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로 드는 볕, 주는 느낌이 곱고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겨울철에 드는 볕은 강렬함과 더불어 집중적인 기운을 느꼈다면은 봄에 마주하는 볕은 포근하고 너른 형태의 빛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서면서 화분의 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만 신경 쓰며 지내다 봄기운이 가득 찬 봄 볕을 느끼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불필요하게 웃자란 부분을 정리해 주고 동안 준 물의 영향으로 배수구로 빠져나간 흙을 보충해 주고 만들어 놓은 퇴비를 뿌려 주고 화초들에게 관심을 집중해 주었습니다. 더불어 스스로 낙엽 지고 떨어진 꽃잎들과 그 영향으로 유리창에 붙어 있던 이끼류와 그 외 자국들을 말끔하게 닦아주니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겨 시선이 안정적으로 바뀐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보는 것이 안정적이면 덩달아 육신도 편안해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들고 온 카네이션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꽃이 지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너른 화분을 만들어 놓고 꾹 눌러 심어 놓은 후 시선에서 얻는 즐거움도 누렸지만 겨울이 닥치자 꽃과 잎을 다 떨어지고 메마른 줄기만 남아있던 모습이 흉하게 느껴져 버릴까 하다가 그냥 그 자리에 두었었는데... 봄기운의 볕이 유리창 너머로 지속되자 새싹이 돋아나더니 이만큼이나 자랐습니다. 몇 가지를 섞어 만든 비료를 담아 둔 통의 뚜껑을 열어 액체가 되어 있는 물질을 조금 덜어 환생한 화초에게 뿌려주고 고운 흙으로 덮어주자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과 함께 부활의 의미를 새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중심교리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이들 가운데 3일째 되는 날 살아난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이라 하는데 교회의 중요한 축일입니다. 예수부활의 기록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복음서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초대교회의 보편적인 신학적 표현들은 신약성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친김에 3월 중순이 다가오면 늘 찾는 높은 산 중에 숨어 있는 습지를 찾았습니다. 정상부근 서남쪽 방향에 자리를 잡고 있는 수원지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물은 좋은 식수를 제공하여 가파른 산을 오르면서 참 요긴하게 떠먹는 물 한 잔, 청량감과 함께 갈증을 풀어주어 저는 개인적으로 약 60년을 찾는 단골산객입니다, 이 물은 너 널 지대를 이루고 있는 돌 사이를 돌고 돌며 생명수가 되어 아생화를 아름답게 피는 숨은 곳입니다. 바람꽃을 봄의 전령 삼고 이어서 노루귀가 뒤를 잇고 다시 부채꽃과 양지꽃이 줄지어 봄과 더불어 화채 소평전을 다듬어 놓습니다. 아주 옛적보다는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갈수록 외진 바위틈 사위로 숨어 피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이끌어낸 일이니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무제한적인 소비문화가 빗은 생태파괴 현상이니 스스로 자책하게 됩니다. 두 번의 전화가 온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우를 범하다 충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연결하다 그제야 발견하고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산을 찾던 악우였습니다. 이야기 중 노루귀 야생화의 아름다운 꽃이야기를 하다 의기를 투합하여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산으로 가는 길목까지 들어서서 깨닫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태풍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지형이 바뀌어 오르는 길이 험로가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쓰러져 겹겹 하게 쌓인 통나무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오르게 된 산길 그리고 인적이 끊어져 생긴 각종 가시 돋친 덩굴잡목들이 우회하도록 발목을 잡아 참 성가셨습니다. 지쳐 갈 무렵 다가 온 노란 생강나무 꽃을 발견하고 다가섰습니다.
