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당일종주
산행일자 : 2008년 6월13일~6월14일 (금요무박산행)
산행날씨 :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해(한마디로 끝내줌)
산행코스 :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연하천 - 벽소령 - 세석 - 장터목 - 천왕봉 - 로터리대피소 - 중산리야영장
산행거리 및 시간 : 33.4km (10시간 10분, 새벽 03시 30분 성삼재 출발 - 13시 40분 중산리야영장 도착)
모처럼 나홀로 산행을 떠나봅니다.
1년 8개월동안 백두대간종주를 끝내고 지리산 그 장쾌한 주능선위에서 나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는 기대감에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그야말로 나만의 시간을 기대하면서...
6월13일 18시30분 조금 이른 시간에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챙겨먹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카멜백에 얼음을 넣고 물을 부어 캔맥주 2개와 함께 냉동실에서 다시 얼립니다. 냉장실을 뒤져보다 토마토 2개를 챙기고 물을 부어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야채비빕밥도 하나 배낭에 집어 넣습니다. 헤드랜턴, 모자, 썬크림, 엠피3, 디카....커피 타 먹을 뜨거운물도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 일단 준비를 다 마치고 21시 40분에 집결장소인 신사역을 향해 출발합니다.
22시 30분 신사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찾아 보니 금수관광버스가 불을 끈채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캄캄한 버스내로 들어가서 중간 조금 뒤로 자리를 잡고 엠피3 음악을 들으며 산꾼들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삼삼오오 산꾼들이 모이고 23시쯤 백곰님이 마이크를 잡고 주의사항과 잘다녀오라는 인사말을 하고 내립니다. 23시가 조금 지난 시간 버스는 24명정도를 태우고 지리산을 향해 출발 합니다. 자리가 널찍하니 좋습니다. 옆좌석에 배낭을 놓고 잠자기 편한 자세를 잡기위해 이리 저리 꿈틀거려 봅니다. 정안휴게소에 잠깐 쉬고 내리 달린 버스가 지리산온천휴게소에 정차하고 미리 식사예약을 한 9명이 그곳에서 산채비빕밥을 먹습니다. 새벽 2시반에 산채비빕밥을 먹으니 잘 안넘어 갑니다. 그래도 먹어야 지요..꼭꼭 씹어서 삼킵니다.
6월 14일 새벽 03시25분 성삼재휴게소에 드디어 도착합니다. 내려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심호흡을 해봅니다. 잠시 버스옆에서 대기하던 산꾼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3시 30분 공원사무실을 통과하여 지리산종주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04시 02분 널찍한 대로를 따라 노고단대피소를 지나 노고단에 오릅니다. 노고단의 하늘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어 지리십경 중 하나인 노고운해는 볼 수 없습니다. 평탄한 주능선을 따라 거침없이 나아가니 어느덧 임걸령. 샘물로 목을 축일까 하다 아직은 가져온 물도 충분해서 미련없이 지나칩니다.
05시 14분 삼도봉에 도착하니 어슴푸레 주위가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 일출이 시작되는 군요.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은 못 보니 오늘은 삼도봉 일출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나라도 덕을 많이 쌓아 내 후대는 언제나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지리산에서 보는 일출은 언제나 장엄합니다.
<삼도봉에서 맞이하는 일출>
떠오른 해를 마주하면서 계속 나아갑니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명선봉을 치고 오르니 숨이 턱에 찹니다. 귓속으로는 엠피3 음악소리보다 심장 박동소리가 더 크게 울립니다. 이러다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보니 어느덧 연하천대피소에 도착(06시 34분) 합니다. 성삼재를 출발하고 나서 지금껏 물만 마시고 왔군요. 뭐라도 좀 먹어야 겠습니다. 진품 모카골드 커피 한잔과 제과점 단팥빵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른 새벽 휴게소에서 먹은 산채비빕밥 덕분에 식욕이 별로 없습니다. 한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니 달리 할 것도 없습니다. 백두대간 산행할 때가 생각 나는 군요. 자리펴면 한시간은 족히 먹고 마시고 퍼질러 있다가 배가 빵빵하니 움직이기 힘들 정도 되면 마지못해 일어나서 어기적거리며 '선두 천천히 좀 갑시다'를 연발하던 그때가 벌써 그립습니다.
<연하천대피소>
연하천을 출발하고 조금 지나니 형제봉이 보입니다. 그냥 가기 서운해서 역광으로 사진 몇 컷 찍어보고 지나니 저 멀리 벽소령대피소가 푸르른 숲사이로 아스라히 보입니다. 하하 이제 절반 지난거 같습니다. 내심 흐믓해집니다. 시작이 절반이고 이미 절반을 왔으니 당일 종주의 끝이 보이는 듯 합니다.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에 호흡을 크게하여 지리산의 기운을 맘껏 들이킵니다.
