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오로의 회심과 최남선의 개종
사도 9,1-20; 요한 6,52-59 / 부활 제3주간 금요일; 2023.4.28.; 이기우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기지은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시며 보여주신 활약 가운데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울의 회심 사건일 것입니다. 사울이 대사제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가지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처음에는 번쩍이는 번개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눈부신 빛에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 땅에 고꾸라진 사울에게 예수님께서는 천둥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 그와 사람들은 그저 천둥 소리로만 들었기에 멍하게 서 있었지만, 사울은 이 소리를 알아듣고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사도 9,5). 그에 대한 대답이 사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5).
이 당시까지만 해도 사울은 율법에 맹목적이리만치 열성적인 바리사이 유다인이었으므로 예수를 하느님을 사칭하고 성전의 권위까지 모독한 한낱 거짓 예언자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거짓 예언자에 불과했다면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번개 빛과 벼락 소리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의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니아스에게 위로와 안수를 받고 곧바로 회당에서 선교사로서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함축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만, 사울 자신은 이 사건을 사실적으로 회고하는 갈라티아 편지에서 쓰기를 선교사로 나서기까지 무려 14년이나 걸렸음을 밝혔습니다(갈라 2,1). 그는 이 기간 동안 아라비아 사막 같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그제까지 알고 있던 성경을 꼼꼼이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다시 성찰했을 것이고, 타르수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도 잠심하는 가운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사울이 한가하게 구약성경만 훑어보았을 리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세례를 베푼 하나니아스를 비롯하여 예수님을 만나서 직접 가르침을 배운 이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그분의 강생부터 부활까지 샅샅이 물어보고 꼼꼼하게 따져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초대교회 신자들이 공유하던 전승을 배우며 물려받았을 것이고, 이 전승을 나중에 자신이 만난 예비자들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1코린 11장).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잘못 알고 단단히 오해하던 부분을 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1코린 11,24)시던 성체성사를 통해서 살과 피로 오신 하느님이심을 믿었고 증언하였습니다. 강생부터 부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부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사람이 그분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겠다는 말씀을 그는 진리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진리요 영원한 생명의 현실임을 자신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믿을 진리로 선포하기에 남은 일생을 다 바쳤고, 그는 가톨릭교회 2천 년 역사상 최고의 선교사로 숱한 후대의 선교사들을 부르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민족들에게 당신을 알리기 위해 선택하시고 박해자 사울을 돌려세우신 예수님의 개입은 이렇게 주효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1956년 11월 17일자 한국일보에는 “나는 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나”라는 글이 발표되었는데, 1946년부터 개설된 명동 성당 가톨릭교리강좌에서 윤형중 신부로부터 예비자 교리를 배운 지성인들 가운데 최남선(崔南善, 六堂, 베드로, 1890~1957)이 불교에서 개종한 이유를 밝혀 학계와 종교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까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가톨릭시보는 증면 발행한 1955년 12월 25일자 5면에 최남선의 개종 소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갑오경장 이후 신(新)문예운동의 주창자로서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상가 육당 최남선 선생은 40여 년간 신봉하던 불교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11월 17일 베드루 영명으로 마두 윤형중 신부에게 성세를 받음으로써 가톨릭에로 개종하였다.”
그는 벽초 홍명희,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 시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었던 학자요 문필가였고, 1919년 삼일 독립만세운동 당시에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했습니다. 한학(漢學)과 역사학(歷史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 고전을 정리하고 주석하여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습니다. 독립선언서에도 그의 역사의식이 듬뿍 담겨 있거니와, 1927년에 단군을 시조로 한 고조선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임을 밝히는 <불함문화론>(弗咸文化論)을 발표하여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 가운데에서 한국의 문화사적 이해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업적으로서 동북아시아 문화권 속에서 한국 문화를 고찰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을 통하여 보는 동방문화의 연원과 단군을 계기로 한 인류 문화의 일부 측면’을 고찰한 이 논문에서 그는 우리 민족 문화의 기원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요지는 단군이 지녔던 신앙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가 ‘불함문화권’이라고 주장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불함’이란 말은 밝다는 뜻과 크다는 뜻의 순 우리말로서, 밝고 큰 문화가 우리 한민족의 문화였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그의 이런 문화적 시도는 그가 작성한 독립선언서에 담긴 사상과도 궤(軌)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일제는 고조선의 역사를 지워버리고자 단군의 역사를 한낱 신화로 격하시키려고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당 최남선의 이러한 노력은 이벽 세례자 요한이 일찍이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접하고 나서 이 ‘천주(天主)’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우리 민족의 단군 역사에 이미 숭배되고 있었던 바를 알고 천주교 신앙 운동을 벌인 노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박해자 사울의 개종 사건이 그러했듯이 해방 직후 한국 가톨릭교회와 민족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화제가 되었던 인물인 최남선 베드로가 개종의 취지를 밝히면서, 가톨릭의 역사성과 보편성 그리고 진보성을 내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강생과 부활이 민족의 역사 안에서 뿌리내리고 꽃피워 열매 맺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강생으로 말미암아 부활이 시작되듯이, 민족의 역사 안에 신앙이 토착화 되어야 민족 복음화도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은 인생과 종교에 관하여 최남선(베드루)가 1955년 12월 17일자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나는 왜 가톨릭에로 개종했는가”
인생과 종교의 관계는 마치 인체와 공기와의 관계와 같으니 특히 양자가 잠깐이라도 떠나 있을 수 없는 점에서 그러하니라.
