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인도를 점령하고 신민통치하던 시기. 인도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아지즈는 인도의 ‘찬드라포어’라는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의사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양복을 즐겨 입을 정도로 영국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고독해지면 사원으로 가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때문에 재혼도 마다하는 상태였는데, 일부다처제인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였다. 어느 날 아지즈는 사원에서 영국인 무어 부인(페기 애쉬크로프트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국적도 다르지만 둘은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아지즈는 찬드라포어에 있는 대학의 학장인 필딩의 소개로 무어 부인과 그녀의 일행인 아델라(주디 데이비스 분)의 관광 가이드를 맡게 된다. 아델라는 인도에서 치안판사로 일하는 약혼자 로니를 만나러 인도에 왔으며, 로니의 모친이 바로 무어 부인이었던 것. 호기심 많은 아델라는 아지즈에게 찬드라포어 인근의 유명한 마라바르 동굴을 구경하고 싶다고 한다. 아지즈는 자신도 잘 모르는 곳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무어 부인을 실망시키기 싫어 일행을 이끌고 동굴탐사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무어 부인은 여독이 풀리지 않은 관계로 동굴 밖으로 나오고 아지즈와 아델라, 그리고 안내인 한 명만 탐사를 계속 하기로 한다. 이들 셋은 다른 동굴 입구로 향하고, 아지즈가 동굴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아델라는 혼자서 동굴에 들어간다. 그런데 얼마 후 아델라는 피투성이가 되어 동굴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아지즈는 아델라를 강간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당하는 신세가 된다.
주 제 :
‘식민지’라는 환경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인권탄압과 제국의 식민지사관에 대한 모순과 반 인도주의를 통렬하게 묘사한 작품. 인도의 젊은 의사가 인도를 여행 중이던 백인 여성을 동굴에서 강간하려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인도 의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인도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영국인들은 그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인도 의사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도 없을 뿐더러, 영국 여성의 주장을 입증할 증인도 없는데 재판은 인도 의사를 강간범으로 몰아간다. 영화는 동양의 문화에 대해 단순히 신기하고 환상적인 감성을 가진 서구인들이 실제로 동양의 문화를 접하고 동양인을 만날 때 얼마나 배타적이고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인간 상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감상 포인트:
1877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는 인도 제국이 성립되면서 인도는 완전히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만 1910년 이후 인도인들의 독립조짐이 일어나자, 영국은 소위 식민지강화법인 롤래트 법을 제정하면서 탄압을 강화한다. 이에 간디를 중심으로 인도의 독립운동이 더욱 확산되고 영국인에 대한 감정이 한창 악화되던 시기가 바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한 영국 여자가 인도 남자를 강간범으로 고소하면서 이 사건이 민족 간의 갈등으로 고조된다. 영국 작가 E.M.포스터가 1924년에 발표한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1984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했으며,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 명장으로 칭송받던 데이비드 린의 1970년 작 <라이안의 처녀 (Ryan's Daughter)>의 실패로 영화계를 떠난 지 14년 만에 만든 작품으로, 그의 나이 77세에 인도라는 이국의 풍경을 바탕으로 초자연적인 세계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영상으로 표출해 당당히 명예를 회복한 작품이다. 1980년대 당시에는 큰 관심 밖이던 '인도'를 소재로 하여 멋진 풍경과 의미있는 테마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며 흥행에도 큰 성공을 했다. 1984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페기 애쉬크로프트), 음악상(모리스 자르) 등 2개 부문 수상.
감독: 데이비드 린 (David Lean / 1908〜1991)
1908년 영국 크로이던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린은 1927년 스튜디오 잡역부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이후 린은 전쟁터에서 공수된 필름을 뉴스릴로 만드는 일로 편집을 배우기 시작했고, 많은 양의 필름을 짧은 시간 안에 편집해야 하는 환경 때문에 감각적인 편집법을 익히게 되었다. 30년대 십여 편의 영화 편집을 하며 경력을 쌓던 린은 1941년 <바라바 장군>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연출 기회를 가졌고, 극작가 노엘 카워드와 함께 《우리가 봉사하는 것 In Which We Serve》(1942)을 공동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린 감독을 국제적인 감독으로 부상시킨 작품은 품격있는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낸 <밀회 Brief Encounter>(1946)로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찰스 디킨즈의 소설을 각색한 <위대한 유산>(1946), <올리버 트위스트>(1948) 등을 잇달아 발표한 뒤, 다국적 자본을 모아 일본의 포로수용소 얘기를 그린 <콰이강의 다리>를 연출한다. 윌리엄 홀덴, 알렉 기네스, 잭 호킨스가 주연을 맡은 이 걸작 전쟁영화는 데이비드 린의 진지한 영화작업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그후부터는 할리우드의 자본을 중심으로 다국적 자본을 모아 웅장한 화면의 서사극들을 잇달아 제작했는데, 1차 대전의 영웅 T.E 로렌스의 삶을 그린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혁명 전후의 복잡한 러시아의 삶과 사랑을 그린 <닥터 지바고>(1965) 등이 그것이다. 뒤이어 발표한 <라이언의 딸>이 엄청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가자 14년간의 오랜 칩거 생활에 들어갔던 린 감독은 1984년 또 하나의 대작 <인도로 가는 길>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1991년 노익장을 과시하며 조셉 콘라드 원작의 <노스트로모>를 기획하던 중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풍부한 교양과 장인 정신을 갖춘 린은 주로 70mm 대형 화면으로 자연의 웅장함이나 전쟁씬 등의 스펙타클한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첫댓글 너무도감동적으로
봤어요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