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서 모든 데이터는 디지털 신호로 다루어지며 이 데이터의 처리와 결과를 우리는 모니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지는 영상 신호를 처리하여 모니터로 보내주는 장치가 그래픽 카드(graphics card)입니다.
이 장치는 비디오 카드(video card), 비디오 어댑터(video adapter), 디스플레이 카드(display card), 그래픽 보드(graphics board), 디스플레이 어댑터(display adapter), 그래픽 어댑터(graphics adapter) 등으로도 불려집니다.
그래픽카드의 역사
최초의 비디오 카드는 1981년 IBM이 개발한 'MDA(Monochrome Display Adapter)'로서 IBM PC에서 공개되었습니다. MDA는 그래픽카드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종류의 그래픽 모드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노크롬 텍스트 모드 (PC 비디오 모드 7)만을 제공하였으며 80 열 x 25 줄의 문자열을 보여주는것 뿐이었습니다. 이는 IBM PC가 업무용의 목적으로 개발된 연유에서 그래픽에 대한 고려를 크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림 및 원색의 표현이 가능한 최초의 그래픽카드는 같은 해에 출시된 'CGA(Color Graphics Adapter)'였습니다. CGA 카드는 320 x 240, 640 x 200 해상도에 16kb의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했고 최대 16색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82년에 최대 720 x 348 해상도의 흑백 그림을 표현할 수 있는 ‘허큘리스(Hercules)’가 등장했으며, CGA보다 높은 해상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4년 IBM이 자사의 새로운 AT 컴퓨터에 소개했던 'EGA(Enhanced Graphics Adapter)'는 16색에 640 x 350 화소의 해상도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에 출시된 카드가 우리에게 익숙한 ‘VGA(Video Graphics Array)’ 카드입니다. VGA는 IBM사가 1987년 출시한 아날로그 방식의 컴퓨터 디스플레이 표준입니다. 익숙한 해상도 640 x 480에서 출발한 VGA는 출시 당시 256KB의 비디오 메모리가 장착되었으며 16색, 256색 모드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표시 가능한 해상도와 색상이 늘어난 VGA가 하나씩 등장하고, 이를 장착한 컴퓨터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이후부터 ‘VGA’는 ‘그래픽카드’와 거의 동일한 의미의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래픽카드를 VGA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일반화되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 카드의 기술발전에는 컴퓨터 게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90년대 초반의 콘솔게임의 고퀄리티의 그래픽과 1994년에 보급된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새턴의 3D 그래픽은 PC게임에서도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요청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C에서 3D 기술은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윈도우95 발매와 함께 많은 제작사에서 3D 그래픽카드를 출시하게 된 것입니다. 매트록스, S3, ATI, 크리에이티브 등의 회사가 이에 대한 개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중 주목해야 할 그래픽카드는 단연 1996년 발표된 3Dfx사의 ‘부두(Voodoo)’ 카드입니다. 이 부두 카드는 비디오 게임의 그래픽이 PC게임 그래픽보다 상위에 있다는 상식을 깨 버렸습니다. 이제 PC에서도 콘솔게임 수준의 그래픽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부두는 3D 전용 애드온 카드로써 기존 2D 그래픽카드에 추가로 장착하여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부두는 글라이드 모드(부두 전용 모드)로 640 x 480 해상도에 30프레임에 육박하는 높은 성능을 내 주었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2D 그래픽카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1997년 발매된 부두 러시, 1998년 발매된 부두 밴시에서는 2D 기능을 추가하여 단일 카드로써 동작할 수 있게 만들어 약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였습니다.