종교란 무엇이뇨?
우선 일반 학자의 통설을 따라 신과 인간관계라 하여 두자. 그러면 인간은 신이라는 개념을 어디서 얻어 왔겠느뇨? 신학상 철학상 다 어려운 문제려니와 우리는 학자의 구구한 이론을 떠나서 솔직히 말해서 우주에 충만한 신의 광명이 자연히 인간 마음속에 촉발하여 신이라는 계시가 된 자로다. 이렇게 생각하므로 우리에게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갈등을 느낄 까닭이 없느니라. 신의 광명이 인간 마음에 들어가서 갖가지의 신앙 형태를 만들어 내나니 이에 인간 세계에는 많은 종교가 병행하느니라. 어느 종교든지 궁극목적은 인생 구제에 있으니 구제란 무엇이뇨? 우주의 대생명과 자기의 소생명이 하나가 되도록 인격을 통일하여 나가는 생활 태도의 확립이니라.
사람은 자기의 생명이 짧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무한한 생명욕을 일으키고, 자기의 미약함을 인식할 때 무한한 권능에 귀의할 욕망이 일어나니 이 생명욕과 권능욕을 합하여 말하면 인간의 향상심(向上心)이니라. 사람이 무한한 생명과 능력을 아무 데서도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 그것을 우주의 신에게서 얻고, 열렬한 희망과 동경으로써 신과 합일되기를 원하고, 이리로 향하여 최대한의 정성을 쏟으면,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는 경지가 종교의 구제력(救濟力)으로서 인간 앞에 나타나느라.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의 무한한 연장과 능력의 무한한 확대를 알아듣게 하는 것이 종교의 구제요 그 작용이 구제력이니, 이 구제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종교의 가치가 달라지느니라. 종교는 이론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제를 목적으로 하느니라. 세상에는 이론은 좋아도 구제력이 거기 따르지 못하고 또 일찍이 크게 구제력을 발휘한 적도 있으되 그 참 생명이 위축되어 이제 와서는 구제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것도 있느니라. 그런데 구제력 없는 종교는 효력이 없는 약품과도 같으니 다만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왕왕 해독을 끼치는 폐도 없지 아니하니라. 종교의 구제는 진실로 개인적인 것이로되 또 때를 따라서는 국가 민족의 집단적인 요구에 적응해야 할 경우도 있나니 오늘날 우리 대한이 요구하는 종교는 각 개인의 정신적인 미약을 보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오늘날 우리 대한의 특수한 모든 문제 해결에 가정 유효 적절한 기능을 가져야 하나니 그 기백과 위력과 기구(機構)와 전통이 이러한 역량을 구비하여서 능히 오늘의 부패를 말소하고 무기력을 없이하고 혼란 무절제한 이 세상의 기둥이 될만한 것이어야 오늘 우리 대한의 종교일지니라.
이상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관인 바 이러한 정신으로 어려서부터 인생 문제, 신앙 문제에 자못 정신을 기울여 왔으나 겨우 부처의 이상이 이 혼탁한 세상을 구제할까 하여 마음을 불교에 붙여왔으되 여기서는 얻은 바가 하나도 없고, 늙어가는 몸을 껴안고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 한탄만 하는 도다. 그러면 오늘 이 처지에 서서 이 백성을 구제할 만한 정신적인 지주가 무엇일까? 이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나의 중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을지니라.
