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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 목 한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빈잔(虛盞)
미술 관련 책을 읽다 보면 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그녀)가 그린 작품은 자주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스페인 화가 겸 디자이너 라몬 카사스(1866~1932)가 그린 '무도회가 끝난 뒤'(1899)다. '무도회가 끝난 뒤'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미술관 소장녹색 소파와 검정 드레스의 대비가 눈을 사로잡는다. 손에 든 노란색 책은 균형을 잡아준다. 색도 색이지만, 그림을 자꾸 보게 만드는 힘은 여자의 자세와 표정이다. 무도회가 실망스러웠던 것일까? 마음껏 즐긴 탓에 별안간 피곤함이 몰려온 것일까? 드레스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소파에 드러누운 걸 보면 유쾌한 무도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모자부터 구두까지 검정 일색의 복장은 화려한 무도회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콘셉트다. 무도회보다는 장례식을 다녀온 느낌이다. 초록색 소파도 편안함보다 불안감을 준다. '부유(浮遊)'나 '권태' 혹은 '상실'이 와 닿는다. 시간과 존재에 대한 의심이랄까? 그림이 그려진 해인 1899년을 떠올려 본다. 유럽의 세기말, 화려하고 즐거웠던 시대, '벨 에포크(Belle epoque)'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마냥 반길 수만은 없던 20세기의 도래를 앞두고 화가는 부유, 불안, 권태의 조짐을 읽은 건 아니었을까? 획득의 성과가 크면 상실의 공허함도 깊다. 잃을 게 많으면 조바심도 가중된다. 격정 뒤에는 종잡을 수 없는 권태가 자리 잡는다. 비슷한 시기 그린 그림으로, 너무도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지만, 작품은 낯선 경우를 보자. 20세기 화가로서 가장 큰 이름을 남긴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02년 그린 '지치고 취한 여인'이다. '지치고 취한 여인' 베른 박물관 소장전형적인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이다. '청색시대'는 1901년에 파리로 건너온 피카소가 개인적 경험에서나 사회적 위치로나 여러 어려움을 겪던 시기를 말한다. 청색은 우울과 권태를 상징하는 색이다. 피카소는 청색 속에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표현했다 하지만 카사스가 그린 '무도회가 끝난 뒤'의 그것과는 다르다. 카사스가 그린 우울과 권태가 상류층의 것이라면, 피카소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들의 그것들을 표현했다. 얻은 것이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권태가 내려앉는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이다.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곳에 술과 약물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점점 수렁에 빠진다. 어떤 이에겐 넘치고 다른 이에겐 모자라서 생기는 권태, 해결책은 욕망을 끊어 내거나 곤궁에서 벗어나는 일이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럴 때가 바로 낙관주의자 될 순간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 김연수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한 말을 요약해봤다. dohh@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https://v.daum.net/v/20230617090039258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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