사랑, 인간 관계에 질린 모든 사람들에게 <벨라>를 추천한다. 영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가능성이 한국 사회에도 고민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마이뉴스 배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