스스로 돌아볼 때에 한국인이 기대를 가질 만한 종족일까? 한국 민족의 정신 생활사를 검토해 보건대 과거 수천 년 간 두 번 빛난 시기가 있었으니 앞서서는 신라 통일기에 찬연히 발현된 화랑도의 순국 정신이요, 가깝게는 서양문화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정신이니라. 전자는 진작 민족 통일의 위대한 성과를 보였거니와 후자는 아직도 진행도상에 있어서 능히 얼마만한 공헌을 이룰지 오히려 미지수에 속하는 것이니라.
한국 역사의 현 단계는 부패한 인습을 탈피하고 예리한 정신을 진작하여 근대생활의 자각으로써 세계 문화사상에서의 후진성을 극복 지양하고 인류 발전 대로에 당당히 행진하는 능력을 소지함에 있거늘 어떻게 하면 이것이 가능하게 될 것인가? 이 가능 여부는 진실로 민족 생사의 문제요 확고한 정신적 기반 위에서만 기대할 것이니, 이제 한국의 문화가 기계산업에서 뒤지고 항해 발전에서 뒤졌다 하여 무턱대고 기계를 만들고 함정을 만들려고 하여서 이 후진성이 얼른 극복될 것인가?
이렇게 간단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리석음을 한번 웃지 않을 수 없을지니라. 얼른 말할진대 서양 근세의 문화는 결코 단순한 물질과 이욕(利慾)의 위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 실로 그 기반 위에는 위대한 정신적 바탕이 있음을 알아야 할지니 그 정신적 바탕이란 무엇이뇨? 그 하나는 희랍시대의 정신문화와 과학의 기초 공작이요, 또 문예부흥 이래는 인문정신과 중세기 스콜라 철학의 시작에서부터 생성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그 중에도 2천 년 가까운 가톨릭의 확고한 진리의 힘이 불가사의한 위신력(威信力)으로 말미암았음을 인정하지 않고는 서양 문화의 진상을 파악하였다고 말하지 못할지니라. 이제 서양 문명을 배운다 하면서 그 근본의 바탕을 보지 않고 외형만 본다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정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니, 저 중국의 유교 및 도교사상과 인도의 파라문 및 열반정신에서 근대문화가 산출하지 못한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니라.
오늘날 우리 한국은 동양의 작은 나라로서 스스로 정신적인 빈곤을 느껴오다가 중국으로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자 동양인으로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으나 서학(西學)의 필요성을 모른 체하지 못하고 그 중에 총명한 이익, 이승훈, 남상교, 정다산 삼형제 등 일대의 석학들이 여기에 정신을 쏟아 그리고 소중하게 아는 신주(神主)를 불살라 버리고 제사를 폐기하여 즐겨 덕교상(德敎上) 죄인이 되니 이것이 어찌 그네들의 어리석음에서 되었다 할 것이랴 ! 서학의 박해가 시작된 지 백여 년에 일단 신교의 자유가 생겼으니 그것이 이 국가를 언제나 구제할는지 실로 그 앞날이 요원한 감이 있도다. 이제 한국이 정신적으로 해방을 보았다 하고 역사상으로 신국가를 건설하고 신문화를 창조한다 하나 그 입각점(立脚點)에서 볼 때에 아무 믿을 만한 정신적인 기반이 없음은 오히려 1세기 2세기 이전의 그때와 다름이 없고 아직까지도 국가와 문화가 든든한 정신적 기반 위에서만 건립과 전진이 가능한 것이라는 입문 초보의 지식도 없는 상태에 있음은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닌가?
설사 이만한 식견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종교와 사상이 우리 건국 정신에 지주가 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드물다고 아니 할 수 없도다. 유교를 그것이라고 할까? 불교를 그것이라고 할까? 프로테스탄트를 그것이라고 할까? 칸트를 데려올까? 마르크스나 레닌을 불러낼까? 그 어느 누구도 이만한 중책을 감당하리라고 믿어지지 아니 하는도다. 유교에서는 이퇴계가 났다. 그러나 이 퇴계가 몇 묶음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오늘의 혼란을 다스리라고 기대하겠는가? 불문(佛門)에서는 원효가 났다. 그러나 원효가 떼지어 나온다 할지라도 오늘의 혼탁을 맑게 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여기서 우리 눈에는 2천 년래 인류의 정신상 생활상 대지주를 문예부흥, 종교개혁, 과학발흥(發興)의 온갖 풍파를 치르면서 조금도 동요를 보이지 않고 하늘의 기둥처럼 위용을 보이고 있는 가톨릭이 우리의 시선을 끌지 않는가!
