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의 권리를 위하여
_ 크라잉넛쑈 '파랑새는 있다' @ 디지비디
*디지비디 관객석 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2월 21일 크라잉넛 쇼 포스터.
지난 2월 21일, 홍대 디지비디에서 올해 첫 크라잉넛쇼가 펼쳐졌다. '파랑새는 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공연에는 고고보이스, 안녕바다, 와이낫, 크라잉넛이 무대에 올랐다. 흥겨운 음악 속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몸과 마음을 음악으로 흥건히 적실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은 특히 와이낫의 노래 '파랑새' 표절 문제로 인해 불거진 인디씬의 권리 찾기를 그 취지로 두고 있었다. 이번 문제는 에프엔씨뮤직 소속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의 곡 '외톨이야'가 와이낫의 '파랑새'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네티즌의 의견에서 시작되었고, 이에 대한 씨엔블루 소속사와 '외톨이야' 작곡가의 안일한 태도로 대중음악 씬 전체로 확산되었다.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입장 1시간 전부터 디지비디 앞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공연 제목과 라인업을 훑어보면서 흥미를 가지기도 했다.
가자가자, 우리 음악 속으로 _ 고고보이스
첫 머리를 장식한 것은 고고보이스였다. 고고보이스는 이승윤(보컬), 바우(보컬), 이상태(베이스), 황성하(기타), 조용찬(드럼)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밴드로 2006년에 동두천록페스티벌에서 금상을 거머쥐었고 2007년도에 EP집 [Ready To Jump Around]를 발매하여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는 중이다.
*몸을 슬슬 풀어주신 고고보이스.
시작부터 흥겨운 노래로 관중을 압도하였고, 사람들은 몸을 조금씩 풀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기쁘다는 멘트를 날린 보컬 이승윤은 무대 앞으로 나와서 "아직 사람들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네요"라며 흥을 북돋아주었다. 곧 싱글 앨범을 발매할 예정인데 27일에 단독 콘서트가 있다고 한다. 이번 공연보다 15배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며 싱글의 타이틀 곡으로 들어갈 "비가 내려"를 부르며 크라잉넛쇼의 첫 타자는 무대 위를 내려왔다.
쏟아지는 별 빛과 함께 _ 안녕바다
이어서 등장한 밴드는 안녕바다. 안녕바다는 나무(보컬, 기타), 명제(베이스), 준혁(드럼), 대현(프로그래밍, 키보드) 등 총 4명으로 구성된 밴드로 작년에 EP집 [Boy's Universe]를 발매하였다. 보컬의 노랗고 풍성한 머리가 인상적이었는데 관객석에서 "머리 가발이에요?"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는 질문에 잠시간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였다.
*풍성하고 노란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안녕바다의 보컬 나무.
보컬 나무는 "지금까지 저희는 크라잉넛쇼에서 관객으로 참여를 했지 이렇게 무대 위에 올라와 본 것은 처음이다. 밴드로서 무대 위에 올라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너무 기쁘다"는 멘트를 던졌다. 2009년 12월에 발매된 EP 앨범의 타이틀 곡 '별 빛이 내린다'를 부를 때 그의 눈가는 마치 눈물을 흘리고 있는양 촉촉하였다. 우는 것이 아니라 하였지만 관객석에서는 누군가가 "울지마!"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들은 얼마 전에 MBC의 '음악여행 라라라'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또한, 정규 1집 앨범이 올해 4, 5월 경에 나온다는 따끈한 소식도 함께 전하였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이해 받았으면 좋겠고, 무시 당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멘트를 하며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곡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번 와이낫 사태에 관해 안녕바다의 마음이 전해오는 무대였다.
그래도 음악은 계속 됩니다 _ 와이낫
오늘 무대의 주인공 격이라고 해도 무방한 와이낫의 등장. 공연장의 열기로 더울 법 한데도, 멤버들은 모두 빨간 색과 검정 색으로 구성된 체크무늬 두꺼운 자켓을 입고 등장하였다. 와이낫은 주몽(보컬), 김대우(기타), 현우(베이스), 손말리(드럼)로 구성된 밴드로 10년 넘게 홍대 인디씬에서 멋진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밴드 중 하나이다. 씨엔블루라는 아이돌 가수가 이들의 노래를 표절하여 달갑지 않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냅시다. 와이낫.
작년에 한 번 크라잉넛쇼에 올라왔고 이번이 두 번째. 안타깝게도 보컬 주몽이 최근에 등을 다쳐서 오늘은 약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보컬 주몽이 언급한 '곤잘레스' 스타일의 와이낫 무대는 전혀 약해 보이지 않았고, 관객들은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호응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와이낫은 락커스라는 홍대 인디씬 야구팀에 속해 있는데 3월 5일 락커스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섰다고 하니 곧 와이낫의 라이브를 방송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멤버 네 명이 중간에 무대에 올라와 트럼펫과 트럼본의 풍성한 사운드로 '파랑새'를 채워주었다. 와이낫은 "이번 사태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은 곧 잊혀지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음악을 할 것입니다. 음악 앞에서는 누구도 덤비면 안 됩니다"라는 멘트로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였고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질러댔다.
음악에 빠져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_ 크라잉넛
크라잉넛쇼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공연의 호스트, 크라잉넛. 이들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서있는 위치에 상관없이 모두 앞으로 전진하였고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탕에 빠져 음악에 온 몸을 맡겼다.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관객들은 모두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예 자기 영역까지 마련해 놓고 강렬한 스텝을 밟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오랜 경력을 지닌 크라잉넛은 이번에도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크라잉넛은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김인수(키보드)으로 구성된 밴드로 작년 8월에 6집까지 낸 오래된 인디밴드 중 하나이다. 이번 공연이 열린 디지비디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크라잉넛쇼는 2007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보컬 박윤식이 감기에 걸려서 '섹시한 목소리'를 뽐낼 것이라고 베이스 한경록이 멘트를 하였고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박윤식은 자신의 기량을 한 껏 뽐내주었다. '착한 아이'를 부를 때는 한경록이 비눗방울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을 즐겁게 하였고 이번 공연의 주제에 걸맞게 새와 관련된 노래를 몇 곡 불렀다.
올해 4월에 크라잉넛의 15주년 콘서트가 있을 예정이다. 마지막 곡으로 "밤이 깊었네"를 선사하였고 이번 공연의 주제인 '파랑새는 있다'와 관련한 인상적인 멘트를 남기었다. "내 생각에는 파랑새는 외톨이야!"
음악인의 권리를 위하여, 토스!
5시 30분이 조금 넘어 시작된 공연은 10시가 다 되어 끝이 났고 공연장 밖을 나서니 해는 이미 저문 지 오래었다. 현란한 사운드에 귀가 멍멍해져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은 느낌으로 공연장 밖으로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 차가운 공기를 들이 마셔 머리가 맑아질 때 즈음, 와이낫의 보컬 주몽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 표절 문제는 음악의 역사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해당 아이돌 밴드의 기획사가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무성하지만 이번 문제가 시사하는 바는 표절의 진위를 넘어선 것이다. 음악하는 자들의 권리가 지켜지고 존중되는 한국 대중음악 씬의 모습, 갈 길이 멀지만 이번 문제가 후퇴가 아닌 한 발자국 나아가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있을 크라잉넛쇼 역시 이번 공연과 같이 인디 씬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2010.02.28
글, 사진 / 조은애
에디터 / 이정아
idea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