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윤 명 수
오랜만에 고요와 평온이 평행선을 긋는 산뜻한 아침이다. 가을마당에 널브러진 고추처럼 뒤척이느냐고 여러 날을 깊은 잠과 함께 하지 못했었다. 며칠을 벼르며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던 일을 벌이기로 했다. 남편의 진솔 세모시 한복을 과감히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젊어 입기 민망하다기에 물이 날을 까봐 여러 겹을 싸서
장롱 서랍 깊숙이 고이 넣어 두었던 옷이다.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못 했을 내겐 어려운 결정이다. 육십 년을 넘게 살다보니 겁은 커녕 어떤 일도 다 괜찮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옴은 물론이며 웃음도 보태진다. 바느질 공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큰 상을 받으러 가는 이 마냥 가볍다.
아무리 제 옷이라 할지라도 선생님의 지시는 꼭 따라야 하는 것이기에 고운 보자기를 펼쳐 보였다. 아깝지 않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선생님의 우려 섞인 말씀이 있었지만 장롱속의 금 두꺼비 보다 주름진 손가락에 낀 은가락지를 택하겠노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모시옷 뜯는 일이 만만치 않을거라 하셨지만 사람의 손을 빌려 기계로 꿰맸으니 야무진 내 손으로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자만했다. 그저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마구잡이로 뜯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다고 하셨다. 먼저
저고리의 주머니를 뜯고 깃과 섶을 뜯고...... 옛날처럼 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밥을 티없이 안전하게 뜯을 수 있는 귀이개처럼 생긴 도구가 있어 안심을 했다.
햇빛이 가득 들어 차지한 베란다에 앉아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모시옷의 촘촘한 바늘땀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내 실수는 돋보기를 콧등에 얹는 순간 바로 왔다. 세모시의 씨줄인지 날줄인지 구분도 할 수 없다. 보통 천은 한 번의 외줄박기를 하는데 모시 같은 천연섬유는 두 번 말아 박기를 한다. 하찮고 쉬울거라며 자신만만하게 덤벼든 나는 금세 싫증이 났다. 화에 달구어진 얼굴과 꼭 같은 붉은 노을이 산허리를 지나 가슴 머리 끝에 갈 무렵까지 했지만 겨우 주머니 하나를 뗐을 뿐이다. 그것도 바늘자국만 남겼으면 좋으련만 어설픈 성형수술 한 듯이 명확한 흔적을 남겼다. 느림의 미학을 입에 달고 살면서 실천하지 않고 빠름 빠름의 광고를 그대로 답습한 보기좋은 결과물이다. 꽤나 큰 키의 남편인지라 한복의 크기도 다르게 컸다.
펼쳐놓은 모시옷은 군데군데 녹다가 멈춘 눈처럼 여러 조각이다. 뜯겨 나간 저고리는 적삼하나를 만들기도 부족해 보인다. 그냥 결딴이 났다. 도대체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을지 복종한 손보다 명령한 머리가 더 원망스럽다. 억센 뼈와 잔 가시를 잘 발라낸 흰 생선 살처럼 도려내서 쓸모있게 쓰고 싶었다. 머릿속에 꿈인양 그려 보았던 잠자리 날개 같은 아름다운 옷을 해 입기에는 한 눈에 봐도 무리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최면을 걸며 뜯은 모시를 보신 선생님은 눈과 입을 닫으셨다.
얼마를 갖고 주물렀는지 까칠했던 모시가 보드러운 명주같이 변했을 때 대작(?)이 완성됐다. 제대로 뜯었더라면 꽤나 반듯한 모시였을텐데 퍼즐 조각수 만큼 늘어났다. 긴바지를 자른 것은 겅둥한 바지로 저고리는 얼기설기한 조각보를 이은 듯 반소매다. 더운 날 시원하게 입으려 시도했던 것이나 뜯고 다시 만드는 과정에 흘린 땀이 서말이라 입기도 아깝다.
값이 되는 진솔옷을 뜯을 때는 힘이 넘치는 조상들의 옷, 우리 옷을 만들어 자랑하고 싶었다. 무모하고 형편없고 알량한 내 솜씨는 가름 옷의 정도를 확실히 그을수 있는 독특한 옷으로 재탄생 되었다. 보자기에 싸서 가져갔던 옷이 아주 작은 가방에 넣어 왔을 정도다. 국적불명 상상을 초월한 졸작을 만들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집에서라도 입을 수 있음에 그 나마 다행이다. 여러 달을 했어도 시원치 않던 재봉실력이 모시를 꿰매고 뜯고 다시 꿰매며 일취월장한 느낌이었다. 한번은 방에 걸린 철 지난 면 커튼을 뜯어 잠옷을 만들어 색을 입히고 삶았더니 더 없이 좋았던 적도 있었다.
겁이 없는 나는 용감하기까지 해서 두어 번의 생각 끝에 옳다 싶으면 마구 일을 저지른다. 때로는 쓰임새도 알지 못하며 많은 감을 한 번에 사기도하여 쓸데없는 욕심이 후회와 낭비를 낳기도 한다.
18번의 실을 꿰어야 돌아가는 재봉틀에 첫발을 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광목과 인견을 한필(20마)씩 샀다 듣기만 했을 뿐 실습 한 번 하지 않은 염색을 해댔다. 색깔이 나올듯한 주변에 있는 것 들을 모두 해 보았다. 전통의 오방색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고운 색들이 나왔다. 은근한 자신감이 생긴 마음에 물들인 인견으로 상의를 만들어 친구 여럿과 나누었다. 살짝 걱정이 되지만 옷을 건네며 받는 이 보다 주는
내가 꽉찬 듯 한 사랑을 느낀다. 상당히 부족하고 서툰 솜씨의 옷을 입어 주는 것 만으로 고맙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기쁨은 행복하다.
예전에 시댁에 싱가(Singer)미싱이 있었다. 어머님은 새 옷 고치는 일이며 헌 옷 뿐 아니라 쓰지 않아 모아두었던 감도 새롭게 재활용을 잘하셨다. 기계 다루는 일이 어렵고 벅찬 나는, 내일이 아니라 여기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해인가 가져온 싱가미싱은 딸을 주었고 딸은 멋진 장식품(?)으로 사용한다. 양팔 모두 인공관절을 넣은 나는 팔쓰는 일이 힘들다. 그나마도 쓰지 않으면 점점 굳어질까 두려워 손이라도 굼실굼실 움직였으면 했었다.
일 년을 배웠으나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을 뿐이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유이지만 일상에는 발목을 잡는 고단함도 같이 해야 한다며 시작한 것이 바느질이었다. 동적(動的)인 것 보다 정적(靜的)인 내게 꼭 맞는 취미를 찾은 거다.
무디어진 손끝에서 무엇이 나올까 생각될 때마다 망설임 없이 가위질을 해 실행에 옮긴다. 흐린 날이면 색깔조차 구분 안되는 침침한 눈과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바느질은 옷만 짓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늘이고 줄이는데도 그만이다. 조금씩 비어가는 머릿속에 담아 채우는 것 보다 눈과 손에 익히고 싶다. 내 머릿속이 예전의 내 머릿속 같은 느낌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