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준공은 해운대 중동 1072번지 섬밭마을에 거주하시며, 슬하에 일남사녀를 두고 마을 일을 성심껏 돌보신 덕망 있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유학자였던 이공은 과객(과거를 보러 다니는 사람)과 행려인(여행자)에게도 많은 사랑과 온정을 베풀었습니다.
과객들은 이공의 공덕과 인격을 칭송하고자 송덕비를 직접 새겨, 이공이 생존해 계시던 1931년 11월에 섬밭마을 입구에 세웠습니다. 이공은 1938년 음력 11월 27일, 6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으며, 자손들은 비석을 동해선 철도변으로 옮겨 세웠습니다. 이후 이 송덕비는 현재 장산 폭포사 입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비문에는 이열사절사언의 이공을 칭송하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의 영원한 벗으로 남으셨습니다. 그의 덕망과 아름다운 마음은 후세에 살아 있는 나눔의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유학영천이공모준송덕비
자기를 미루어서 타인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공은
능히 선각하신 분이시오
힘써 부지런히 농지를 갈고
개천과 도랑의 물을 감사히
생각하여 재배활용에 노력하셨고
행려들에 밥을 주어서 배고픔을 풀어주셨고 옷을 주어서 고생을 녹혀 주시고
자식을 두고 손자를 두고 여러복록을 많이 거느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