< 형제봉 >
<아스라히 보이는 벽소령대피소>
07시 47분 형제봉에서 아스라히 보이던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합니다. 해는 한층 더 높이 떠오르고 잠시 앉아 화장을 합니다. 어차피 타서 까만 피부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태우기위해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릅니다. 옆에서도 저를 보고 갑자기 생각 났다는 듯 따라 바릅니다. 몇년전 친구와 단둘이 지리산종주를 시도하였는데 오전내내 비를 맞고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왔다가 여기서 통제하는 바람에 더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음정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납니다. 온몸은 비에 젖고 등산화는 빗물로 가득찬데다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겁기 이를데 없었던... 그러고 보니 오늘은 복받은 날이군요. 날씨가 이리 좋아 썬크림을 바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벽소령 대피소>
몸단장을 다시하고 벽소령을 뒤로 한채 출발... 잠시 후 선비샘(08시 27분)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는 선배랑 둘이 와서 침낭하나와 깔판하나씩 가지고 비박을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일찍 자리를 펴고 식사를 한다음 쫌 떨어진 옆쪽 텐트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를 하염없이 맡으면서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즐겁고도 안타까왔던 기억이... 잠시 샘물을 보다 물한모금 먹고 맹렬히 나아갑니다. 칠선봉과 영신봉을 힘차게 오르니 온 몸에 땀이 가득합니다. 또 저멀리 세석평전에 그림같은 세석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기를 들려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얼려온 캔맥주와 신촌에서 사온 김밥이 생각납니다. 상하기 전에 먹어 치워야 겠다는 생각에 일단 들리기로 합니다.
09시 33분 성삼재를 출발한지 6시간이 지나서 세석산장에 도착합니다. 별로 먹지도 않고 말벗도 없으니 빨리 진행해 온 듯합니다. 가고 싶을때 가고 쉬고 싶을때 쉬고 자유로운 산행을 만끽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는 쉬지 않고 가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 맥주 한잔 하면서 쉬어 볼려고 합니다. 감로수 같은 시원한 맥주에 온 몸이 전율합니다. 캬~~ 이 맛을 느끼고자 맥주를 얼려서 들고 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맥주 한캔을 비우면서 김밥 한줄을 먹습니다.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습니다.
<세석대피소>
20여분의 휴식을 마치고 천왕봉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맥주 한잔하니 기분도 좋습니다. 지리산을 품에 안고 걸어가는 이 순간...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주능선을 휘감고 지나 갑니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몸도 따라 힘들어 지는데 마음은 상쾌하고 더욱 가벼워 집니다. 천왕봉이 더욱 가까와 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10시 47분 촛대봉 연하봉을 지나 천왕봉 턱밑에 도착합니다. 장터목대피소에 산객들이 제법 많이 모여있습니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목이라 왁자지껄합니다. 여기서는 달달한게 먹고 싶어 슈크림빵을 하나 먹습니다. 참으로 맛있습니다. 슈크림빵을 두개 살껄 종류별로 하나씩만 사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남은 먹거리는 캔맥주 하나, 김밥 한줄, 토마토 2개, 빵 2개, 쵸코바 2개, 얼음물...아직 많이 남아 있군요. 천왕봉 정상에서 정상주로 캔맥주 한잔에 토마토 하나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장터목대피소>
11시 09분 제석봉 고사목군락지에 도달합니다. 여기 저기 고사목과 어울러진 풍경이 발걸음을 잡습니다. 사진 좀 찍어야 겠군요. 마침 묘령의 아가씨가 배낭도 없이 전망대로 올라 옵니다. 사진 한장 부탁하니 흔쾌히 두장 찍어 줍니다. 가로한장 세로한장...기분이 좋습니다. 곧이어 천왕봉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에 다다릅니다. 하늘로 이어진다는 이 문을 지나면 저도 하늘로 가는 걸 까요? 아직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할일이 아직도 무지무지하게 남아 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할일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가는 기분만 만끽하고자 통천문을 지나서 세상을 다시 바라봅니다. 지리산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 오는 군요.
