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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단풍숲, 고창 문수사(11/14)
글/사진:이종원
눈 뜬 봉사였다. 그동안 고창 선운사 단풍을 뻔질나게 드나 들었지 정작 고창 문수사는 있는지조차 몰랐다. 선운사에 결코 뒤지지 않을뿐더러 천연기념물에 지정될 정도로 바단같은 단풍을 품고 있었다. 그 흔한 산채비빔밥 집이 없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취객도 없으니 유유자적 산책하며 산사에 마음을 내맡기기에 좋다. 선운사 단풍은 이미 가을과 이별을 고했고 마른 단풍만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반면 이곳은 한창 물오른 18세 처녀처럼 싱싱함을 더했다.
11월 중순인데도 혼을 쏙 빼놓을만한 단풍여행지가 여태 남아 있다니 횡재는 이럴 때 내밷는 찬사가 아닌가 싶다. 단풍이 너무 화려해 오전 내내 절주변을 맴돌며 만추풍경에 해롱거렸다.
급히 가야할 일정이 있었지만 그림같은 풍경은 내 발목을 꽉 쥐고 오도가도 못하게 미몽속에 빠트렸다.
고창IC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 고창읍성을 돌면서 무병장수하겠다는 의욕을 불사르고나면 고인돌에 눈인사 맞춰준다. 서정주 묘소에서 미당은 한송이를 원했는데 백만송이를 피우게 한 돋음별 사람들을 원망하고 나서 다시 선운사에 가서 단풍에 취하는 것이 나의 가을 고창여행의 일상이었다.
금년에도 수차례 백화점 여행강사로 나갔을 때도 똑같은 길을 걸었고 버스안의 멘트 또한 10년째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고창의 다른 곳을 찾아가려니 영 어색했다. 문수사는 고창군 고수면에 자리잡고 있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올 때는 단풍의 '고수'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무엇이 고수일까. 고수면소재지에서도 깊은 속내로 한참을 들어가야 문수사를 만나게 된다. 영화에도 등장했던 조산저수지에서도 6km를 더 들어가면 그 이름도 예쁜 '은사리'가 나타난다. 모놀의 은사시나무님의 미모에 비견될 예쁜 곳^^ 역시 단풍 명소답게 길가의 가로수는 단풍나무였다. 아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길은 핏줄처럼 보일게다. 마을에 당도하자 백혈구, 적혈구가 얽힌 것 같은 심장인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낙엽이 나뒹구는 정자만이 들어앉았다.
문수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일주문과 주차장이 나온다.
청량산 문수사. 청량산은 자장율사가 중국 산서성 청량산(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사리를 가져온 산이 아닌가. 봉화의 청량산도 있고 고성의 문수암도 있다. 이곳 역시 그와 비슷한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그러고보니 혹 자장율사는 전국토를 불국토(청량산)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꿈이 있지 않았을까.
이곳 역시 자장율사가 추령산을 지나다 그 생김새가 증국 청량산과 너무 비슷해 석굴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7일만에 땅속에서 문수보살이 솟아 올라 이곳에 절을 지어 문수사라고 했다고 한다. 마장가 제트처험 땅에서 솟아난 문수보살석불을 모시고 있다.
일주문은 수고하고 힘든 대중이 누구가 드나들도록 대문을 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대문보다 더 무서운 매표소가 있으니 더욱 두꺼운 문으로 가로 막은 셈이다.
이곳이야말로 아무 대가 없이 부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절집이다. 문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극락세계다.
'호남 제일의 문수도장'의 선돌이 서 있다. 바위에 걸터 앉아 단풍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보일 것만 같다. 길은 있지만 차는 이곳에 세웠다. 일주문 옆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단풍의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아마 선운사 단풍은 이곳 문수사에 바톤을 넘겨준 모양이다.
일주문 옆은 뒤틀린 단풍나무가 애처롭게 자라고 있다. 400년 동안 라오콘 처럼 비틀리는 고통 속에 신음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고귀한 나무다. 바닥은 낙엽이 수북해 단풍침대가 따로 없다.
