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무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나름대로의 냄새가 난다.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서 풍겨나는 사람 냄새, 바로 그것이다. 사람 냄새는 내면에 잠재하면서 살며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만나면 참 포근하다. 처음 봐도 오랜 세월 사귀어온 것처럼 편하다. 인상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러하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은 대인관계의 출발선에서 앞건다는게 아닐까. 바로 강상훈, 정민자 두 사람이 그렇다. 포근하고 정감이 가는 편안한 이 부부를 만날 기회가 내게 있음은 행운이었다.
흔히 제주도를 삼다도라 한다.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하고 거지, 대문, 도둑이 없다하여 삼무도라고도 일컫는다. 또한 제주에는 삼보가 있다. 세 가지 보물이란 제주의 독특한 언어, 한라산의 식물자원, 그리고 제주의 다향한 전설세계를 말한다. 만일 사보라하여 하나를 추가한다면 제주도에 사는 많은 예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중에 한 축을 담당하는 연극인 부부를 만나보려 한다.
극단 세이레는 제주의 몇 안 되는 극단 중 하나로 강상훈 대표가 이끌어왔다. <세이레 레퍼토리 컴퍼니>라는 긴 이름을 달고 1992년 10월1일 창단하여 벌써 13년째 제주도의 연극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강상훈과 정민자, 고동원, 양현정, 이현주 5명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한 세이레는 다양한 연극을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아왔다.
세이레는 순수한 우리말로 이레 즉 7일을 세 번 맞는다는 뜻으로 3X7일=21일은 갓 태어난 아이와 세상 사람들의 만남을 금하는 기간이다. 또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환웅에게 쑥과 마늘만 받아 동굴속에서 견디어내 마침내 인간으로 변한 기간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인고의 시간, 외부와의 격리를 통한 순수한, 영적인 시간이다. 왜 극단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강 대표의 말로는 첫째는 세이레극장이 삼칠일의 고행의 시기를 거쳐 태어난 데서 연유하고 둘째는 이들이 꿈꾸는 연극적 이상을 위해 다가올 새로운 고행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는 의연한 각오를 표현하기 위해서란다. 쑥과 마늘이라는 재료를 먹이로 삼아 곰이라는 동물에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창조물로 변하는 신화적 변형과정을 거쳐 탄생한 우리 조상들처럼, 문화적으로 척박한 제주 땅에 연극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하는 5마리 곰들이 세이레라는 동굴 속에서 삼칠일을 견디어내려는 뜻이다.
어디 빛도 없는 동굴에서 먹을 것 없이 쓰기만한 쑥과 마늘을 맛있다고 먹어대는 곰의 생활이 달기만 할까. 선배 연극인이 있다 한들 여전히 부족하기만 한 여러 풍토 속에서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연극을, 배우를 기꺼이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을까. 바람 많은 제주 땅처럼 하루하루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이들이 힘들하고 연극을 하지 않을 사람들인가. 예술에 대한 무한사랑이 가슴속에 가득한 이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소설을 각색한 <위기의 여자>로 첫 무대를 꾸몄다. 정민자, 고동원, 문희숙 등 물오른 배우들은 신이 나서 연습했다. 스스로 위기의 여자를 벗기위한 듯이 어느 미술학원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이를 바라보던 극단자유무대(대표 임필종)가 극장을 연습장으로 제공했다. 동굴에서 비로소 벗어나 햇살이 넘나드는 세상에서 연습을 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때가 1993년 2월 추운 날이었다. 무대는 제주에서 가장 큰 문예회관 대극장이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뒤 대표 강상훈은 “쉬지 않고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결연한 포부를 밝히면서 특히 “제주의 민속적인 소재를 극화한 작품을 제작하여 공연”하겠다는 말을 하여 지방의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극단으로서의 미래의 꿈을 가감 없이 표방했다.
