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죽어가는 존재다. 죽음은 죽어감의 완료형이다. 시한부 환자들은 죽음을 코앞에 둔 이들이다. 이들에게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못해 절박함 그 자체다. 사랑하는 자녀를 두고 생을 마쳐야 하는 시한부 환자에게는 병약함 속에서도 절박함이 묻어 있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환자들은 치료의 대상이기 전에 위로해야 할 대상이다. 병원에 갇혀 삶의 소망을 잃고 치료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이들에게 저자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시한부 환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대화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한부 환자이기에 멀리할 것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평상시처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이 닿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많은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때로는 사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환자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대상으로 본다.
시한부 환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다 안다. 숨길 필요가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부정한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분노가 일어나는 이유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죽음을 수용한다.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품위를 가지고 죽기를 바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당시 병원은 지금의 병원 분위기와는 달랐던 것 같다. 시한부 환자들에게 정확한 진단을 말해 주지 않고 살 소망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은 모양이다. 시한부 환자도 인격이 있고 죽어가는 존재이지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임을 간과했던 것 같다.
근대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인 시슬리 손더스에 의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돕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죽음과 죽어감에 관해 얘기하기를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환자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환상,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병이 들거나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를 좀 더 알아가게 되고 그들의 소망이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것이고, 고통이나 육체적 불편 없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시한부 환자라고 해서 만남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필요하다. 의료진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어렵다면 병원 직원, 병원에 상주하는 목사, 사회복지사 등도 괜찮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곁에 함께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시한부 환자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이 실려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의 주제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지만 결코 피해야 할 내용은 아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읽어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