차는 일주문에 세워 두는 것이 좋다. 길에 들어서면 총천연색깔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일주문에서 문수사까지 700 여m 숲길. 곱기로 명성이 난 애기단풍이 숲을 이룬다. 단풍숲으론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제463호)이다. 100년에서 400년의 거목들이 연륜의 빛깔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이다. 황량하고 앙상한 가지는 겨울을 맞기 전에 마지막 불을 지피고 있었다. 단풍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느티나무, 졸참나무, 팽나무, 개어서나무상수리나무 등이 제각각 가을 색을 뽐내고 있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진 색의 조화믄 문수사 단풍의 백미다.
떨어진 낙엽은 꽃잎이 되이 휘날리고 있었다. 잎사귀가 아니라 낙화였다.
어색할 것만 같은 아스팔트는 캔버스가 되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잇다. 절을 끼고 있는 마을이 은사리였던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닥에서 만난다. 내 등산화에도 큼직한 별 하나가 붙어 있다. 내
이런 낙엽길을 거닐어 적이 있는가. 절집 구석구석 다 둘러보고 이 장면이 못내 그리워 다시 차를 가져와 달려보았다. 별을 밟으며 마구 달렸단 말이다.
숲은 하늘 한점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개를 처들고 틈 사이의 하늘을 보려고 하면 새들이 호루라기 소리처럼 짖어댄다. 단풍에 집중하라는 일종의 경고다.
400m쯤 단풍에 취하다보면 주차장이 나온다. 화장실이 있으니 몸을 가볍게 하고 절집에 오르라. 걸음이 사뿐히질 것이다.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문수사가 나온다.
계곡 따라 경사길을 올랐다. 극락이 무척 넓었다. 멀리 시선을 던지니 산전체가 붉었다. 아마도 자장율사는 가을에 이곳을 찾았을 것이고 이 꿈같은 단풍숲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사천왕문은 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보다 훨씬 큰 고목단풍이 신목처럼 절을 수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상 쓰며 칼을 휘두르며 악귀를 제압하는 사천왕상이 서 있을 이유가 없다. 나무는 총천연색 미소로 악귀를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내 안에 있는 더러운 티끌들은 이미 단풍에 정화되었다. 수백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대중들에게 청정함과 기쁨을 안겨 주었을까.
입구 계단을 오르는 것이 너무 아까워 먼발치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풍경에 취했다. 한 칸 두 칸 오르는 계단은 칸느영화제의 레트 카핏이었다. 드레스 밟지 않으려고 바닥에 신경 쓸 필요 없다. 성큼성큼 걸아라.
절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절 외곽을 크게 휘감아 돌았다. 천연기념물이다보니 보호차원에서 펜스로 숲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해도 먼 발치에서 바라본 자태는 부족함이 없었다. 한 해를 뜨겁게 살다간 단풍 낙엽은 장렬하게 싸우다 죽은 병사 같았다. 영원불멸이 없다면 진리를 깨달았다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단풍처럼 활홀 타오르다 장렬하게 떨어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하긴 죽는 것이 아니다. 다음해 새순을 위한 과정이니 말이다.
말도 안되는 개똥철학에 애써 미소 지으며 단풍잎 하나 가슴에 묻고 또 걸었다.
붉은 놈, 노란 놈. 모두 기특한 내 자식들이다.
사람 구경 하기 힘든 이 숲에 여인이 걸어간다. 그녀는 보랏빛 향기를 내 품고 있었다. 그 향기를 맡으려는 가지는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엇을 담으려는 것일까.
묵을수록 김치 맛이 다르듯 같은 나무의 이파리도 이리 색이 다를까.
어두컴컴한 하늘이 걷혔다. 그리고는 문수사를 싸이키 조명처럼 비추고 있었다. 대웅전과 문수전, 요사채가 전부다. 큰 절도 아닌 소박한 마음이 안식처다. 이 조그만 절집이 이 거대한 단풍숲을 거느리고 있다니 벅차지 않을까
수줍은 여인처럼 대웅전은 청량산아래 경치 좋은 곳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화려한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얼굴이 아니라 옅은 화장을 한 수수한 여인네의 얼굴이었다. 포작을 화려하게 꾸민 다포를 가지고 있지만 겸손하게도 풍판으로 가려 놓았다. 다포식이지만 맞배지붕을 얹은 모습은 오늘날 고창의 여인네를 보는 듯하다.
