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순종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
(왕하14:1~12)
왕하14:1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드 아마샤가 왕이 되니
2Ki14:1 In the second year of Joash son of Jehoahaz king of Israel reigned Amaziah the son of Joash king of Judah.
왕하14: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Ki14:2 He was twenty and five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reigned twenty and nine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Jehoaddan of Jerusalem.
왕하14: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2Ki14:3 And he did that which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yet not like David his father: he did according to all things as Joash his father did.
왕하14: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2Ki14:4 Howbeit the high places were not taten away: as yet the people did sacrifice and burnt incense on the high places.
왕하14:5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2Ki14:5 And it came to pass, as soon as the kingdom was confirmed in his hand, that he slew his servants which had slain the king his father.
왕하14: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2Ki14:6 But the children of the murderers he slew not: according unto that which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erein the LORD commanded, saying, The fathers shall not be put to death for the children, nor the children be put to death for the fathers; but every man shall be put to death for his own sin.
왕하14: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2Ki14:7 He slew of Edom in the valley of salt ten thousand, and took Selah by war, and called the name of it Joktheel unto this day. Selah: or, the rock
왕하14: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2Ki14:8 Then Amaziah sent messengers to Jehoash, the son of Jehoahaz son of Jehu, king of Israel, saying, Come, let us look one another in the face.
왕하14:9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2Ki14:9 And Jehoash the king of Israel sent to Amaziah king of Judah, saying, The thistle that was in Lebanon sent to the cedar that was in Lebanon, saying, Give thy daughter to my son to wife: and there passed by a wild beast that was in Levanon, and trode down the thistle.
왕하14: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Ki14:10 Thou hast indeed smitten Edom, and thine heart hath lifted thee up: glory of this, and tarry at home: for why shouldest thou meddle to thy hurt, that thou shouldest fall, even thou, and Judah with thee? at home: Heb. at thy house
왕하14: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Ki14:11 But Amaziah would not hear. Therefore Jehoash king of Israel went up; and he and Amaziah king of Judah looked one another in the face at Bethshemesh, which belongeth to Judah.
왕하14: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Ki14:12 And Judah was put to the worse before Israel; and they fled every man to their tents. put...: Heb. smitten
일부만이 아닌 전적인 순종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일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삶속에 일어나고 있는 생활의 연속성에서 온전하게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긍휼과 크신 은총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연약한 모든 모습들이 새로워 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의 힘은 오직 주님이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아직도 부패한 사람들이 펼쳐서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며 터전을 삶아 살아가는 곳인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곳을 우리가 지나갈 때 우리의 연약함이나 우리의 모든 기능으로는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은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지혜와 진리된 길을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또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는 보여지는 여러 가지의 길 속에서 유익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길이지만 믿음의 걸음 믿음의 눈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는 차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열매로 나타는 것이고 그것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겉포장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값을 지불하고 나중에서야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너무도 유명하여 인정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완전한 것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안전하신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무궁하심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찾아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로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잠듬이 좋은 것같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을 많이 자는 것에는 우리는 오히려 잘 크는구나 안도하며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하루에 3~4시간 정도 자는 사람들의 습관에 대한 좋은 정보를 주면 생활의 열심을 추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내용들을 볼 수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지런한 것이 좋은 점이 많이 있기는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잠이 어떨 땐 상황을 정리되게 할 때도 잠잠히 하여 자신을 낮추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을 느끼게도 합니다.
또한 여러가지로 시끄럽고 주변상황이 너무 엉망이 될 때는 모든 시간을 끄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을 느껴지게 됩니다.
또 오늘 처럼 비가 내려서 우리의 활동을 더디고 조금은 느리게 만드는 만들어 주는 시간을 통해 시원하고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좋은 날인것 같습니다.
우리는 외부에 크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너무도 큰 외부의 흔들림에는 마음까지 가까이 가는 것들을 알 수있는데 조금 작게 오는 외부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죠 하지만 간혹 상상보다 큰 위력앞에는 스스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때도 있을 때 예수님께서 파도가 치는 물결위를 걸어오실 때 사람의 한계를 넘어 두려울 수 밖에는 없는 외부의 환경을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조용하게 잠잠하라 명하실 때 그들이 잠잠하여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의 삶의 여러곳에서 기적과 이적들을 베푸신 능력에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심에 감사와 영광이 주님으로 충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