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월26일 금요일
[(백)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도회] 복음을 선포하는 천상농장의 복된 일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2티모 1,1-8
† 복음 루카 10,1-9
◈ 오늘의 묵상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는 예수님의 마음에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능력에 의지하여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며 서로 의지하게 하셨고, 파견된
제자들은 걱정과 불안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일에만
열중하도록 소명을 받습니다.
복음 선포에 한생을 바치고 이제 수인이 된 바오로 사도가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낸 편지를 읽노라면 바오로의 진심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스승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에 낙담하고 있을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바오로 사도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들이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울 것을, 주님을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할 것을 바랍니다. 몸은 갇혀
있지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심을 믿은 바오로 사도의 신앙과 인품이 엿보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대일수록 성공에 대한 희망보다는 좌절의 슬픔이
더 커집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영성의 시작이지만, 자발적인 비움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분노와
원망이 늘어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을 나누고, 부부와 연인 사이에
신뢰를 쌓으며,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선사된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낙담하거나
슬퍼하는 이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2018년 나해 1월26일 금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1,1-8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9
저는 워낙 머리숱이 많고 또 머리카락이 두꺼워서 어렸을 때부터
미장원에서 “손님 때문에 가위 날 다 버렸어요.”라는 소리를 꽤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뻣뻣한 머리카락이다 보니 조금만 손질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지저분한 머리 모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달 이상
이발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게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신부님, 이발 좀 하셔야겠어요.”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되면 솔직히 ‘내 머리카락이고 누구에게 특별히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
뭐 어떤가?’ 라는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머리손질을 더욱 더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면 더욱 더 이발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결국 그런 말을 듣고서야 동네 미장원을 찾습니다. 단순히 커트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10분이면 끝나더군요. 그 10분의 시간을 내지 않아서
그렇게 많은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미용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손님은 머리가 많이 뻗치니까 머리 감고서 딱 5분만 시간을 내서
손질하세요. 그러면 늘 깔끔할 것입니다.”
약간의 시간만 내면 깔끔해질 수 있습니다. 집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에 몰아서 치우는 것보다는 하루에 조금씩만 시간을 내면 늘
깨끗한 집이 됩니다.
주님과 나의 관계도 이렇다고 생각됩니다. 날을 잡아서 하루 종일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나을까요? 힘들기도 하겠지만, 하루에
얼마씩이라도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주님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영적으로 깨끗한 내 자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말씀하시지요. 하느님의 일거리는 너무나도 많은데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과의
관계보다 세상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늘 나중의 일이 되면서 점점 주님과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세상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즉,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얼마만이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간다면 분명히 편하고
쉽게 주님과 가까운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느끼고 그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초심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경지를 맛본다(조셉 골드 스타인).
성 티모테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종종 기성세대가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면서 “그때가 좋았었다.”라고
말합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말이지요. 또한 요즘 시대가 훨씬 더 풍요롭다고 말하지만,
개인주의로 인해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추억을 들추십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사실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자살률이 높은 시대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5년에는 29.81명(10만 명 당)이었고, 10년 뒤인
1975년에는 31.87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훨씬 높을까요?
