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오늘날 프래그머티즘 혹은 실용주의라고 불리게 된 ‘미국의 정신’이 그 선조들의 강렬한 삶으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역사가의 머리와 작가의 손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 낸다. 법학자 올리버 웬들 홈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논리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존 듀이. 이들 미국 지성사의 네 거인에게서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을 만든 지식인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한다. 이 책은 네 명의 사상가에 대한 종합적 전기인 동시에, 남북전쟁 이후 백 년에 걸친 ‘현대 미국’ 탄생의 역사이다. ■ 누가, 미국의 정신을 만들었는가
노예제에 맞선 투쟁으로서 시작된 남북전쟁(1861~1865)은 수십 년간 저지되어 온 산업주의와 영토 확장의 동력을 해방시키면서 미국을 현대적 국가로 이끄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전쟁 이후 사람들은 과거의 사상과 신념들을 더 이상 신용할 수 없었다. 남북전쟁은 남부에서 노예제도를 쓸어버렸지만 북부가 쌓아 온 지적 문화의 뿌리 또한 함께 뽑혀 나갔다. 미국인들이 현대적 삶의 조건에 대처하기 위한 사상을 찾아내고, 사고방식을 확립하고, 문화를 계발하는 데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 발버둥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메타피지컬 클럽』은 네 사람의 삶을 관통한다. 먼저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권위 있는 법 사상가이며 연방대법관을 지냈던 ‘위대한 반대자(the great dissenter)’ 올리버 웬들 홈스가 있다. 젊은 시절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대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이며 현대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화려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았던 천재, 논리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가 있다. 이들은 1872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비공식 토론 모임을 가졌고, 그것을 ‘메타피지컬 클럽’이라고 불렀다. 그 모임은 고작 9개월 정도 지속되었을 뿐이며 어떤 공식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메타피지컬 클럽’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하나의 사상이 태어났다. 그것은 모든 사상들에 관한 단 하나의 사상, 사람들의 삶에서 신념이 맡는 역할에 관한 사상으로, 퍼스에 의해 “프래그머티즘”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는 그들 세 사람의 저작들과 이 책의 네 번째 주인공인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존 듀이(듀이는 퍼스의 제자이자 제임스의 친구이며, 홈스의 팬이었다.)의 연구의 본질에 해당한다. 이들은 교육, 민주주의, 자유, 정의, 포용에 관한 미국인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으며, 학문과 언론의 자유와 문화적 다원주의를 현대 미국에 선물했다. 미국인들은 이 사상가들이 정신을 건설한 나라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단 하나의 사상, 프래그머티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實用主義) :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 학파로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인들의 생활양식과 문제해결방식에서 태동한 지극히 미국적인 철학이다. 넓은 의미로는 어떤 생각이나 정책이 유용성·효율성·실제성을 띠고 있음을 가리키며, 학문적 의미로는 추상적·궁극적 원리 혹은 관념이 갖는 권위에 반대하는 태도를 지칭한다.홈스, 제임스, 퍼스, 듀이의 강렬한 개성과 명백한 철학적 차이를 걸러냈을 때 남는 것은 하나의 사상이다. 그러나 저자 루이스 메넌드에 따르면 이 ‘사상’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상이라기보다는 다른 여러 사상들에 ‘관한’ 사상이며,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상들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사상이 ‘저 멀리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이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 마이크로칩과 같은 ‘도구’라고 믿었고, 사상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사상은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처럼 인간이라는 매개체와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상이 특수하고 일시적인 환경에 대한 찰나적 반응이기 때문에 사상의 지속 및 생존 여부는 그것의 불변성이 아니라 적응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이러한 생각은 관념적 진리 추구에 몰두해 온 유럽 철학의 전통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인간 이성의 상대성·우연성·오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고 한 파격적인 시도로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한 일은 한마디로, 사상과 신념들을 신성한 제단에서 끌어내려 인간적 수준으로 타락시킨 것이었다. (남북)전쟁을 겪으며 이들은, 원칙과 추상의 또 다른 얼굴은 폭력이라는 교훈을 얻었고, 프래그머티즘은 사람들의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프래그머티즘은 유일무이한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어떤 진리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진리들이 참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에 기반해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것은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해 우리가 보였던 관용이다. 홈스, 제임스, 퍼스, 듀이의 철학이 지지했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이해했듯, 민주주의는 옳은 사람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옳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말할 권리를 준다. 그것은 소수의 반대의견에도 여지를 주어 결국 다수의 이익이 우세하도록 만드는 체제이다. 민주주의라는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면서, 동시에 누구도 기권할 수 없다. 현대 미국 사상, 즉 홈스, 제임스, 퍼스, 듀이와 관련된 사상은 연방주의의 지적 성공을 대표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싹튼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대 미국의 법, 교육, 사회, 나아가 예술과 종교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개인의 역사이자 사상의 역사, 미국의 역사로서―『메타피지컬 클럽』
1860년에 일어난 남북전쟁과 함께 시작된 여정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현대 법의 기초가 된 ‘미합중국 대 에이브럼스’(1919) 사건의 대법원 판결과 더불어 끝이 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진정한 대단원은 1950, 1960년대의 냉전기를 지나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메타피지컬 클럽의 멤버들이 케임브리지에 모여 전후 세계에서 사상이 해야 할 역할에 관해 토론했던 1872년으로부터 우리는 멀리 와 있다. 그러나 사상과 신념에 대한 고민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들과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리 낯설지 않으며, 때로는 섬뜩할 만큼 친숙해 보이기도 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메타피지컬 클럽』에서 루이스 메넌드는 프래그머티즘이 등장하게 된 개인적, 사회적 정황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은연중 젖어 사는 사상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철학적 논의가 아닌 역사적 해석 작업이다. 그는 미국의 지적 가설의 변화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변화를 설명하고, 어떻게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미국의 정부와 기업과 언론과 대학이 그 특유의 미국적 구조와 기질을 형성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가의 눈과 작가의 손을 빌어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홈스, 제임스, 퍼스, 듀이라는 네 중심인물 외에도 이 책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메타피지컬 클럽의 또 다른 중요한 구성원이었던 철학자 챈시 라이트, 찰스 다윈과 그의 맞수 루이 아가시, 19세기 후반 미국 대학과 학계를 수놓았던 숱한 학자들과 유명인사들, 맥스웰과 라플라스의 도깨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제 목소리를 낸다. 오랜 기간의 1차 사료 수집에 의거한 그들의 풍부하며 생생한 육성은 전기(傳記)로서의 이 책이 지닌 매력을 배가시킨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네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순차적으로 따르는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전쟁과 정치, 과학과 철학, 인류학과 심리학, 종교와 교육, 실재의 법 재판, 인종문제와 노동운동 등의 다양한 개별 주제를 정교하게 짜맞춰 나가며 깊이 있게 소화해 내는 루이스 메넌드의 방대한 지식과 연구의 깊이, 매끄러운 필력은 훌륭한 역사-논픽션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19세기 미국 지성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네 거인의 발자취를 좇으며 근대사의 가장 흥미로운 한 순간을 목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