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장 여무는 순간에 남긴 가장 빛나는 말로 위대한 인물들의 삶과 철학을 들여다보다
죽음과 직면했을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독배를 들면서 담담하게 이웃에게 빌린 닭 한 마리를 갚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참수를 기다리면서 조금의 두려움 없이 내 목을 치는 건 봄바람을 베는 것에 불과하다고 노래할 수 있을까? 유언은 살아 있을 때 할 말 다 못한 얼간이들이나 하는 거라며 호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기르던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 선 동서양 철학자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로 삶을 사유하다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갚아주면 고맙겠네.” _소크라테스
“유언은 살아 있을 때 할 말을 다 못 한 얼간이들이나 하는 거야.” _마르크스
“사람들에게 멋진 인생을 살았다 전해주오.” _비트겐슈타인
“나 정녕코 당신을 사랑하오.” _사르트르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_공자
“태양과 대지가 나의 관이다.” _장자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 _이황
“간다, 봐라.” _법정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니체, 사르트르, 공자, 장자, 법정, 틱낫한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동서양 철학자와 종교인 30인. 그들이 남긴 유훈, 묘비명, 임종게 등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눈앞에 펼쳐낸다. 그리고 그 말들이 오늘을 정신없이 살아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알아본다. 철학이 먼지 가득한 서재에서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일상에서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답게,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왜 마지막 말을 다시 들춰보는가?
유훈, 임종게, 묘비명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하직하는 마지막 인사다. 여기엔 한 사람의 치열했던 인생 기록이 압축되어 있기도 하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고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들을 다시금 들추어내는 건 떠난 자의 생애와 생각을 엿보는 일이자, 그들과 내 삶을 견주어봄으로써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로써 이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하게 된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낯선 상황과 만나 우리의 삶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삶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 어떤 사람이 30년을 살았다면, 그것은 죽음을 향해 30년을 나아갔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삶의 지혜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은 인물들의 죽음을 돌아보는 것은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나답게 살다 간 철학자 ․ 종교인 30인
이 책에는 서양편 15인, 동양편 15인 총 30명의 인물이 시간순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장마다, 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의 인상적인 생애와 대표적인 사상을 소개하여, 그들이 남긴 혹은 그들을 기리는 마지막 말이 나온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카뮈처럼 묘비명이 없거나 순자처럼 유훈을 남기지 않고 떠난 인물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글을 뽑아 비명으로 삼는 재치를 발휘했다.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유훈이나 임종게, 묘비명을 오늘날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탈레스와 에피쿠로스, 틱낫한의 말을 통해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내기도 하고, 디오게네스와 니체, 이지의 삶을 통해 타인의 시선 및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진정 나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사르트르와 이황의 애틋한 로맨스를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게 한다.
하녀는 탈레스에게 한 치 앞도 못 본다고 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별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일은 가까운 현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충실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의 삶에서 한 치 앞은 지금보다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그렇게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사느냐고 말이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더 있겠는가. 개는 폼도 잡지 않고 가면도 쓰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본능대로 살아갈 뿐이다. 인문학은 폼 잡는 학문이 아니라 폼 나게 살기 위한 공부다.
두향은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퇴계에게 두향은 눈 속에 핀 매화와 같았다. 그는 두향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퇴계가 풍기군수로 가면서 두 사람의 로맨스는 9개월 만에 끝나고 만다. 두향은 떠나는 임에게 분매를 전해주었으며, 퇴계는 평생 이 화분을 가까이 두고 그녀를 대하는 것처럼 아꼈다고 한다.
때로는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예리한 시선과 때로는 삶에 지친 우리를 다독이는 특유의 다정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고 친근하게 풀어낸다. 또한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는 의문 형식으로 제시하거나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 스스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철학적 지식을 채우기 위한 교양서이자 치유와 성찰을 위한 에세이이기도 하다.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잘 늙는다는 것,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주변도 잘 정리해야 하고 죽음과 맞서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맞서야 할까? 용기일까, 신념일까? 달관이나 체념 아니면 신의 품이나 내세에 대한 기약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어쩌다 주어진 삶들이다. 삶의 조건들에 적응하기에도 바쁘고, 일상을 유지하기에도 힘겹다. 그러나 인간은 생존의 조건 밖에 무언가가 더 있다.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 같은 것 말이다. 주어진 공간과 시간에 잠시 왔다 가는 인생들이지만, 생존의 조건들보다 중요한 뭔가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소한 후회나 아쉬운 한 같은 것은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이 그 뭔가를 찾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죽음을 철학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마디로 잘 살기 위해서다.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죽어가면서 ‘이게 뭐냐!’는 한탄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그러면 된다. 아무쪼록 이 책이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의 여정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