<제석봉과 통천문>
11시 36분 그토록 가고자 목말라 했던 천왕봉에 오릅니다. 8시간여 만에 천왕봉에 오르니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라는 정상석 뒷면이 먼저 보이고 앞으로 가니 '지리산 천왕봉'이 음각된 큰 글자가 보입니다. 지리산은 여러번 왔지만 천왕봉에 오르기는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사방천지를 둘러 보니 세상이 다 내 눈아래 있습니다. 좁쌀만 했던 호연지기가 내가슴을 가득 메우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 같습니다. 여기서 정상주 한잔 빠지면 안되지요. 하나 남은 캔맥주를 꺼내들고 나 혼자 건배 합니다. 나홀로 산행하니 이게 아쉽군요. 함께 축하하면서 마셔줄 산우님이 안계시니... 그래도 시원하게 들이킵니다. 으흐흐... 맥주 한캔을 두모금에 마셔 버립니다. 아! 이렇게 좋을 수 가 있나요.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청량한 기운에 온몸이 찌르르 화답합니다. 마음은 목적지에 도달하니 평온하고 눈은 지리산의 절경을 내려보니 즐겁고... 토마토 하나를 베어 무니 입안도 향긋합니다.
<천왕봉>
이제는 하산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대원사 쪽으로 가고 싶은데 산악회 버스가 중산리에서 기다린다니 그 쪽으로 내려 가야 겠지요. 중산리 쪽 하산은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거리로는 제일 짧은데 경사가 만만치 않은 듯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없이 내리막입니다. 너덜지대와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하산길은 무릎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망치로 무릎부위를 찍어 대는 거 같습니다. 고도 1915m 천왕봉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군요. 거의 850 m 까지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계곡도 한참을 내려 가야 있습니다. 하아....앞으로 이길로는 안내려 와야 겠습니다.
천왕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개선문이 있습니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았나 봅니다.
12시 35분 법계사를 바로 지나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합니다. 다른 대피소는 전부 장터목, 세석, 벽소령, 노고단...이런 좋은 이름를 가지고 있는데 왜 여기만 유독 로타리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아시는 지요... 사진 한장 찍을려고 대피소 앞쪽으로 가니 뒤쪽 화장실에서 냄새가 많이 납니다. 한컷 찍고 잽싸게 돌아 내려갑니다.
<로타리대피소>
13시 40분 드디어 한없이 이어질 거 같은 하산길도 그 끝이 보입니다. 천황봉에서 11시 50분 쯤 출발했으니 1시간 50분 정도 걸어 내려 왔군요. 지리산 당일 종주의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언제 다시 이길을 걸어 볼까요... 다음 기회에는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쉬움을 접어 봅니다.
<중산리 공단사무실>
중산리야영장에 도착하니 주차장 옆에 식당들이 쭉 들어서 있습니다. 한군데 자리잡고 막걸리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맥주한병과 파전하나를 시키고 신발끈을 풀어 느슨하게 합니다. 그리고 남은 김밥 한줄을 마저 처리하기 위해 꺼내서 같이 먹습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면서 주차장에 대형버스들이 안보이길래 주인장한테 물어봅니다. 버스 주차장은 저 밑에 있다는 군요. 시원한 맥주와 그런대로 맛있는 김밥 그리고 진짜 맛없는 파전을 몇점 집어 먹고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여기서도 한참을 내려가네요. 신발끈을 괜히 느슨하게 했다는 후회가 옵니다. 내리막 포장길에 발가락이 밀려서 아파옵니다. 그래도 끈을 다시 매기는 귀찮아서 참고 내려갑니다.
14시 30분 대형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찾아 보니 문이 닫혀 있습니다. 주변에 발이라도 담글 곳이 있나 찾아보니 저 멀리 다리 밑에 계곡물이 시원해 보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옹색하여 샛길로 조그맣게 잘 찾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평편하고 널찍한 바위를 찾아 배낭과 신발을 벗어 놓고 아직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가 쌓인 피로를 풉니다. 아직 남아있는 뜨거운물로 커피한잔을 마신후 바위위에 드러누워 손수건을 얼굴에 가리고 낮잠을 청합니다.
따가운 햇살이 손수건을 뚫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꿋꿋하게 잠을 청해 봅니다만 한시간을 못 견디고 일어납니다. 다시 찬 계곡물에 손발을 적시고는 버스 주차장으로 돌아가보니 아직도 버스는 잠겨 있습니다. 하릴 없이 나무 그늘아래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고 17시 쯤 마침내 버스 문이 열립니다. 배낭을 내려 놓고 버스기사님과 얘기 하다보니 출발할려면 아직도 한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는 모양입니다. 아에 저녁을 먹어야 겠군요.
18시 20분 드디어 일행들이 다 내려오고 버스는 출발합니다. 지리산이 멀어집니다. 내 가슴 가득 호흡하고 품었던 지리산이 아득히 멀어집니다. 언제 다시 올까요...그때를 다시 기약하며 이렇게 지리산 종주의 시간이 지나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