공연이 5일간 이어지면서 사건(!)이 일어났다. 제주의 극단 세이레가 연극을 하는 동안 여러 지방 극단 협연이 이루어지는 뜻 깊은 사건이 있었다. 극단 자유무대 <저수지>를, 저 멀리 전라도 이리에서 온 극단 토지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경상도 창원의 극단 미소는 <장돌뱅이>를, 이도 모자라 서울에서 날아온 마당패 뜬쇠는 사물놀이를 공연함으로써 탐라국 잔치에 힘을 보태주었다. 말하자면 지방 극단 간의 첫 교류행사의 계기를 세이레가 제공한 셈이었다.
첫 공연에 도움을 준 극단 자유무대와의 통합은 출발 후 두 번째 계단을 성공적으로 올랐음을 증명한다. 서로 연극의 뜻이 비슷하고 지방 소극단의 공통적인 문제인 재정 문제를 벗어나고자 두 극단은 통합을 선언한다. 임필종, 이준, 강종임 등의 새 식구가 불어났고 세이레는 덕분에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배우에게 전용극장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듯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처해 있었을 이 땅의 연극세상에서 그리 흔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더 기뻤고 희망에 넘치게 됐다.
무엇이 두려울까. 날 수 있는 보금자리가있는데. 힘들면 들어와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는데. 모두들 열심히 했다. 극장의 이름을 세이레극장으로 바꿔 1996년 2월2일까지 운영하면서 작품 6개를 올려 89일간 117회의 공연을 해냈다. 연습하는 날을 제외하고 공연일수가 89일이라는 말은 피눈물 나게 무대에 섰다는 말이다. 그 중 <배비장전>, <콜렉터>, <굿나잇마더>는 각각 한달 넘게 공연하여 제주에서도 장기공연이 가능하다는, 제주인의 무대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두려움을 극복한 독수리는 다시 비상의 날개짓을 한다. 공연 직전에 미리 연극관계자와 일반인에게 공연을 하여 평가를 받는 비장한 시도를 한다. 속을 다 보여주고 치부를 스스로 찾아내려는 의도이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눈에 비치는 공연이 매양 좋을 수만은 없다. 모자라는 부분은 다시 보완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킨 후 내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점이 이들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요, 자랑이 아닐까.
스스로를 위한 담금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무언극연극소장이던 이건동 씨를 초대하여 토요연극강좌를 개최했다. 이미 원숙미가 나타난 배우들이지만 정신적 상태와 본능적 심리상태를 스스로 탐구하는 과정을 갖고 배우로서의 역량강화에 힘 쏟았다. 구도자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연구를 거듭했다. 삼칠일 참아내는 곰이 되어서.
사람의 일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한다. 인생이 그런 것을 어찌하랴. 공연은 공연이고 먹고 사는 일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불가피한 면모이다. 돈이 문제였다. 돈이 없어도 열정으로 똘똘뭉친 이들이지만 연습하랴, 무대준비 하랴, 의상, 조명 등 온통 돈이 들어가야 한다. 더구나 지방 극단 간의 교류를 통해 상호간의 문화발전에 힘을 보태려면 더 돈이 들어간다. 공연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건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리라. 재정문제가 계속되자 극장의 폐관을 고려하게 된다. 배우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극단 다솜을 이끌던 변종수 대표가 세이레와 동거를 제의한다. 당장 굶지 않아도 되는데다 극장을 운영할 수 있다면 배우들에게는 다른 고민은 호사로운 일이다. 모두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일일찻집을 열어 작은 돈이라도 모았다. 돈도 돈이지만 제주지역에 극단과 극장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도 희망의 불씨를 키우는 일이었다. 모두 주저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힘찬 제도약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리 되지 않았다. 1996년 3월 2일 극장 문을 닫았다. 경남 통영에서 세이레를 살리려고 모노드라마 <술>을 일주일동안 무대에 올렸으나 허사였다. 가난이 어디 하루아침에 사라지던가. 그런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허송세월하기에는 그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면서 절치부심하였다. 개구리도 도약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지 않는가.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이며 극장의 문을 닫았을 뿐이지 극단이 없어진게 아니었다. 아직 삼칠일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어른이 못하자 아이들이 나섰다. 극단대신 세이레 어린이극장이 전도를 돌며 아동극 공연을 했다. 역시 워즈워드가 시 속에서 주장하듯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였다. 부채가 줄어들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1997년 3월 <변방에 우짖는 새>를 들고나와 모두 울부짖었다. 돈이야 늘 극단을 피해 가지만 얻는 게 있다. 대형 작품제작의 가능성과 대극장 운용의 경험이라는 귀한 자극제가 된 작품을 통해 세이레는 움츠린 날개를 다시 펴려했다. 내친김에 <왔다 배비장>, <장돌뱅이>, <유랑극단>, <화가 이중섭>등 5개 작품을 1997-98년에 무대에 올렸다.
