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영화적인 열망이 170명의 땀방울과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됐다. 역도산이라는 '거대한 산'을 정면으로 넘은 송해성 감독의 후일담.
■ 영화에 설경구만 보인다.
오직 배우 설경구 하나로 일희일비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원했다. <역도산>은 설경구의,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를 위한 영화다. 영화사 입장에서야 원대한 목표가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목표는 절대 설경구에게 누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왜 감독이 배우를 위해 영화를 만드나?
<역도산>은 설경구가 없으면 시작할 수도 없었고 결과물이 나올 수도 없는 영화다. 내가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를 만들 감독이 아니라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난 단지 설경구가 이 영화에서 해놓은 노력이 헛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설경구에 대해 흡족하지 않은 반응이 나온다면 내 입장에선 그게 가장 가슴 아플 것이다. 영화를 보고 '감독은 왜 저렇게 연출한 거야'라는 말은 들어도 '설경구 왜 오버야?'라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 주인공 혼자 모든 걸 끌어가는 영화라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은 없었나?
대한민국에서 주인공만 나오면 카메라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가 어디 있나? <역도산>밖에 없다. 내가 보기엔 클로즈업도 <공공의 적>보다 많다. 내가 경구에게 "이러다 조연 배우들이 나하고 일 안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했다. 좋은 배우들인데 힘을 실어주지 못한 점은 미안하다. 예를 들어 김일이 역도산을 찾아오는 장면은 기술 시사회 때까진 있었다. 배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시사 끝나고 차 타고 집에 가는데 그 부분이 영화를 늘어지게 만드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눈물을 머금고 잘랐다. 결국 그런 게 없어지니까 주인공만 남더라. <역도산>은 설경구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니까 설경구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흥행으로 모든 게 결론 나지 않나. 대중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니까 가급적이면 이 영화를 위해 설경구가 흘렸던 땀을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작업했다.
■ 설경구에게서 끌어내고 싶은 게 무엇이었나?
설경구라는 배우는 끌어내는 게 아니라 자제를 시켜야 하는 배우다. 뭔가를 끌어내기에는 너무 많이 끓어 오르는 배우다. 그게 힘들었다. 모든 것을 하려고 뛰쳐 나가는 친구기 때문에 많은 것을 죽이자 이랬지, 조금만 올리자 그런 적은 없었다. 영화를 편집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생기더라. 원래 역도산이 적십자사 가서 난동 부리는 장면이 있다. 불우 이웃 돕기 성금으로 큰돈을 기부했는데 TV에 역도산은 안 나오고 적십자사 총재 얼굴만 나오니까 열 받아서 난동을 피운다. 영화상으로는 역도산의 강박관념, 항상 자기 앞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면인데 자칫하면 배우의 감정이 오버하는 것으로 보이겠더라.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잘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장면에서 이질감이 크겠다 싶어 결국 잘랐다. 만약 이 장면을 살렸으면 영화적으로 좋았을 수는 있겠지만, 배우가 욕을 먹는 지점은 안 생기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 연기에 비해 연출은 얌전하다.
어차피 배우가 요동을 치니까 감독까지 그러면 안 되겠더라. 그게 영화를 극적으로, 힘 있게 가는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둘 다 그렇게 가서 수습이 안 되면 골치 아플 수 있으니까.
■ 시나리오상으로는 시제가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화는 플래시백 구조를 제외하면 20년이 넘는 시간을 그냥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편집을 다르게 했다면 역도산의 삶이 더 굴곡 있게 표현되지 않았을까?
막상 시나리오대로 붙여 놓고 보니 나도 정신이 없었다. 60년대 갔다, 50년대 갔다, 다시 40년대 갔다, 50년대로 가니까. 제일 중요한 게 인물인데 인물이 안 보이고 헷갈리기만 했다. 역도산의 행동 동인들이 나중에 보이니까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죽기 직전의 장면을 먼저 보여 주고 역도산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관객에게 던져주고 가자는 식인데 이 정도 선에서 플롯을 정리하고 차라리 한 호흡으로 순차적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순차적으로 한 걸 보니까 설경구의 연기 흐름도 좋았다.
■ 순차적으로 가면서도 인과 관계를 선명하게 정리하지 않고 묵묵하게 흘러가게 놔두었다.
이 영화가 친절히 다 보여 주지 않고 이해를 요구하는 점이 좀 있다. 이야기가 지금 어떻게 수습되고 있는 거야, 라고 반문했을 때 불친절한 측면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일반적으로는 관객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A가 생기고 그래야 B, C로 넘어가는데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도산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가 되길 원했다. 상업 영화적인 드라마 전개를 가지고 가면 보기는 편한데 그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는 그냥 드라마지 내가 하고 싶은 역도산이 아니라는 게 가장 걸렸다. 녹음실이나 기획실 스탭들이 영화를 세 번 보니까 인물의 감정으로 이해하겠다고 하더라. 관객에게 세 번 보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럼 내가 잘못 만든 거겠지. 조민환(<8월의 크리스마스> <무사> 프로듀서)이 영화를 보더니 "너는 상업 영화를 찍어야지 예술영화를 찍었냐?"고 하더라. 하지만 나나 제작자나 그런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 없다. 드라마도 그렇고 촬영도 그렇고 거리를 두고 이 사내가 살았던 삶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정리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 관객의 적극적인 감정 이입은 힘든 영화다. 그렇게 연출한 이유는 뭔가?
