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죽창가
작사- 김남주, 작곡- 김경주, 편곡- 권오준. / 역사 바로 알기. 동학혁명.
YouTube에서 '죽창가(김남주 시. 김경주 곡/백현주 편곡)' 보기 - 민중 가요 청취하기
https://youtu.be/eGVCzB_YmnM?si=yv8KIdboFvCE9oBx - 링크 허용중 참고.
( 가사 )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질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꽃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꽃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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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에서 '“우린 갑오년에 이미 보았어” 최무성이 본 ‘인즉천 세상’ 《Nokdu Flowert》 녹두꽃 EP24 / - 녹두꽃 일부 동영상
https://youtu.be/J8T7d4xL7RU?si=eFvOc_fJq2y-xZCL
링크 허용중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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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가는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습니다. 노래의 가사에는 “죽창을 들자”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는 국민들에게 강력한 저항 의지를 심어주는 메시지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죽창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강조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죽창가가 역사적 맥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감정에 맞춰 왜곡할 위험도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정치적 이슈와 결부시키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해석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미래 세대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노래’라는 시를 개사하여 가사로 삼아 김경주가 작곡하고 가수 안치환이 부른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노래는 ‘죽창가’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전남 해안가가 고향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894년에 태어나신 나의 외할머니께서 ‘난리’라고 할 때,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으면 ‘동학 난리 때’라고 보충 설명을 해 주셨다. 외할머니의 말을 옮기신 어머니의 말씀으로 사람들이 죽창 들고 ‘나섰다’고 하셨다. ‘가슴에 꽂히는’이란 가사가 죽창가에 있는데 그런 살상의 결과를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는 모른다. 우금치 전투에서 보듯 일본군 200명 정도에 조선군 수백 명의 천 명이 되지 않는 총칼로 무장한 군사들에게 죽창 들고 나선 이들 수만 명이 몰살을 당했다.
없는 자들이 드는 저항의 상징이 죽창이었다. 죽창가를 언급한 것이 가장 폭력적이라고 했던 이는 죽창을 살상의 무기로 본 것 같다. 죽창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건은 이차대전 때의 일본을 기술한 책에서 보았다. 실전 훈련이나 담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하급 병사나 징발된 민간인들에게 중국인이나 미군 포로를 죽창으로 찌르게 시켰다고 한다. 가슴 아프고 비슷한 얘기를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다. 외할머니와 달리 어머니께서 ‘난리’라고 말씀하시던 바로 1948년 여순사건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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