젋은 여인이 아니라 바닷바람과 싸우며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채취한 고창 여인의 얼굴이랄까, 이젠 힘이 부쳤는지 지붕은 지팡이 같은 활주에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단아한 만살문. 세월 때문일까, 문고리는 잔뜩 녹이 쓸어 있고 파란색 단청은 색이 바랬다.
활주 받침석은 투박한 돌쇠의 얼굴. 난 여기서 우직한 고창사람이 팔뚝을 본다.
있는 듯 없는 듯. 대웅전을 돌아보니 문수전이 숨어 있었다.
문수보살은 귀국후 이 산이 당나라 청량산과 비슷해 7일동안 정성스레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날 땅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 신기하게 여겨 그 곳을 파보니 실제 문수보살이 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문수사라 했다. 문수전 안에는 땅에서 솟아난 문수보살 석상이 있다.
다소 투박하지만 돌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불상. 이마가 유난히 넓고 푸근한 미소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가슴에 손을 얹은 모습이 귀엽다.
문수전 옆에는 청량산을 향해 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고 그 위쪽으로 30m가 넘는 감나무가 단풍나무와 함께 선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나 감이 많고 탐스런지
반대편에서 본 감나무. 가까이 가서 사진을 담으려고 하니 절집 아저씨가 지금은 법회중이니 오르지 못하게 막는다. 내가 욕심을 부린 것이군. 아쉽지만 먼발치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볼 뿐이다.
단풍에 눈이 황달이 되었는데 오히려 갈증이 난다. 대웅전 앞 약수터에는 단풍 우려낸 물이 흐른다. 바로 문수보살의 지혜가 샘솟는다고 하는 용지천으로 수험생들이 물을 마시면 합격 보장~ 진정한 지혜는 수능성적이 아니라 자기 발견이 아닐까.
문수전과 단풍
단풍 연인
단풍이 단풍을 찍고 있네
절집 가는 길 절집에 오는 사람에게 꽃바구니 한아름 안겨주는 것 같다.
절에서 바라본 청량산 일대. 맞아, 봉화 청량산도 단풍때 이런 색감이었지.
영화속 장면이다. 이런 길을 원없이 걷고나서 비로소 가을과 이별을 나눴다.
타오르는 단풍화로를 가슴에 품는다. 매서운 한파가 귓볼을 얼음장으로 만들 때 가슴속에 모셔둔 단풍잎을 하나씩 꺼내 심장 화로에 불을 지피련다. 한 잎 두 잎 태우면서 기나긴 겨울을 이겨낼거다. 단풍잎이 모두 타고 재만 남는다면 앙상한 가지 끝에 연두빛 새순이 돋겠지 화려한 가을을 그리며 그렇게 수줍은 봄을 맞이할거야.
감나무 사이를 걸으며
염원
불이문. 둥근 공간 사이로 가을이 보였다.
문수사 오르는 계단
널부러진 단풍잎이 이리 아름다울 줄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계곡을 거슬러 바람이 머물다가면 낙엽은 아직도 살아 있노라고 온몸으로 화답한다.
이 여인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노란 단풍이 인간으로 환생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으로 담기엔 너무 화려했다.
성큼성큼 계단을 밟는다.
문수사 입구 단풍나무
뭐가 아쉬운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계곡도 천국이엇다. 초록 이끼에 빨간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내쇼날 프라스틱 대야에 김치가 익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계곡 물이 빨갛게 물들지 않을까
단풍수족관
산도 물도 모두 총천연색
아쉬움은 청량산에 고이 묻어 두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단풍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슬슬 찾아 들기 시작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굽을 길을 거닌다.
햇살이 비추니 조명 받은 잎파리는 더욱 싱싱해졌다.
이런 길을 달리는 차는 복받은 차
가지들의 화려한 춤사위를 보며 문수사 단풍여행을 마감한다. 11월 둘째주~~문수사 단풍이 가장 농익을 때다.
내년에 모놀식구들과 다시 만나자. 그때도 이런 얼굴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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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넘 예뻐요. 감사합니다 ^^
제발 답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좀 열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