평가도 중요하고 흥행도 중요하지만 역도산을 영화로 만든 거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관객에게 영화적으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던져 놓은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보고 판단해서 가보자, 그게 어떻게 보면 더 셀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파이란>에는 강재(최민식)와 용식(손병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흥신소 창밖에서 지켜보는 앵글이 자주 등장한다. 투명한 창으로 들여다보지만 그 안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연출자의 의도가 보인다. 그런 태도는 <역도산>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이란>은 관객들이 많이 울었지만 정작 나는 여주인공 파이란의 영안실 장면 빼고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역도산>은 매 신마다 내 감정이 이입됐다. 내가 내 감정에 함몰된 만큼 스스로 담담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벽이 결국은 남한테도 벽이 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의도이건 아니건 찍으면서 갈등이 많았기 때문에 흐릿해 보일 수 있는, 내 자신이 완전히 도달하지 못하는 점들이 있다.
■ 시대와 언어의 한계일까?
예를 들어 <친구>의 정서는 우리가 잘 아는 정서다. 과자 봉지 하나에까지도 개개인의 경험과 향수가 있다. 하지만 역도산이 살던 시대, 그리고 일본이라는 공간은 한국 관객은 모르는 거다. 역도산의 후원자인 칸노 회장이 쓰는 라이터 하나, 은단 하나에 일본 스탭들은 깜짝 놀라면서 열광을 하는데 오로지 우리는 설경구만 보는 거다. 일본어 스트레스는 나도 엄청 컸다. 내가 일본어 책은 읽는데 말이 안 된다. 시나리오가 배우의 입을 통해 나올 때 미치는 줄 알았다. 대사는 맞는데 언어가 다르니까 내가 생각했던 감정 톤이 아닌 것 같아서 많이 불안했다.
■ 이재진 음악감독이 <파이란>에서는 음악을 되도록 늦게 쓰고 적게 썼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
이 친구가 오버를 못하는 친군데 <파이란>에 비교하면 <역도산>에서는 많이 노력했다. <파이란>에서는 음악이 인물의 감정보다 절대 먼저 들어가서 강요하지 말라고 주문했는데, <역도산>에서는 거꾸로 그걸 주문했다. 이재진이 "감독님, 저 그런 거 못해요. 알잖아요" 그러는데 대사가 일본어니까 음악에서 감정을 만들길 바랐다. 또 화면이 못 울리는 거 니가 울려라, 뭔가 하나는 감정적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객관성과 시대성이다. 특히 레슬링 신은 그런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카메라가 링으로 들어가 더 역동적인 장면을 잡아낼 수도 있고, 샷을 분절해서 젊은 관객들에게 잘 맞는 스타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실제 우리가 열광했던 레슬링 경기는 TV의 풀 샷 사이즈다. 그런데 풀 샷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는 시대성을 잃어버리고 리얼리티를 잃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액션 신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액션을 표방한 강한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자뻑'이지만 레슬링 신만큼은 한국영화 최고의 액션이라고 자부한다.
■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레슬링 신을 더 많이 보여 줄 수도 있었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나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은 이렇게 찍은 영화를 무척 좋아하던데 동료 감독들 중에는 "좀 더 상업적으로 가지 왜 100만 명을 놓쳤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레슬링 신이 한 4, 5분 된다. 드라마로 보면 결코 짧은 신이 아닌데 액션이라는 걸 표방하기 위해 그나마 길게 간 거다. 녹음실에서 작업하다 보니 레슬링 신에서 소리가 크게 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맞고 쓰러지는 소리도 뻥뻥 나고, 함성도 커지고. 그걸 자제한 이유는 소리를 키우니까 액션만 보이지 역도산의 눈빛이나 표정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결과적으로 득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드라마 보기에 가장 적합한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 레슬링 신뿐만 아니라 실존 인물이라는 데서 오는 고증이 중요했을 것이다. 과감하게 버린 부분과 무시할 수 없었던 부분을 꼽아 달라.