세이레는 죽지 않았다. 열심히 뛰다 잠시 기력이 소진했던 것이다. 1999년 연습과 공연으로 한 해를 보냈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희열을 느낀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삶을 몸으로 느낀다. 행복한 시기였다. 그래도 세월은 그리 흘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 2000년으로 넘어갔다. 긴 휴식의 시간이 말없이 흘렀다. 무료하게만 흐르지 않았다. 용담동에 어찌 마련한 연습실에서 <밥>을 연습하고 공연했다. 마당극에 도전한 경험을 얻은 극단은 <들불>을 1901년에 일어난 제주의 아픈 역사인 이재수의 난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올려 이 땅에 아직도 들불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바쁘게 지내온 배우들과 극단은 2002년을 <방울소리> 하나만 공연하며 숨고르기를 계속했다. 다음 해를 위해서.
2003년에 <흉가에 볕들어라>, <어둠 아기 빛 아기>와 <하늘에 핀 등불>을 올린 이들은 새로운 도약을 2004년에 이루었다. <다시 부르는 사모곡>을 8월부터 공연함을 시작으로 연말인 11월 27일까지 4개월의 장기공연을 해내면서 세이레의 부활을 알렸다. 그해 12월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를, 2005년에는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하여 제주 연극 애호인들에게 숨통을 틔어주었다. 4월20일 한라아트홀 대극장에서 전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 참가작으로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를 공연했다. 표준어가 아닌 제주방언으로 시종일관 공연했다. 심사위원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소재인 연극을 제주말로 공연하는 것은 극의 완성미와 내용전달과 호소력에서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강상훈, 정민자 두 사람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해외의 유명 오페라단이 한국에서 공연할 때 우리말로 공연하던가. 원작의 언어를 이용하는 게 보편적 상황이고 소재와 관객이 제주인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잠시 첫 시작대목을 살펴보자. 얼마나 구성진 제주말의 표현이 있는지.
길용모 : 하영 잡읍디가?
영미모 : 모리가 우리 시아방 제산디, 이 구젱기 잡아사 제상에도 올리곡헐건디양?
노파 : 길용어멍, 아방은 어떵햄서?
길용모 : 어떵은 어떵마심. 아칙부터 술먹엉 나가 죽어지쿠다. 아이고, 이 삼촌 보라. 이 삼촌은 늙지도 않은 셍이라. 오널도 우리보담 하영 잡아신게.
제주방언의 맛과 멋이 잘 어우러지지 않았는가. 시아버지 제사상에 올리려 소라를 많이 잡았느냐는 얘기와 늙지도 않고 정정하게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늙은 해녀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사투리로 이루어진 대사의 맛을 통해 제주인의 삶의 편린을 현실감있게 전하고 있었다.
제주는 삼다의 섬이다. 여자가 많다. 그 많은 여자 중에 4명의 아주망(아주머니)의 사고를 냈다. 토요일마다 한달 동안 마을을 찾아다니며 제주방언으로 <배비장전>을 공연했다. 오라동사무소에서 공연할 때는 나도 구경을 했다. 웃음이 공연장 가득 차 있으면서 어른들이 너무 좋아했다. 공연 후에도 웃음은 동사무소를 맴돌았을 것이고 그날 밤 할아버지는 배비장이 되고 할머니는 애랑이가 되어 꿈속에서 서로를 희롱했으리라. 잠자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꿈꾸었으리라 생각하니 정민자, 강춘식, 김이영, 김이숙 네 아주망의 능청스런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저런 열정이 있으니 제주에서도 연극이 큰 자리를 차지할 거라 굳게 믿으면서.