생강나무의 학명 (Lindera obtusiloba)는 녹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3월 이른 봄,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워 산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한방에서는 어린 가지를 말린 것을 황매목(黃梅木)이라 하여 타박상·신경통·어혈에 약재로 써왔습니다. 최근에는 잎 추출물이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주요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쿼시트린(Quercitrin)은 잎에 많으며 항산화, 항염 작용에 좋고 하이페로시드(Hyperoside)는 심혈관 보호효과가 좋으며 가지에 성분이 많습니다. 악티폴린(Actifolin) 은 나무 전체에 많으며 암세포 살해 작용에 탁월하고 시린가레시놀(Syringaresinol) 성분은 나무전체에 분포하며 항산화, 항암 관련연구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β-유데스몰(β-Eudesmol)은 열매를 정유하면 생기는 성분으로 생강 특유의 향을 발산합니다. 리모넨(l-Limonene)과 리나롤(Linalool) 성분은 열매를 정유하면 얻을 수 있는 물질로서 항균, 황산화 진정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NAD(P) H 옥시다제 억제 성분은 잎을 통해 추출할 수 있는데 혈관 산화스트레스 억제, 혈압조절에 효과적인 물질이라 판단되어 깊은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젊은 시절 야영을 하며 산중생활을 하다 꽃봉오리를 따서 소주병에 담아 두었다가 마시면 향취 묻어나는 것이 좋아 자주 그렇게 만들어 마신적이 많았습니다. 살며 시 꽃봉오리를 만져 생강향기를 느끼고 잔목 가지들을 피한 후 고도를 다시 높여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사태 영향으로 지형이 급경사지로 바뀐 덕분에 발과 함께 양손도 흙 위에 놓인 확보물을 찾아 이용해 가며 아주 어렵게 고도를 높여 나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햇살이 퍼지자 기온이 상승하여 오버트러스를 벗어야 했습니다. 웃옷을 정리하여 backpack에 넣은 후 너덜지대를 올라서자 얼음폭포가 길을 막아섰습니다. 3월에 얼음폭포 깊은 산중에는 보통 절기 중에 하나인 하지 무렵까지 눈과 얼음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설악산 깊은 계곡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눈과 얼음이 천불동 안부 계곡에 가득했던 산이었습니다만 이젠 세월이 바뀌면서 속초시와 그 주변들의 도시들이 팽창되면서 생태계에 많은 변화가 생겨 옛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저런 추억으로 옛 산의 정취들을 기억으로 모으다. 잠시 오르던 길을 멈추고 쉬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잠시 앉아 준비해 온 커피를 따르고 영양바와 행동식을 나누며 주변 경치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치고 올라온 너덜지대 바위돌 군락지를 보며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사실이 내포된 웃음이었습니다. 폭우의 영향으로 산사태와 함께 급류의 영향으로 지형이 바뀐 산기슭 험로를 줄곧 오르면서 고생한 등산로를 막일(노가다) 길이라 부르며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이야기했더니 동행한 악우도 긍정하면서 염회시중의 미소 같은 모습을 보여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고도를 높이기 위하여 일어선 후 트레킹화 신발끈을 조여맨 후 빙폭 옆을 살피며 오를 수 있는 샛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피켈과 아이젠과 확보용 자일만 준비되었다면 빙폭을 오르는 Ice Climbing을 즐길 수 있었지만 장비가 준비되지 않아 우회할 수 있는 루트를 찾은 것입니다. 바위틈 사이에서 자라 성목이 된 단풍나무가 보여 단풍나무까지 오른 후 바위틈을 양손과 양발을 교체해 가며 오르며 올라설 수 있는 판단이 들어 그 방향으로 접근하여 오른 후 나무까지 올라섰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상하좌우를 살피며 손과 발의 확보점을 찾고 나서 마지막 남은 약 7m 정도 바위틈을 이용 등반을 끝내고 야생화 군락지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바람에 냉기가 들어 있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야생화의 개화시기는 한 주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빛이 점점 옅어져 가자 얼음이 들어 있는 바람이 훈풍을 몰아내고 산허리로 몰려든다는 조짐이 느껴져 가파르지만 가장 짧은 하산길을 잡아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자괴감이 들어 스틱을 등반 중에 사용 허지 않을 결심으로 등반장비에서 제외시킨 지 약 3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1개월은 힘이 들었지만 그 기간이 지나자 오히려 양손이 편해지고 하중이 양 허벅지에 걸려 근육을 만들어 주니 건각이 생겨 긍정적인 건강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노년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산 후 등을 돌려 다녀온 산을 보며 자연에 깊은 애정을 느끼며 산 추녀에서 벗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