2015년 통계를 보면 25.8명으로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두고 개인주의, 산업주의, 황금만능주의가 강조되는
시대일수록 자살률이 늘어난다고 말합니다. 자살률이 늘어나는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일까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성 티토 주교.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복음을 선포하는 천상농장의 복된 일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1월26일 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
루카 10,1-9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복음을 선포하는 천상농장의 복된 일꾼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앞서 복음을 전할 일꾼들을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보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0,3-5)
오늘의 말씀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꾼인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도록 불림받고 파견받은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하느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이 아닌 재물이나 인간의 힘에
의존할 때 결코 복음은 선포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복음은
선포됩니다.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고 선포하려면 먼저 세속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선포하는 일꾼들은 먼저 자신을
비워내고 가난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속을 떠나 전적인
방향전환을 하지 않은 채 복음을 선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현세의 것들을 포기하고 세속을 떠나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면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어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여기에 신앙의 역설과 신비가
있습니다. 버릴 때 주님께서 나의 것이 되어주시며, 자신과 세속에서
떠날 때에 모두를 건네시며 만나주십니다. 버리고 떠날 때 오히려
불안 대신 평화가 찾아들며, 비참한 가난 대신 텅빈 충만함 가운데
머물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은 그렇게 떠나고 버릴 때 선포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수확물은
가난과 평화를 품은 이들의 손에 의해 거두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 선포되지 않는다 하십니다. 재물을 품고
나서는데 복음이 선포되겠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생명을 품고 나설 때
복음이 선포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고 누군가를 만날 때 그
만남은 주님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지요.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명의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주셨지요. 조건없는 사랑의 선물을 거져
주셨습니다. 온갖 좋은 것을 주셨고, 매순간 주고 계시며 앞으로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그 놀라운 주님의 선물을 저장하고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복음선포는 주님께서 이미 주셨고 주고계시는 바로
그 선물들을 꺼내보이고 나누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의 터는 주님 친히 수많은 씨앗을 뿌리시고 기르시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천상농장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곳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슬픔과 고통, 불의와 악, 차별과 소외가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비복음과 반생명의 바로 그 터에서 주님께서 주신
복음의 낫을 들고 수확에 나서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과 생명과 평화를 품고 복음을 선포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불의 앞에서도 우리의 모든 것이신
주님을 굳게 믿으며 평화와 정의, 해방과 자유를 선포해야겠지요
(10,5-9). 오늘도 주님의 복된 일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를
본받아 천상농장의 복된 일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 10, 2)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1월26일 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 10, 2)
주님의 돌보심으로 씨앗이 자라났습니다.
익어가는 시간을 지나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때가 되었습니다.
수확할 일꾼으로 부족한 우리를
주님께서 사랑으로 직접 불러주셨습니다.
부르심과 기도 모두는 사랑입니다.
일꾼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이루려 하십니다.
결실의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결실의 풍요속에 서 있는 우리는 어떠한지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의 참된 봉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일꾼의 땀방울이 그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은 많은 데 사랑을 실천하는 일꾼은 참으로 없습니다.
사랑의 참된 일꾼이 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원]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1월26일 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복음: 루카 10,1-9: 추구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티모테오는 “우리 주님의 은총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나에게 넘치게 베풀어 주셨다”(참조: 1티모 1,12-17)고
믿은 “죄인들 중의 으뜸”인,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 아마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의 첫 선교여행 중에 개종한
것 같다. 아버지는 이방인이고 어머니는 유다인이었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와 같이 유다인들 사이에서 사도직을 행할 수 있었고 그는 할례를
받았다.
티모테오는 바오로와 같이 두 번째 여행과 세 번째 여행을 함께 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그에게 여러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마케도니아의 테살로니카와 코린토의 공동체들을 맡겼다. 사도는
그에게 신약에 정경이 된 적어도 두 서간을 남겼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가 첫 번 감옥에 있는 동안 가까이 있었고 그 후에 에페소에서
주교직을 행하였다. 감옥에 갇힌 바오로는 두 번째로 로마의 가는 길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오로 사도의 또 다른 협력자인 티토는 이방인 가정의 출신이었다.
사도는 그도 사도의 첫 여행 중에 개종시킨 것으로 보인다. 티토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예루살렘까지 동행하였는데 예루살렘은 바오로
사도의 제자들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례를 적극 주장하는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하여 반대를 했던 곳이다.
티토는 코린토와 사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였다. 바오로가 남긴
서간에서 이미 크레타의 사목자로 나타난다. 성 바오로는 그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면서 에피로에 있는 니코뽈리와 일치하라고 적고 있다. 거의
달마치아로 그를 보내었을 것이며 그 곳에서 특별한 모습으로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 보면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뽑아 둘씩 짝을 이루어
당신에 앞서 보내셨다. 왜 그랬을까? 이 두 사람은 이리 같은 세상에
먹이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은총이 되도록 보내신 것이다. 두 제자는
그들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간 것이다. 사랑으로 모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은총이 되게
하시려고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신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지 사소한 일에 관심과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4절)고 하신 것이다. 또 수입을 바라고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더 좋은 음식, 더 나은 숙소를 바라거나
찾아다녀서도 안 된다.
손님 접대는 당시에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거룩한 의무였다. 낯선
여행자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손님접대는 그 마을의 의무였고
풍습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현세적인 어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복음의 전파만을 위하여 주님께 의지하며
헌신하는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신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일꾼이 적다는 것이 예수님의 아쉬움으로
보인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2절)고 분부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 똑같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꾼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지금 상황으로는 성직자들도 부족하지만, 우리
신자들로서도 일꾼이 너무나 부족하다.
