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김윤신 조각전’을 보고
모처럼 미술관을 찾았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서 열리는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회화나 사진 전시는 즐겨 찾았으나 조각전시회는 학창시절 문신 개인전 관람 이후 기억에 없다.
문외한으로서 김윤신이 어떤 예술가인지 궁금했다. 1935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니 만 나이로 88세다. 그때 미대, 그것도 조소과를 선택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각가로서의 그의 행적은 개척자, 선구자의 길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몸으로 용접기와 전기톱, 끌과 망치를 들었다. 90을 앞둔 지금도 전기톱과 끌과 망치를 들고 나무와 돌을 다루는 모습은 만년의 피카소를 연상케 한다.
그는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익히고 10여 년간 국내서 활동하며 한국여류조각가회 설립을 주도했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몰입한다. 그가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것이 남미의 나무와 원석 등 매혹적인 조각재료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니 놀랍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미술계에선 그는 이미 명사다. 많은 전시회를 열고 ‘김윤신 미술관’도 개관할 정도다. 잉카와 아즈텍의 토템은 그에게 한국적인 토속의 가치를 일깨웠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품세계를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그에게서 합(合)과 분(分)은 세상 만물과 우주를 설명하는 근본으로 동양의 음양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대로 태극문양을 연상시킨다.
그에 대한 이런 단편적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작품을 맞이했다. 여느 구상 조각전시회를 보는 것과는 달랐다. 채석장이나 채벌장에 들어선 듯 원석 원목의 속살을 그대로 보이면서 최소한의 가공으로 우주 혹은 삶의 신비를 은유로, 직설법으로 설파하고 있었다. 억제된 표현, 억제된 가공이 작품의 공명을 깊게 했다. 추상 조각의 정수를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작업실에서 진행된 그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곤 김윤신이란 작가 자신이 추상조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5월7일까지 열린다. 사당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니 관람을 적극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