영화에 레슬링 신이 세 번 나온다. 역도산과 이무라가 샤프 형제와 싸우는 첫 번째 레슬링 경기는 영웅이 되기 위해 모사와 음모를 부리는 역도산의 모습이 담겨 있고, 역도산과 이무라가 싸우는 두 번째 레슬링 경기는 프로 레슬링의 왕자가 되기 위해 모든 신의와 도덕을 버리는 역도산의 모습이 담겨 있고, 역도산과 아즈마나미가 반칙왕 아토믹과 싸우는 경기엔 역도산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고민이 응축돼 있다. 샤프 형제와 이무라 전은 철저하게 고증에 입각했다. 관중들이 난동 부리는 장면까지 실제 경기의 자료 화면과 똑같아 일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세 번째 경기만 영화적으로 클라이맥스에 해당되기 때문에 픽션으로 찍었다. 전체적으로 드라마나 인물에 허구로 접근했다. 칸노 회장이나 역도산의 부인 아야 캐릭터는, 바탕은 실제 인물이지만 결국은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존 인물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건 이 사람이 살아온 시대가 기록돼 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역도산에 대한 자료 조사도 많이 했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영화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진짜 역도산다운 영화는 프로 레슬러로서가 아니라 리키 팔레스라는 거대한 왕국을 세운 비즈니스맨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우리 길대로 갔을 뿐이다. 그렇게 접근하려면 100억 원으로는 꿈도 못 꾼다.
■ <파이란>은 순제작비 17억 원으로 찍었다. <역도산>은 순제작비 86억 원에 마케팅비 포함 100억 원이 넘는다. 많은 제작비를 쓸 수 있다는 게 연출하는 입장에서 독이었나 약이었나?
한 사내의 이야기치고는 돈이 좀 많이 들었다. 관객들이 100억이라는 숫자에 혹해서 얼마나 현란한 볼거리를 제공할까,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고 한 남자의 삶,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설경구의 진심을 애정을 가지고 본다면 영화를 흡족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100억을 썼다고 하면 굉장히 풍족하게 찍었을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일본은 일단 인건비가 비싸다. 일본 조감독이 한 달에 750만 원씩 가져간다. 내가 "걔가 나보다 낫다"고 했다. 이 정도 제작비 사이즈에선 어느 순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다. 일본에서 영화 찍는 게 워낙 비싸게 들다 보니 오프닝의 하바나 클럽 장면에서 설경구가 노래 부르는 걸 빼자고 하더라. "밴드 20명을 5명으로 줄여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서. 이런 말이 나오니까 미치는 거다. 영화 찍으면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조금 속이 상하더라.
■ 일본 관객들을 배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역도산을 그다지 심한 모사꾼으로 그리지 않은 건 영화화를 허락한 유족과의 관계 때문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몰아가는 거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영화에는 '조선인'이라는 말이 더 많았는데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는 조선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시사회 때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샤프 형제와의 경기 때 아나운서가 한 말이 "일본의 영웅이 됐습니다"가 아니라 "한국의 영웅이 됐습니다"였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이런 점들을 고려해 봤을 때, 그런 정도로 그린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 영화가 한 장의 사진으로 끝난다. 요즘 흔해진 기법이라 피하고 싶지는 않았나?
전혀. 내가 이 영화를 구상한 게 역도산의 찡그린 웃음이 담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엔딩은 생각지도 않았다. 난 관객들이 역도산과 아야의 표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길 원했다. 역도산에게 사진 속의 시절은 뭔가 이루고자 하는 소박한 꿈과 아야라는 순수한 사랑이 존재했던 시절이다. 난 아야가 역도산에게 거울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역도산이 항상 봐야 했던 거울, 그게 안 닦아서 부옇게 될 때도 있고, 그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 거울이 사라지면 영영 자기 얼굴을 못 보는. 아야의 비중을 크게 가져가기보다는 절제하는 대신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 근본적인 질문이다. 왜 <역도산>을 만들었나?
그 사진 때문이다. 젊은 역도산이 살짝 웃고 있는데 그 웃음에 울리는 게 있었다. 왜 저런 쓴웃음을 짓고 있을까. 역도산의 젊은 시절, 그 웃음의 비밀을 밝히고 싶었다. 오손 웰스가 <시민 케인>에서 모든 부와 명예를 다 누린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죽을 때 남긴 한마디 '로즈버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로즈버드'란 게 여섯 살 때 엄마한테 받았던 평범한 썰매였다.
■ 역도산의 '로즈버드'는 뭐라고 생각하나?
잘 먹고 잘사는 거였다. 마음껏 웃고 싶은 거였다. 살아남아야 웃을 수 있기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거다.
■ 당신의 '로즈버드'는 무엇인가?
끝까지 영화를 만들어서 살아남고 싶다. 난 영화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영화가 잘되면 앞으로 한두 작품 더 하는 거고 아니면 옛날처럼 바닥에서 기어올라 오느라 발버둥치는 거고. 난 <역도산>이, 일단 누군가를 베지 않으면 자기가 베어져야 하는 살벌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사내의 진검 승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정작 내가 진검 승부를 하고 있더라. 2004년에 이렇게 기교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물로만 가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거는 정말 엄청난 일이다. 살아남느냐 죽느냐, 그 길을 내가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역도산>은 대한민국에서 근 2, 3년 안에 나온 영화 중 가장 정통으로 찍은 영화다.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축복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정통으로 찍은 영화..에 동감. 기교를 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영화였던듯.
리키도산,,, 스고이~~
인터뷰를 봐도 감독의 열장이 그대로 느껴진다.역도산은 내가 기대한 그대로였다.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