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일곱 시가 좀 지났을 때, 저는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걸어갔습니다. 피곤해서 도서관에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는 반납 기간이 다 된 책이 두 권 있었어요. 할 수 없잖아요? 늦게 반납하면 그 기간만큼 책을 빌릴 수 없는 걸요.
도서관에 도착해서 책을 반납하고 났더니 일곱 시 삼십 분이었습니다. 폐관 시간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지요. 저는 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거의 텅 비어 있는 신간 코너에서 시작해, 철학 서적이 가득 꽃힌 100번대 서가를 지나, 곧장 예술 서적들이 울퉁불퉁 꽃힌 600번 서가를 가로질러, 문학 서적이 가지런히 놓인 800번 서가에 도착했습니다. 그 동안 제 왼손은 반납한 책을 대신할 '서양 미술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있었지요.
800번대 서가는 다섯 개의 책장이 도미노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입니다. 저는 그 중 가장 가운데 책장의 일본 문학 작품에 다가갔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훑어가려고 돌린 눈에 무언가가 보였고, 저는 거기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눈길의 끝에는 책이 있었습니다. 다른 책보다 조금 작은 판형의 양장본 책의 연보라색 등에는 '월리스의 인어'라는 제목이 거의 다 벗겨진 은박으로 간신히 형태를 유지한 채였습니다. 그 아래 작은 명조체로 '이와이 슈운지'라고 적힌 은박이 제목보다는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지요. 아, 이 책을 가지고 계신 분은 실제 생김새를 이 글과 비교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는 지금 아련하게 남은 기억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사소한 몇 가지 오류는 무시해 주시길. 제가 그 때 정말로 보고 있었던 건,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건 책이 아니라 책등 부분에 대한 겁니다. 왜냐하면 책등의 '와'라는 글자 옆에 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었거든요.
그냥 파리였다면 무시해 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파리를 쳐다본 이유는, 그 파리가 과연 진짜 파리인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창백한 형광등 조명과 책꽃이 칸막이의 그림자 속에서, 파리의 모습은 그저 검은 파리 모양의 점으로 보였거든요. 정말 살아 있는 파리인지, 아니면 책 표지의 삽화인지, 계속 바라보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오른손을 가져갔습니다. 다행히도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닿기 전에 제 입에서 재채기가 나왔고, 그 때문에 파리의 다리가 움직였습니다. 파리는 살아 있었습니다.
정작 파리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나자, 제 호기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파리였다면 사람의 기척에 휭 날아가 버렸을 거에요. 저는 재채기에 파리의 날개가 살짝 떨리는 걸 보았지요. 그런데 이 파리는 자신의 등 뒤로 쏟아진 강렬한 바람에도 그저 다리 하나를 꿈틀 움직였을 뿐입니다. 어째서 파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저는 갑자기 그게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파리의 등에다 입김을 모아 세게 후욱 불어보았습니다. 파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리조차 움직이지 않았지요. 왠지 약간 화가 났습니다. '이거 봐라?'라는 생각에, 저는 '월리스의 인어'의 책등을 툭툭 쳤습니다. 파리는 그제서야 다리를 살짝 움직이더군요. 아니, 차라리 움직이지 않았다면 거기서 저는 파리 자극하기를 끝냈을 겁니다. 저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파리의 등을 쿡 쑤셨습니다. 파리는 약간 꿈틀거렸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책을 뽑아서 책을 펼쳤습니다. 아래로 향한 책등에 파리는 계속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아마 파리의 다리를 보지 못했다면 계속 녀석을 건드렸을지도 몰라요. 사실 머릿속으로는 책을 실수로 떨어트린 척 바닥에 팽개쳐 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접고 책을 다시 꽃았을 때, 책등을 붙잡은 파리의 다리는 대칭으로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몸뚱이 옆으로 거의 쭈욱 뻗다시피한 오른쪽 세 번째 다리의 모양이 너무 튀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었고, 저는 곧 그 모양을 기억해 냈습니다. 다 죽어가는 개미의 비틀린 몸뚱이에서 본, 버둥거리는 다리가 꼭 그런 모양이었지요. 파리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파리는 책등을 꽉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출하려면 5분 남았습니다."라는 사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아무 책이나 뽑아서 황급히 서가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비로소 제가 뽑은 책을 볼 수 있었지요. 다자이 오사무의 유명한 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왜 그 책을 뽑은 건지는 지금도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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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는 엽편 소설. 예전에 쓸 때 보다는 길이가 길어졌다는 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정구현이 써 놓은 '보르헤스를 읽고 2'를 이어 '보르헤스를 읽고 3'이나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음. 과연?
첫댓글 다자이 오사무의 유명한 책이라면 <인간실격>이겠구나. 죽어가는 파리를 보던 사람이 문득 붙잡은 책이 인간실격이라니... 허허...
오오, 이 장난 눈치채셨군요.
음.넌 나중에 꼭 좋은 작가가될거야..잘되면 아는척~!알쥐? 흐흐
아이고 황공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