1998년 부두의 정식 후속작 부두2가 출시되었습니다. 부두2는 8MB/12MB 버전으로 나뉘었으며 단일로는 800 x 600, 카드 두 장을 연결하는 SLI 모드로는 1024 x 768 해상도를 지원해 부드러운 게임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부두2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발군의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당시 PC로 이식된 플레이스테이션의 대표작 ‘파이널 판타지7’은 오히려 부두2를 장착한 PC에서 더 뛰어난 그래픽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디오 게임보다 PC 게임의 그래픽이 더 퀄리티가 높아져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3Dfx는 2002년 10월 파산해 라이벌 사였던 엔비디아(nVidia)에 인수되었습니다('둠'의 아버지 '존 카맥'이 '부두'카드의 실패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시절 시대를 주름잡았던 부두의 자존심 SLI 모드는 현재 지포스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지포스 256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엔비디아는 3Dfx와의 합병으로 VGA 시장의 업체 중 하나에서 시장 전체를 이끌어갈 원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엔비디아의 또 다른 라이벌이었던 ATi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라데온 시리즈를 출시하지만, 이미 지포스 256의 벽은 ATi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견고해져 있었습니다.
그래픽카드 시장의 폭발적 성장의 계기에서 게임 제작사 ‘블리자드(Blizzard)’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1은 486 PC에서도 구동될 만큼 최적화가 잘 돼 있었지만, 2000년에 출시된 디아블로 2는 재수생을 삼수생으로 만들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당시 거의 모든 PC방이 VGA를 업그레이드하게 만든 '대박' 히트게임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리니지 등의 국내 온라인 게임들이 대거 출시되며 PC방이 2년여 만에 1만 개소 이상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ATi는 라데온 256을, 엔비디아는 지포스 2 GTS를 각각 출시하며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이 시기부터 두 회사에서 붙잡아 뒀던 외계인을 고문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돌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10월에 MS에서 발표되었던, 그래픽 카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DirectX’가 2000년대 초반의 그래픽 카드의 기술 개발에 영향을 크게 미쳤습니다. 다이렉트X는 게임 프로그래밍에서 MS 플랫폼에서의 작업을 위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집합으로, 3D 그래픽을 빠르게 렌더링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당시 다이렉트X 7.0에서 8.0으로 버전업되며 3D 영상표현이 폴리곤에서 쉐이더로 바뀌었고, 3D 리얼타임 아웃풋이 업그레이드 돼 화면 반응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8.0의 업그레이드와 비슷한 시기에 엔비디아는 다이렉트X 8.0을 유일하게 지원한 ‘지포스 3’를 출시해 그 명성을 이어 나갔는데, 이를 지켜보던 ATi는 다이렉트X 8.1 시기에 ‘라데온 8500’을 내놓았습니다. 라데온 8500은 지포스 3를 추월한 그래픽 성능으로 시장을 놀라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엔비디아와 ATi는 긍정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그래픽카드의 양대 산맥으로 서로 기술을 뽐내며 3D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게 됐습니다.
DirectX, OpenGL 등 다양한 그래픽 플랫폼이 마련되며 지포스와 라데온은 추월과 경쟁을 반복하며 사용자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능을 끌어올려 왔습니다.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가 출시되며 본격적인 3D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열렸고, 이에 발맞춰 두 회사의 경쟁적 향상 구도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지포스와 라데온으로 그래픽 모델을 형성하며 그래픽 카드 시장을 선도하였던 엔비디아(nVidia)와 ATI였지만, 2006년 ATI 사는 AMD에 인수되었습니다. AMD에서 2010년 ATI와 자사의 브랜드 통합을 결정하면서 ATI의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2월, 엔비디아의 GTX 타이탄이 발표되며 상용 VGA의 메모리 용량이 6GB를 넘어섰습니다. PC 게임 제작사들은 더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원하고, 게이머들은 소프트웨어를 최고의 그래픽으로 즐기기 위해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에 맞추고 있습니다. 보급형 그래픽에 맞춰 퀄리티를 조절하던 예전과는 반대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두 회사가 서로 견제하는 속에서 엔비디아의 ‘CUDA(Computer Unified Architecture) 아키텍처’ 기술과 PhysX 기술, AMD의 Eyefinity 기술 등과 같은 다양한 신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우리의 눈을 더욱 즐겁게하고 있는데 이는 긍정적 경쟁관계의 이점을 사용자가 누리게되는 고무적인 일이라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