나 자신의 봉사가 이 공동체에 필요한 줄 알면서도 뒷짐 지고 있는
신자들이 많다. 일꾼이 부족하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며, 일꾼도 어떤
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일꾼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겠는가? 어느
누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의 축복과 구원을 위해 일을 할
사람이고, 그런 일꾼으로 부름 받은 것이며 현세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일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더 많은 훌륭한 일꾼이 나오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일꾼들을 위해, 또한 더 많은 일꾼들이
나오도록 미래의 일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
가운데서 배출해야 한다. 우리 자신부터 먼저 투신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하자.
- 수원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서울]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처음으로 예비자 교리를 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돈보스코 센터에서 지냈습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고, 용접 일을 배웠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토요일에 학생들에게
예비자 교리를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주 신길동에서
봉천동으로 가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30년 전의 일입니다. 교리를
하기 전에 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이름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정성을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첫 본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많은 분들이
강당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마치 학원 선생처럼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인간, 종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서, 성사, 전례, 교회, 신앙생활,
교회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가방에 선물을 넣어가지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가방에는 ‘묵주, 성서, 십자가’를 담았습니다.
예비자들은 몇 번의 질문 만에 가방에 있는 선물을 알아맞혔습니다.
재미있었고, 보람 있었습니다.
적성에서는 두 명에게 예비자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한명은 통닭을
배달하였고, 다른 한명은 우유를 배달하였습니다. 통닭을 배달하던
친구는 가끔씩 통닭을 가져왔습니다. 우유를 배달하던 친구가 노루를
가져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교구청에 있으면서 예비자 교리를 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매일 복음 묵상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사제는
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가끔 외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해물 뚝배기’를 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음식은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얼굴 표정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시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친구들도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직원들이 좀 더 친절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식당도 맛이 있었습니다. ‘갈치조림’을
먹었습니다. 경치도 좋았고, 직원들도 친절했습니다. 얼굴의 표정이
모두 밝았고,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당연히
친구들도 나중에 다시 오자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두 곳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잠시 생각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를 선택한다면 ‘천주교’를 택하겠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방문한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준 사랑과 희생을 본받아 영원한 생명에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이기적인 모습, 우리들의 이율배반적인 신앙생활, 우리들의 나약함
때문에 어쩌다 성당을 찾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합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신념이 있어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는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런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걱정하였고, 제자들의 가족들까지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보면서 ‘티모테오와
티토’는 참다운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전하는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을
것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감사할 일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근본에 충실하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1월26일 금. 성 티모테오.티토기념 (루가 10,1-9)
근본에 충실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10,4)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라 하시며 홀로서기를
바라셨습니다.‘인사는 왜 하는가?’생각해 보면 사랑과 존경에서 합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미를 잃을 때가 많습니다. 잘 보이려 하고, 인정받으려 하며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또 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근본은
잃은 채 껍데기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인사까지 하지 마라.’는 것은 한 마디로
‘한 눈 팔지 마라’,‘양다리 걸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소명을
받았으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마음을 쏟아야지 어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
언젠가 익명의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그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 의탁하며 기도하라고 하시며
신자들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더 많은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 ‘끊어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오로지 주님 안에
머물라는 사랑의 충고였음을 생각 하며감사한 마음을 간직합니다.
인사하다 보면, 다시 말해 사람에게 매이다 보면 진짜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다는 일깨움을 주십니다. 사람이 정에 매달리다 보면 근본을
잃게 됩니다. 하느님으로 족해야 하는데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인기가 오르는 것 같은데 주님의 눈 밖에 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
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고,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나의
가슴은 뛰노라”)(이사61,10). 하느님만을 갈망하고 즐거워해야 하거늘
인간적인 욕망이 왜 그리 강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오로는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도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2티모테오 1,8).하고 권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인간적인 것들에 매이지 않는 삶을
갈망하는 오늘을 겸손 되게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산다는 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단순한 입으로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을 거쳐
손발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주일 미사 중 신부님의 강론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성당
안에 요란한 총성이 울렸습니다. 놀란 신자들이 저마다 납작 엎드리거나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쥐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꼬마를 안고 성당 문을 향했습니다. 문가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나갈 필요 없다’며 말했습니다. “난 사람들이
오늘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댁의 아들은 신부님이
10년 동안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한 거라구요!”할아버지는 총성이
꼬마의 장난감 총에서 난 소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역시 삶의
경륜이 중요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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