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5일 나해 대림 제2주간 금요일 (마태오 11,16-19)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람이 복음에 무감각한 이유
예수님은 당신과 세례자 요한에게 무관심한 이 세대를 질타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여기서 피리는 세례자 요한을 의미할 수 있고 곡을 함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춤을 춘다는 행위는 자기를 버리는 행위이고 곡을 한다는 행위는 누군가의 마음과 하나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구원에 무관심할까요? 그분의 가르침을 따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안 믿어야 할 ‘핑계’만 늘어납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핑계 대지 않고 믿게 할 마음, 곧 “착한 뜻”을 갖게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를 먼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착한 뜻이 생기지 않습니다. 착한 뜻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은 가치를 잃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반면 지혜가 들어가 그 사람 안에 착한 뜻을 갖추게 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놀라운 표징이 됩니다.
곽상빈 변호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은 스팩을 지녔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공인회계사, 증권분석사, 감정평가사, 변호사, 손해사정사, 가맹거래사, 경영지도사, CIIA(국제공인투자분석사) 등 전문직 자격증 30여 개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150년이 걸려야 할 따낼 수 있는 자격증을 10년에 다 땄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머리가 좋았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고등학교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란 곳을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다섯 가족은 거의 길거리 나앉다시피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형제들마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마음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이 우리 안에 주님께서 능력을 넣어주셨고 그 능력으로 이웃을 위해 무한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불만과 죽고 싶은 마음을 접고 공부해보기로 합니다. 죽기 살기로 하니 3개월 만에 열 개의 자격증을 따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광야의 삶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을까요? 바로 세례자 요한을 만난 것입니다. 그가 세례자 요한을 만난 이유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려는 ‘착한 뜻’을 장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세상에 좋은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와 싸워 이기도록 이끄는 인물입니다.
이것을 넘어서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감사’입니다. 곽상빈 씨가 군대에 들어갔을 때 악마 같은 선임이 있었습니다. 그를 너무 견디기 어려워 그는 친구를 모아 하느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주님께 의탁하니 일이 잘 풀렸습니다. 시험을 얼마 앞두고 맹장이 터졌을 때도 주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니 이젠 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 감사하여 보답하는 삶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요한을 만나는 것도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모두 지혜가 심어준 착한 뜻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착한 뜻이 없으면 그 착한 뜻의 열매를 맺게 하는 예언자와 주님에게 무관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에게는 이 광야가 신학교였고 세례자 요한이 ‘하.사.시’였습니다. 하.사.시를 읽은 것은 주일 학교 교사를 하는데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더 잘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려는 착한 뜻 때문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그리스도는 착한 뜻을 실천하는 방법과 힘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집시다. 그러면 그분들을 순서대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원글보기; ▶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