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청계산 청계한 산행
다시 새해 아침이 밝았다. 올해도 새해 첫날 청계산 해맞이 산행에 참가하려고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깜깜한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는 괴로운 느낌에다 약속한 장소에 시간에 맞춰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도 하게 되었다. 산행을 오래 하는 것이 아니니 크게 준비할 것 없지만 추위에 견딜 복장 신경을 쓰고 챙겨갈 것 등을 새삼 의식하다보니 마음이 더 바쁘게 되었다.
집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나가는 길이 아직 깜깜했다. 그런데 예보를 듣고 예상한만큼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몇일전 일기예보에서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고 했었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다 시계를 보니 차만 제대로 만나면 늦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15분을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아서 시간이 갈수록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어젯밤 해가 바뀌는 순간 재야의 종 행사에 모인 사람들이나 나나 모두 일상 시간의 흐름과 다른 느낌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비록 일상 시간의 연속일뿐이라는 것을 자각할망정 약간이나마 새해에 설레임이라는 것을 내 안에 지니고 있고 그런 몽롱함 같은 기분으로 희망의 시간을 품고 있던 차였지만, 지하철에서 조바심하며 전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금새 그런 환상이 깨져나가는 듯 했다.
양재역에서 원터골행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 도로에도 길게 행령을 이룬 차량으로 정체되었고 다시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차에 탄 다른 손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화를 걸어 늦는 사정을 전하며 먼저 올라가라고 하지만 상대방에서 모두 기다리겠다고 한 듯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통화를 끝냈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여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원터골에 다 왔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니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 해병대 복장을 하고 봉사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가끔 보게 되는 그 모습에서 변하지 않은 그들만의 의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 밑에 비닐을 쳐서 비닐하우스를 만든 곳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어디서 회원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들어서는데 바로 입구에 모여 있던 분들이 먼저 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새해 아침에 만난 첫 인사를 반갑게 나누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몇 분의 일행을 더 기다렸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그 주변에서는 그 주변 상가 회원들이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떡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받는 떡국 값은 모두 불우이웃을 돕는 성금으로 쓴다고 했다. 추운 아침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졌다. 오기로 한 회원이 모두 도착하자 6시 50분 산행을 시작했다. 거기서 해맞이 장소인 헬기장까지는 2km 정도인데 길이 좋아서 시간은 40분 정도 소요되어 예고된 7시 45분 일출 시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계산 해맞이 산행은 재작년부터 연이어 세 번째 참가하였다. 그래서 올라가는 입구의 가로 풍경이나 길이 익숙해져 있었다. 오름길 초입에서는 등산 용품을 취급하는 회사 직원들이 나와 뜨거운 차를 권하고 또 아침을 먹지 않고 나온 사람들을 위해 낱개로 포장한 백설기도 나누어 주었다. 그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다리고 나누어주는 모습이 새해 첫 산행의 발길을 축복의 분위기로 느껴지게 하였다. 상점 거리를 지나 어둠길로 접어들었다. 올라가는 코스를 매번 같고 많은 사람이 함께 이동해서 랜턴을 켜지 않아도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르는 거리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 대신 새벽에 산을 오른다는 특별한 느낌은 덜 느껴지게 되었다.
지지난 첫 해는 한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의 감각과 겨울의 표정이 어떤지 그리고 겨울이 지나 계절이 변하는 동안 흐르는 세월의 의미 등을 생각하며 걸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야간 산행을 많이 했고 행사의 의미도 있어 상대적으로 밤에 대한 생소함이 덜해지고 산의 새로움이나 산의 느낌에 촉각이 더 곤두서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대신 한가한 마음으로 주변에 함께 걷는 김영수 회장, 조병섭 건축사 등의 일행과 대화를 하며 걷게 되었다.
잠시후부터 동이 터서 산의 윤곽, 그리고 주변의 도시 풍경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느린 산길을 올라 완만하게 가로 놓인 산의 능선에 접어들어 좌측으로 오르다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그리고 약간 내리막 길에 놓인 정자 앞을 지나니 헬기장 가까이 길게 놓인 계단이 앞에 보였다. 김영수 회장이 계단을 피해 좌측으로 돌아갈까 하니 조병섭 건축사가 “청계산은 계단길인데요... 천개의 계단을 오른다 해서 이름이 청계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실제 청계산은 그 보다 많은 나무 계단이 놓여 있고 기증자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곳도 있다.
김회장이 계단길을 택해 함께 걸어 올랐다. 그 오른 정상부 능선 길에 다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합류되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좁은 길로 이동하느라 이동이 더 느릿해졌다. 잠시 후 해맞이 행사를 하는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서도 다른 등산 용품을 취급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따뜻한 차를 나눠주고 있었다.