제주 첫 부부 시낭송가
두 사람 모두 일에 묻혀 산다. 연극이 아니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할사람들처럼. 예술과 삶을 조화시킨다는 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참 신기한 부부이다. 정민자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이다. 내가 등단하여 첫 시집을 내는 경사가 있자 시낭송과 시극을 올려 축하해주겠노라 했다. 행사당일 강상훈은 내 시 <비상을 꿈꾸는 풍란>을 낭송했다. 차분하면서 힘찬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박수가 끝난 후 친구 정민자와 설승혜 두 사람의 시 퍼포먼스가 있었다. 많은 문인들의 출판기념회를 했어도 이렇게 시 퍼포먼스까지 무대에 올리는 영광은 없었으리라. 낯선 무대를 대한 축하객들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들이 올라왔다. 이런 영광을 내게 준 친구에게 감사를 보낸다.
“강연옥 시 퍼포먼스”
어둠 속에서 잔잔한 음악이 들리고 풍선들이 날아올랐다가 여기저기에 꽂아 선다. 마치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여행을 하다 지쳐 쉬는 모습이어도 좋고 아니면 이젠 자리를 잡고 씨앗을 틔우려는 모습이어도 좋다. 이 풍선들은 어떻든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배우는 움직임 없이 아주 작은 동작으로 자리 잡는다. 생명의 풍선을 끌어안고 아주 소중히 다루는 표정이어야 한다.
땅 속에서의 오랜 기다림이 그려지고 차츰 역동적인 생명의 꿈틀거림을 표현한다. 작은 몸짓에서 크고 대담한 몸짓으로 역동적인 것을 표현하고 음악도 되도록 환하고 비트가 느껴지는 것이면 좋다.
배우들, 격렬한 몸동작 속에서 세상에 던져진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움만 쫓는 여인의 모습이든지, 치밀한 계산 속에 사는 남자의 모습이라든지, 오직 희생만 강요당한 이 땅의 엄마들의 모습이라든지.. 그러다 차츰 현대의 과장되고 박제된 듯한 모습들로 무대는 채워진다. 마치 우리 모두가 조화 같다, 플라스틱 세포처럼 그냥 질기기만 한...
시[조화]들려온다.
<2>
잠옷을 입은 배우가 무대에 쪼그리고 누워있다. 빗소리와 음악이 들린다. 몇 번의 몸부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가 어딘가 앓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그렇긴 하지만... 딱히 장애를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무언가에 힘들어한다는 것만 표현하면 된다. 천천히 일어나는 잠옷의 배우, 무대에 있는 풍선을 정리한다. 어떤 것은 찬찬히 보고 나서 터뜨리고 또 어떤 것은 아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그때 화려한 음악과 함께 여자 나온다. 경쾌한 발놀림이 모든 사람들을 압도한다. 양산을 쓰고 핸드백을 메고, 얼굴에는 선글라스까지, 유행의 첨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잠옷의 배우, 넋 잃고 여자를 쳐다보다가 다 시든 꽃다발을 갖고 와 여자에게 준다. 꽃향기를 맡아보던 여자,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양산을 놓친다. 꽃다발도 놓치고, 어느 순간에 엉망이 돼버렸다. 그 여자의 모습이. 세상살이가 그런 것.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법.
잠옷의 여자, 황망히 무대를 나가더니 조금 후에 잠옷 위로 바바리코트와 힐구두, 그리고 특히 립스틱을 빨갛게 바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나온다. 음악과 함께 화려한 등장 쇼를 하고... 모든 것을 잃은 여자는 작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다.
<3>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는 배우들. 행복한 표정들이다.
어디선가 아이들 웃는 소리, 어른들의 웃는 소리가 겹쳐지고...
배우들 일어나 유영을 시작한다. 즉흥적인 작업이 좋겠다. 그러나 어머님의 모습은 꼭 있었으면... 즉흥극이 이어지는 적당한 곳에서 시 [세월]이 낭송되었으면 좋겠다.
