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버드나무 물가에 찾아온 손님
김인후(金麟厚)
손님이 찾아와 사립문 두드리니
여러 차례 소리에 놀라 낮잠에서 깼네
관 쓰느라 미처 인사를 못했는데
말을 매어 놓고 물가에서 서성이네
柳汀迎客(유정영객)(掃灑園39영)
有客來鼓竹(유객래고죽) 數聲驚晝眠(수성경주면)
扶冠謝不及(부관사불급) 繫馬立汀邊(계마입정변)
[어휘풀이]
-소쇄원39영(掃灑園39영) : 소쇄원 경치를 묘사한 48영 가운데 39영이다.
-鼓竹(고죽) :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을 두드리다
-扶冠(부관) : 관을 쓰다.
[역사이야기]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학자로 호는 하서(河西)이다. 그의 5대조 김온(金穩)이 세자 책봉에 연류되어 사사(賜死)되자 전라도 장성에 이주하여 살았다. 1528년에는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1545년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난 후에는 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고향인 장성에 내려가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하서는 성경(誠敬)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하고 이황의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에 반론하여 이기는 혼합하여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집에 『河西全集(하서전집)』이 있으며 저서에
『주易觀象篇(주역관상편)』과 『西銘四天圖(서명사천도)』 등이 있다.
소쇄원(掃灑園)은 1530년 조광조의 제제 소쇄웅 양산보(梁山甫)가 전남 담양군 지곡리에 건힘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조선시대 정원. 1983년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이곳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여러 건물을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이다.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오곡문(五曲門), 애양단(愛陽壇), 고암정사(鼓巖精舍)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쇄옹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낙향하여 소쇄원을 건축하였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