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와이 여행 대신, 과거 황당했던 그러나 오래 기억나는 에피소드 몇 개를 올리겠습니다.
여행지에서 범한 어리석은 일
태국의 불교여행지인 아유타야를 찾았을 때다. 호텔 찾기 사이트에 올라 온 믿을 수 없는 가격에 깜짝 놀라 택시를 타고 호텔을 찾아갔다. 내심 이런 가격이면 택시비를 충당하고도 남는다는 요량으로 오랜만에 호사를 부려 보았는데, 아뿔싸! 이곳은 사원과 사십 킬로나 떨어진 외딴 곳이었다. 이미 택시는 떠났고, 오늘 밤 이 호텔에 머문다면 사원 구경을 위해 오고 가느라 시간을 다 낭비하게 생겼다.
설상가상,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못하고, 식당은커녕 과자 하나 파는 편의점도 없었다. 결국 호텔을 포기했다. 대신 사원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을 찾아 지프니에 올랐다. 설왕설래하는 우리를 보고 옆에 바싹 앉아 있던 태국 아가씨가 말을 걸어온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한다. 어눌한 말로 어디를 가냐고 묻는다. 아유타야에 간다고 하니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자기만 따라오라고 한다.
상냥하고 엽렵한 태도에 믿음이 갔다. 20분 뒤에 빨간 버스가 오면 그것을 타면 된다고 알려주더니, 자기는 아빠가 마중을 오게 되어 있다면서 자리를 뜬다. 과연 자동차가 하나 온다. 도요타다. 아가씨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우리에게 온다. 아유타야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심지어 아유타야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사원들을 가이드 해 주고, 야시장에 가서 태국 전통음식까지 사 준다. 똠양꿍, 코코넛 구이, 수박 주스 등 모두 입맛에 맞았다.
“처음 본 우리에게 왜 이리 친절하냐?” 고 물으니
“여기는 불교의 나라인데 부처님은 사원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아가씨는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부처님의 마음을 담아 연꽃으로 지어주고 싶었다. 꽃이란 발음이 어려우니 ‘연화’라 하고 차일을 기약했다. 그날 밤 우리는 신선로 같은 그릇에 계란찜을 넘치도록 가져다 주는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기적 같은 행운을 자축했다.
두 번째 어리석었던 일은 인도에서다. 인도의 발음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3주 동안 인도여행을 하면서 원숭이한테 습격도 당하고, 사기도 더러 당하면서 여행에 지쳐갔다. 요가의 고장 리시케시를 끝으로 우린 여행을 접고 그날 저녁 델리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버스기사에게 델리로 가는 게 맞냐고 재차 확인하고 탑승했다. 혹시 몰라 뉴델리로 가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답이 왔다. 우리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도착하기까지 4시간이 걸리니 한숨 잠이나 자자고 작은아이를 품고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버스는 천천히 움직였다. 세 시간이 흘렀는데 계속 산으로만 올라 간다. 이 산을 넘으면 델리가 나오겠지? 반신반의하면서 설산을 바라보았다. 스피드를 줄이라는 협박성 문구가 계속 나온다. Speed never meet safe란 표지판도 보인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산꼭대기에 오르더니 다 왔다고 한다. 깜짝 놀라 여기가 델리냐고 했더니 표지판을 보여준다. 테리!! 델리는 딜리라 부르고 델리는 테리와 같은 발음이었다. 이곳도 올드테리. 뉴테리가 있다. 우리의 사정을 듣자 산골마을의 현지인들은 무슨 구경거리나 생긴 듯 전부 쏟아져나와 우리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운전을 아주 잘하는 젊은 기사를 불러다가 100달러만 주면 델리 공항에 시간 맞춰 데려다 줄 수 있다면서 우리를 설득했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아찔한 산세, 속도를 내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표지판이 즐비했는데 거기를 초고속으로 달리겠다니, 아찔했다. 결국 비행기를 놓치는 거로 결론을 봤다. 남편은 한국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일주일 뒤에 일본항공이 뜬다고 하면서 추가요금 없이 비행 스케줄을 연기할 수 있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테리에서 맞은 밤은 짜릿했다. 한밤중에 누군가 부르는 것만 같아 나가보니 하늘에도 별이 쏟아지고, 지상에도 별이 빛난다. 지상의 별은 다름 아닌 저 아래 산골 마을에서 주렁주렁 새어 나오는 불빛이다. 비행기는 놓쳤지만 앞으로 별을 못 봐서 서운할 일은 없을 듯 많은 별을 본 밤이었다.
세 번째는 필리핀에서였다. 레가스피의 마욘화산은 한 번만 보기는 아까운 산이다. 원뿔 모양의 산이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떡하니 대령한다. 마치 초례청에서 신부가 처음으로 훤칠한 신랑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싶게 심쿵하게 한다. 음식도 특별하다. 마욘 화산 길잡이 아내는 살림 솜씨가 빼어났다. 코코넛밀크를 자작자작 부은 생선요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비가 흩뿌리는 날, 가이드 두 명을 대동하고 마욘화산을 올랐다. 마그마가 갑자기 굳어진 용암은 표면이 만질만질했다. 가이드는 차양을 쳐주고 커피를 끓여준다. 운치가 있다. 아들아이가 영어캠프에 들어가서 홀로 떠난 주말여행 속에서 맞이한 횡재였다. 파사이 시내터미널에서 10시간 버스를 타고 오면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 레가스피다. 툭툭을 잡아서 시내 곳곳을 구경하고, 하루는 보홀의 코코 힐 버금가는 산도 올랐다. 꼭 식구들과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눈 속에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리는 버스 대신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비가 1000페소인데 프로모션 가격이 떠서 비행기값이 1200페소였다. 서둘러 발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탑승했다. 한 시간이면 당도하는 비행인데 갑자기 동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겁이 났다. 방송도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이내 착륙하고 우리는 안도하며 공항을 나섰다. 툭툭 기사에게 다가가 레가스피 호텔 명함을 보여주며 데려다 달라고 하자 그들은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여기를 가려면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단다. 거기서 10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냐고,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10시간이 걸린다니 말이 되냐고 다른 기사를 찾겠다고 우겼다. 다른 툭툭 기사도 싱글싱글 웃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들 우리를 놀리는가? 부아가 날 무렵 공항이 몹시 낯익어서 다시 보니 여긴 마닐라다. 날씨가 안 좋아 회항하였던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럴 수가! 다시 공항에 들어가보니 요금을 환불해주고 있었다. 아들은 미성년자인데 여권이 없다고 환불을 안해 준다. 국내선은 여권이 없어도 탑승이 가능해 안 챙겨왔더니 두 번 걸음하게 생겼다. 부모 동반인데 꼭 신분증이 있어야 하냐고 따져도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결국 마욘화산은 나만 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언젠가는 식구들 모두 데리고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다시 찾아간다 해도 이제는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곳. 낯선 나라이기에 억울한 일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하고 물러서는 일도 참 많았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3.24 05:59
15년!와!저는 2005년에 식구들과 배낭여행을 갔는데요. 아직도 생생해요. 바라나시에서 10시간 연착한 기차타기가 제일 고역이었어요.그래도 모두 그리워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3.24 14:40
@사비나강 제 친구는 벌써 5번이나 갔어요. 마력의 나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3.24 07:01
그때부터 단어를 줄이시다니. ㅋㅋㅋ 요즘은 진짜 별다줄!마통은 마이너스통장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