---어머니를 부축하고 가는 아들이 보인다. 아들이 종이 봉투에 뭔가를 사서 들고 가 어머니께 드린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어머니...
---어머니가 마당을 쓸고 있다. 꽃밭을 손보고 있다. 나이가 든 딸이 나온다. 뒤에서 일을하는 어머니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 어머니를 뒤에서 조심스럽게 안는다. 깜짝 놀란 어머니, 돌아보더니 금방 굵은 눈물을 흘린다. 딸만 보면 가슴이 아린 우리 어머니... 줄 게 없어 늘 미안한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가 아프다. 내 마음은 더 아픈데, 난 아무 것도 해 죽게 없다, 아무것도... 그저 굵어진 앙상한 어머니의 손만 부여잡고 눈물만 보일 뿐... 그 어머니의 자식이어서 고맙다..
시 [세월(5)] 들린다.
이들의 시에 대한 사랑은 오래 전부터이다. 매달 첫째 금요일 제주시 산지천에 있는 중국인 피난선 해상 호에서 시낭송을 해오면서 제주인들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알려왔다. 제주시사랑회의 일원인 이들은 ‘시가 흐르는 산지천의 금요일’의 타이틀을 달고 제주시인과 유명 시인의 작품을 낭송한다. 정민자가 먼저 시낭송가가 되었다. 2001년 한국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시낭송가 증서를 받아 정식으로 시낭송에 나선 그는 제 11회 전국재능시낭송 본선대회에 출전하여 김영랑 시인의 <바다로 가자>를 낭송하여 은상을 받았다. 당시 제주시사랑회 대표로 활동 중이었다. 아내가 상을 타니 슬그머니 남편이 시의 세계에서 낭송의 묘미를 맛보게 된다. 2002년 강상훈도 금상을 받았다. 허영자 시인의 <그 눈부신 불기둥 되어>를 낭송했다. 제주에서 첫 부부 시낭송가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세이레 문화학교
극단 세이레극장은 강상훈이 대표를 맡아 운영하는 한편 세이레어린이극장은 정민자가 대표로 있으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제주어린이예술축제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상훈)가 주관하는 제1회 제주어린이 예술축제 ‘잼잼’을 5월 1일부터 5일까지 제주한라대학 한라아트홀 일대에서 개최되었는데 5월 3~5일에는 세이레어린이극장이 키덜트 뮤지컬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공연하여 행사를 빛냈다. 미래의 제주연극세계를 이끌어갈 어린이를 발굴하여 육성하는 세이레어린이극장을 통해 제주공연문화가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극단 세이레극장과 더불어 극단 세이레어린이극장은 결국 세이레문화학교의 두 축이다. 포부와 각오를 새롭게 밝히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연극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다시 거듭나겠습니다.
이제 다시 걸어가겠습니다.
눌은 때를 밀어내어 새 출발하겠습니다.
극단 창단 후 13여년의 세월의 흔적을 기억하겠습니다.
저희는 문화예술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세이레극단과 세이레어린이극장이 함께 운영하는 제주도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제주도민의 정서와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문화예술의 역량을 키워 문화산업의 일꾼을 만들고 작게는 문화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며 아껴나가는 문화예술 향유자를 양성하며 문화예술을 키우는 자양분의 토양을 만들어 크게는 이 땅의 토양을 문화산업으로 키워내는 문화예술교육우ㅏ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려 합니다.
문화의 힘
예술의 힘
교육의 힘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제주도 문화예술교육의 산 터로서의 사명을 목표로 하여 나아갈 것임을 말씀드리며 새로운 시작에 큰 힘을 그리고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강상훈과 정민자의 호소는 절박하다. 그만큼 제주도 연국예술이 처한 형편이 절박하다.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와 제주인의 특징을 바탕으로 연극문화를 발전시키려는 두 사람의 염원 또한 절박하다. 문화와 예술과 교육의 조화로운 삼박자를 통해 이루어질 두 사람의 노력은 제주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리가 확신한다.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