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고위간부들, 주말 호텔서 업무추진비 썼다
5년간 주말 53건 997만원 사용
채용 비리 이어 방만 사용 논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고위 간부들이 주말에도 호텔, 식당 등에서 빈번하게 업무추진비를 사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받은 ‘선관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 따르면 상임위원, 사무총장 등 선관위 고위 간부들은 2018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주말에 총 53건, 약 997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쓴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대선 사전 투표에서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과 아들 특채 논란으로 물러난 김세환 전 사무총장은 2018년 5월 기획조정실장 당시 주말에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공명선거추진 활동비’ 명목으로 66만 원을 썼다. 전임 김대년 전 사무총장도 2018년 6월 주말 서울의 모 호텔에서 ‘정치관계법 제도 개선 의견 수렴 업무협의’ 명목으로 45만 원을 썼다.
‘아빠 찬스’ 의혹과 관련해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여권은 선관위의 방만한 업무추진비 사용 등을 근거로 감사원의 감사를 요구할 태세다. 앞서 두 차례 선관위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감사원은 관계자들이 이날 중앙선관위를 직접 찾아가 자료 제출을 압박했지만 선관위는 응하지 않았다.
선거 무관 행사에 선거경비 사용… 코로나때 호텔서 직원 격려
선관위 업무추진비 방만 사용
한우식당서 ‘의견 수렴’ 81만원 사용
스테이크 먹으며 동호회 운영 논의
선관위 “선거철 야근-주말 출근 많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휩싸인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모습. 과천=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8∼2023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에는 사실상 선관위의 1, 2인자인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비롯한 선관위 고위직들의 논란성 사용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주말인 토, 일요일에도 ‘업무협의회’ ‘공명선거추진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업무추진비를 썼다. 여권 관계자는 “별다른 외부 견제를 받지 않는 선관위의 안일한 분위기가 담긴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 주말 저녁 호텔에서 ‘제도개선 의견 수렴’
김대년 전 사무총장은 2018년 7월 사무총장 재임 당시 토요일 저녁 한 호텔에서 ‘정치관계법 제도 개선 의견 수렴 업무협의’ 명목으로 45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또 2018년 4월에는 ‘중앙행정기관 바둑동호인대회 개최 후 동호회 운영방안 논의’ 명목으로 ‘○○스테이크하우스’에서 12만7000원을 썼다.
법정공휴일에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허철훈 서울선관위 상임위원은 중앙선관위 기획국장 재임 당시인 2018년 10월 9일 한글날에 한 식당에서 ‘업무협의회 개최’ 명목으로 26만 원을 썼다.
또 박영수 전 사무총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했던 2020년 6월 ‘코로나19 특별재난지역 선거관리 노고 격려’ 명목으로 대구의 모 호텔에서 97만5000원의 업무추진비를 썼다. 지난달 ‘아빠 찬스’ 의혹으로 사퇴한 박찬진 전 사무총장은 2020년 1월 선거정책실장 시절 한 한우 판매 식당에서 ‘국회의원 선거 관련 일선위원회 의견 수렴’ 명목으로 81만8000원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전국 선거를 전후로 업무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8년 6월 지방선거, 2020년 4월 총선 등 대형 선거철과 맞물린 시점에는 고위직들이 주말에도 출근하고 평일에도 야근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선거 후에도 비용 처리 등으로 업무협의를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8년부터 5년 동안 선관위 고위직의 업무추진비를 연도별로 집계한 결과 전국 단위 선거가 없었던 2019년이 1억476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제7회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이 1억1218만 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선관위의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 조은희 의원은 “선관위에서 특혜 채용 외에도 업무추진비 방만 사용 등 각종 폐단이 빙산의 일각처럼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전반적인 감사를 통해 추가 부정과 비리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7일 감사원 관계자들이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직접 찾아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자료 제출 을 거듭 압박했지만 선관위는 이날도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 선관위, 고등학생 토론회에 ‘선거경비’ 사용
이런 가운데 선관위가 2018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지방선거경비와 업무 추진 등 각종 공적 비용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실이 더해지며 선관위를 향한 여권의 성토는 더 커지고 있다.
감사원의 2019년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각급 지역 선관위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일반 운영경비가 아닌 선거경비로 지방선거와 관계없는 행사나 선관위 자체 일정에 썼다.
당시 울산 등 12개 시도 선관위는 2018년 전국 고등학생 토론대회 예선을 개최하면서 행사용역 대금 등 총 6593만 원을 지방선거 관리경비로 집행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관리경비규칙은 지방선거 관리경비를 목적 외로 집행하거나 국비로 집행할 항목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을 어긴 것.
이처럼 자녀 특혜 채용 논란이 선관위 조직 전체의 관리 미흡으로 번지면서 여권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날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은 “선관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8명의 상임위원 전원이 사퇴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 수용 여부에 대해 위원회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윤태 기자, 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