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남 홍익대 축구감독 기고
고려대 입학 예정이던 구본원 선수의 자살은 한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한국 대학 스포츠에 잔존하는 악습이 고질병이 되어 곪아 터진 것으로 봐야 한다.
나도 대학 선수들을 가르치는 감독이지만, 선수들 내부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위계질서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3·4학년이 되면 그야말로
상전이다. 저학년들은 선배들한테 운동이나 인생을 배우는 게 아니라
빨래나 잔심부름 등 선배들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선배들은 경기
중에도 “똑바로 못해, 끝나고 보자”라는 식의 엄포를 놓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생들이나 후배들은 경기를 잘 할 수 없다. 선배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서, 창조적인 경기를 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최근 우리 학교를 졸업한 한 운동선수의 부모는 “우리 애가 저학년 때는 골을 넣으면 선배들한테 혼났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잘못된 선후배 관계뿐 아니라 ‘머리’를 키워주는 못하는 우리의 운동문화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선수들은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 장차 사회에 나가 적응할 수 있는 준비는 운동 말고는 없다.
오로지 ‘운동 기계’로만 키워진다. 감독들도 당장 성적이 안나오면
잘리게 돼 악순환은 반복된다. 대학 선수도 마찬가지다. 100점 이하의 수능점수로 대학 들어와서 졸업할 때까지 수업에는 전혀 참가하지
않는다. 졸업 뒤 프로나 실업팀으로 가는 선수는 20~30%밖에 안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70%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지도자의 노력이 중요하다. 지도자들은 선·후배 선수들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신입생이나 하급생과 될 수 있는 한 많이 만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선배들의 강압적인 행태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학교 당국도 성적이나 승패보다는 선수들의 인격완성에 신경을 쓰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중·고교 때부터 수업은 반드시 듣도록 해야 한다. 내가 고려대를 다니던 70년대에는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를 찾아가고, 리포트를 쓰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 선수들은 교수 얼굴조차 모른다.
더 후퇴한 꼴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 대표팀을 맡은 뒤 “선후배들의 관계가
너무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하물며 대표팀인데도 그랬다. 구본원
선수의 자살은 야구, 축구 등 각 종목에 뿌리깊은 우리 스포츠의 전근대적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스포츠인들 모두는 “정말 진정한 스포츠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스스로한테 되물어야 보아야 한다.
김성남/홍익대 축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