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50)이란 이름이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의 집단 소송을 담당한 변호인으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정치무대를 떠나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며 영국으로 떠난 게 2012년6월. 그때만 해도 원희룡의 이름이 다시 신문지상에 등장하게 되면 ‘출마’나 ‘임명’의
꼬리표를 달고 있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20개월의 시간을 건너 ‘집단 소송을 대리하는 무료 변론 변호사’가 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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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전의원이 6일 프리미엄조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명원 기자
원 전 의원이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 됐을 때 그는 혈기방장한 36세였다. 학력고사든 사법시험이든 시험만
치면 수석을 하는 수재가 국회의원이 돼 여의도에 등장한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범인(凡人)은 꿈도 꾸기 힘든 그의 ‘수석
경력’은 상당한 아우라를 뿜어냈고, 여기에 ‘소장 개혁파’의 포스가 더해졌다.
퀴퀴한 보수정당 안에서 그의 목소리는 상큼했다. 억지가 판치는 정치 언어들 가운데 그의 말은 유독 논리정연해 보였다. 심지어 당 지도부를 향해 거침 없이 쓴소리를 하는 용기까지 갖췄다. 그는 보수 정당의 미래처럼 보였다.
하
지만 참신해 보이던 그의 언행이 좌충우돌로 비치고, 이율배반으로 퇴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선(選)에 이른 중진
의원이 ‘소장 개혁파’라 불리는 모순 속에서 그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2011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다가
4위에 그치면서 수모를 당했다. 그는 19대 총선에 불출마했고 12년을 굴러온 정치판을 떠났다.
수재가 정치판에서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원 전 의원은 집단소송 변호사로 복귀하면서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도 함께 가져왔는데, 그는 그 책에서 “12년 정치활동은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실
패한 수재는 지금 정치 재수(再修)를 준비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이 내리 비추던 첫 출발 때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가
15년간 장롱 속에 넣어뒀던 변호사 자격증을 다시 꺼내든 것은 재수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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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소장파는 동료들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했다." /이명원 기자
“서울의 모든 커피전문점이 내 사무실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스타벅스를
전전하며 지낸다. 서울의 모든 커피 전문점이 내 사무실이다. 영국과 중국을 갔다가 지난해 9월 귀국했다. 4개월간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 책을 쓰는데 매달렸고,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에서 실질적 이슈를 파고 들어 비전을
찾고 있다. 예를 들면 정부 복지 지출 체계와 아이템이 백화점 식으로 나열돼 있는데 일부를 민간 일자리화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국회에서 나와 있으니까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어 좋다. 성(城)밖의 생활도 나쁘지 않다.”
-주위에서 ‘너무 오래 쉰다’고 하지 않나.
“정치인은 놀면 안된다며 뭐라도 하라는 사람도 있고, 놀 때 제대로 놀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왜 ‘카드 3사의 개인정보유출 사건’ 소송에 나섰나.
“순
전히 우연이다. 나와 가족들부터 피해자인데다 여기저기서 ‘이런 건 소송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오더라. 기획소송을 하는 변호사들이
있긴 하지만 공신력이 없다. 알아보니 연수원 43기 새내기 변호사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더라. 이들도 ‘선배님, 놀고 계신데
우리한테 이름 좀 빌려주세요’라고 제의해 와서 의기투합했다. 원래 바닥에서부터 뭔가 실체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면서 기회나 계기가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주위에선 대권주자까지 나섰던 사람이 무슨 소송이냐며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면허를 장롱에 넣은 지 15년이 넘었다. 소송 접수하는 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더라.”
“안철수 신당에 갈 가능성은 1%도 없다.” -6ㆍ4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새누리당 내에서 제주지사 후보로 원희룡 차출론이 나온다. (그는 제주중문중,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제주 출신으로 한때 ‘제주의 자랑’으로 불렸다.)
“실
제로 생각해보지 않았고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 당의 공식적 요구가 오더라도 안하겠다고 일단 버틸 생각이다. 하지만 ‘당이
어려워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데 왜 최소한의 희생과 기여를 하지 않느냐’고 당원들이나 동료 의원들이 물어오면 상당히 어려운 국면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제주지사로 나설 여지가 있다는 얘기인가.
“사실 절대로 안된다는 게 어디 있나. 1%정도의 여지는 있다고나 할까.”
-안철수 신당으로 갈 가능성은 없나.
“그 가능성은 1%도 없다. 안철수 당에 대해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있으니 당신들이 잘 하라고는 했다. 하지만 각자가 자기 자리서 할 일은 따로 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추석 때 만났는데 그걸로 끌이었다.”
-8월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할 생각은 없나.
“이
명박 정부 말기에 여당 사무총장을 했고 거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2011년 당권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나는
바닥에서 내가 정치를 해야 하는 내용적 실체와 그것에 대한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갖고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최소한의 ‘오케이’ 사인이 없이 정치일정에 무작정 뛰어들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일세를 풍미했던 소장파 멤버인데
움직이면 소리나게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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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대선은 괴장히 유동적이고 격변 가능성이 높다." /이명원 기자
“나뭇가지의 미덕을 갖추겠다.” -책에서 ‘새누리당 소장파는 실패했다’고 했다. 왜 실패했나.
“동
료들의 마음을 사서 최소한의 세력으로 뿌리내리는 데 실패했다. 전적으로 그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당내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과 소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갈등과 딜레마가 있었다. 물론 보수정당이 중원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한 소장파의 공(功)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이기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중원(中原)이 방치되고
있다.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에서 중원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때 과연 연결고리가 있을까라는 걱정이 된다.”
-과거의 원희룡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나.
“중
진으로서의 스타일과 나름 여유를 갖고 무슨 일이든 성숙한 모습으로 풀어나가겠다. 사람을 키울 줄 알고 다른 사람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열 개라도 다섯 개만 하겠다. 새들이 앉을 수 있는 나뭇가지의 미덕을 갖추겠다.”
-박근혜 정부 1년을 평가해달라.
“관
료 공화국이란 점이 너무 걱정된다. 관료들의 틀과 칸막이를 넘어서려면 역동적인 추진력이 필요한데 대통령 혼자서 독려하기는 힘들다.
대통령이 정당 정치를 너무 도외시한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까봐 걱정된다. 당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원이 방치돼 있다. 당은 민심을 대변하고 좀 더 시끄러운 소리가 나야 한다. 내부의 긴장과 살아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쓴소리를 전달하는 모습을 일부러라도 해야 한다.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분위기가 되다보니 걱정이다.”
“관료들로 둘러싸여 너무 경직된 느낌을 준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에 점수를 준다면?
“100
점 만점에 70점. 초기에 외교안보나 부패 관리 등은 잘한 것 같다. 30점은 깎은 것은 관료들로 둘러싸여 너무 경직된 느낌을
준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유연해야 한다. 살아있는 세포는 유연하고 죽어 있는 세포는 경직돼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사
실 2004년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든 세력이 소장파다. 보수의 정통 후계자인 박근혜라는 사람이 보수 진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냐.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니까 보수
진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묻힌 것 아니냐.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념이나 국가 역사 부분에서 너무 경직돼 있더라. 그 부분에서
충돌한 것이다.”
-2017년 대선을 전망해본다면.
“절대 주자는 없다. 10%대 지지율의 주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굉장히 유동적이고 격변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 나름대로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과감하게 주문하고 싶은 게
대통령제에서 내각제 개헌으로 가자는 공통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사람과 그것에 동조한 연합세력이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문재인, 안철수 의원도 싸우다가 별수 없으면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세력인 새누리당으로서도 절대 손해볼 일이 아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