가톨릭은 인류 문화의 종교 분야를 담당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계시되고 연마되고 완성된 종교로서, 희랍의 철학과 로마의 조직력과 근세사상의 정화까지 합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섬세하고 엄격하여 정신생활 원리를 거의 충족한 성능을 구비한 것 외에 다만 종교적인 진리면에서도 화엄의 십현(十玄)과 법화(法華)의 삼주(三周)에서도 오히려 방불치 못하는 우주 인생의 비결을 명쾌히 설파한 점이 부족한 바 없도다.
저 조물주로써 천지 만물의 제일원인(第一原因)을 명시하고, 신의 권능과 섭리로써 만물 창조의 질서와 조화를 설명한 것이 그 일단(一端)이다. 이만할진대 개인의 구령으로나 민족의 부활 지도력으로나 아무 부족함이 없지 아니할까?
나는 이에 유교, 불교, 모든 종교에서 찾아 얻지 못하던 바를 이제 가톨릭에서 얻은 느낌이 났도다. 그리고 아울러 백여 년 전 선조들이 가톨릭을 도입한 그 정신을 깨달아 못내 기뻐하는 자로다. 가톨릭은 교조(敎祖) 예수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지고 오지 않고 칼을 가지고 와서 불의를 없이하고 의(義)를 세우려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투쟁의 기록이요, 의로써 불의를 격멸하는 과정의 기록이며 또 그것이 자연에 맡긴 인간의 사실이 아니라 일대경륜(經綸)의 점차적 발전임을 속이지 못 할지니, 그것이 이스라엘 땅에 발생하여 로마 즉 당시 세계의 주축으로 들어가서 사방으로 선포되어 중세를 거쳐 근대로 내려오면서 교세가 점점 왕성하고 16세기 초에 예수회원의 일파가 동양으로 와서 예수께 지구 어디까지도 내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부탁이 실현되고, 동양의 금단국(禁斷國) 조선은 교세의 침입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문호를 열고 이 복음을 받아들여 세계의 전도사상(傳道史上) 하나의 예외를 이룬 것의 어느 것이고 대섭리의 발현으로 볼 것이지 결코 우연의 역사적인 발전으로 보고 말 것이 아니니라.
세상에 종교도 많지만 종교가 시작된 그때부터 교리가 조금도 변화됨이 없이 그대로 계속되는 종교가 어디 있으며, 또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항상 통일된 생명력을 가지고 항구 불변의 활동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가 몇이나 되느뇨? 이러하기 때문에 가톨릭은 인류 문화의 절대적인 보호 육성자로 유일한 권위의 소유자로서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동양의 작은 나라로서 숨겨진 존재로부터 어떻게 세계와 통로를 같이 할 수 있겠느뇨?
또한 밀려드는 아메리카니즘을 어떻게 방지하고 건전한 신흥 국민의 정도를 개척함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일찍이 19세기 초엽 독일의 도덕동맹 같은 것을 모방함이 필요함을 말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지 아니 하였거니와 이제 가톨릭을 거론할진대 따로 이 도덕동맹을 운운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또 가톨릭은 국내에 30만의 경건한 신앙체를 결정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는 4억7천만이라는 같은 신앙 단체가 있어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였나니 이것이 어찌 일조일석에 가히 될 수 있었으랴?
한국의 개화를 논함에 모름지기 먼저 정신적인 기반을 논하려면 냉정 공평하게 가톨릭에 눈을 돌려야 하리라. 가톨릭은 허무맹랑한 공중누각이 아니라 아무런 풍파에도 동요를 보이지 아니하는 반석 위에 세워진 큰 건물임이 오랫동안 사실로써 증명이 되고 남음이 있도다.
오늘날 이 정세에서 한국의 내일을 믿음직하게 맡길 곳이 이 가톨릭을 제하고 또 무엇이 있다하랴 ! 1955년 11월 17일에 과거 5,60 년간의 종교적 체험을 청산하고 가톨릭에 입교하여 영세하니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구령인 동시에 국가 민족에 대하여는 조국 근대화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하노라. 이에 나의 개심을 천하 동료들에게 약술하여 비정(批正)을 청하기로 하노라. 우둔한 나에게 이러한 식견을 열러 주신 천주께 무한한 성총(聖寵)을 감사하면서 이 붓을 놓노라.
첫댓글 최남선의 개종에 관한 자료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155801또는
https://m.mariasarang.net/bbs/bbs_view.asp?index=maria2000_talk4&page=1&no=187&curRef=187&curStep=0&curLevel=0&col=&sort=
김태훈 님께서 보내주신 위 자료를 본문에 올려 놓았습니다. 김태훈 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