차를 한잔 마시고 무의식적으로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미 그 곳에는 나무 울타리에 기대 몇 겹으로 사람들이 둘러 서 있어서 해 뜨는 방향의 산세를 뚜렷이 볼 수 없었다. 해가 뜬 방향으로 인의 장막이 쳐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시야가 언 듯 트이는 자리에 서게 되어 큰 발 디디고 해뜨기를 고대하며 바라보았다. 올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담은 풍선을 들고 있었다. 프랫카드가 결려 있는 작은 임시 단상으로 오른 사회자가 이런저런 말을 하며 분위기를 돋구웠다. 그리고 잠시 후 서초 구청정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며 “잘 될 겁니다.” 하는 희망 섞인 인사말을 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은 아까부터 붉으스레 물들어 있고 주변도 제법 밝아져 있었다. 그 밝기로 보면 해가 이미 떠올라 잇는 것이 아닐까 의아함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날씨가 맑아 해가 떠오를 산능성이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누군가 농담을 흘리듯 해가 뜨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 대신 웅성거림이 일었다. 뒤에서는 “어디, 정말이야? 하며 앞으로 밀치는 힘을 가했다.
곧 여러 사람이 해가 떴다고 하는 말이 사실인 듯 하여 유심히 보았으나 보이지가 않는데, 옆 사람들이 좀더 우측을 보라고 하여 따라 보니 과연 손톱 끝만큼 붉은 띠가 올라온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봄에 새 순이 자라 듯 느리게 붉은 해가 점차 커져 보이고 있었다. 마치 대지가 출산을 하듯 온 몸에 힘을 주어 조금씩 세상에 나오듯이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어떤 숭고함에 사로잡힌 듯 웅성거림을 멈추고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는 대신 그 모습이 감격에 겨운 듯 무의식적으로 손에 쥔 풍선들을 날려 보냈다. 하늘로 날아오른 무수한 풍선이 다시 새해 아침의 색다른 풍경을 이루어냈다. 풍선을 날린 사람들은 마음보다 더 빨리 자신들의 소망을 해로 다가가게 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 풍선들은 나름대로 가지런하게 모여 해가 뜨는 쪽으로 높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 사이 해가 좀더 솟아 올라 그 신비로운 느낌도 더 크게 느껴졌다.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빛깔이 되게 빨갛다고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뒤에 선 젊은 여자분은 해가 참 예쁘다고 했다. 사실 해는 무한히 먼 곳에 항시 존재해 있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 보는 해가 떠오를 때는 너르게 첩첩이 펼쳐진 산세에서 울컥 토해 낸 불덩어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구름에 기리거나 비가오거나 해는 매일 매일 떠오른다. 그리고 맑은 날에는 그 빛이 온 세상 모든 곳을 밝게 비출 만큼 위력을 갖고 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엄청난 햇살이 산란되어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고 그 존재감도 느껴지기 어렵다. 하지만 대지에 맞닿아 있는 듯한 순간까지는 살아있는 생명체, 정기의 덩어리 같아보였다. 오늘은 날이 맑아서 특히 정기 어린 해돋이 장면을 대하게 되었다.
작년에도 선명한 해를 보는 행운을 누렸었다. 그 때 스케치한 것을 당시 와병중이던 이청준 선생님께 그 기운을 얻고 나으시라고 보내 드렸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늘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잠시 후 해가 산 능선 위로 빠져 나오듯 솟구쳐 올라 온전한 형체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을 하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 신비로운 보습을 산란하기 전 이미지로 간작하고 싶었다. 다시 일행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특별히 서로에게 새해 덕담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무 울타리 사이에 열린 계단 길로 내려섰다. 그 아래서는 다른 일행이 돗자리를 펴고 제수를 차려 제를 올리고 있었다. 뒤에서 김의중 서초건축사 등산회 회장이 잠시 멈추라고 해서 길 좌측으로 들어가 안삼주를 조금씩 나누어 건배를 하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비스듬한 산기슭 길이어서 자연스런 풍취가 더 느껴졌다. 그리고 햇살이 밝게 비추어 겨울 풍경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올라오던 길로 접어들어 다시 굴다리에 모였다. 그 곳에는 산에서 내려온 많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떡국을 먹고 있어서 빈 자리가 없었다. 일행은 할 수 없이 빈 공간에 자리를 잡고 몇 명이 길게 늘어선 줄을 서 떡국과 파전, 두부, 막걸리 등을 사가지고 일행과 둘러 앉아 건배를 하며 즐거운 아침 식사를 했다. 추위에 아침 일찍 나서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부지런하게 움직여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고 난 것이 흐뭇하게 느껴졌다.
090101 김석환
첫댓글 김석환 건축사님 참 부지런 하십니다. 저는 멀리 못가고 불암산에서 해맞이를 했습니다. 새해 첫날 불끈 솟아오른 태양 처럼 올 한 해 열정적이고 희망찬 마음으로 힘차게 시작하십시다. 늘 고맙습니다.
이종호 회장님,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시고 회를 사랑하셔서 늘 활기차고 즐거운 산행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