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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그만 좋아져라.'라고 기원하는 제품이 있다면 스피커가 달린 야외용 MP3 장치이다. 배낭에 달고 다닐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도 생기고 스피커의 음량과 저장 메모리 용량이 날로 향상되니 매우 걱정이다. 새벽 산행할 때 고요함 속에 잎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신비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계곡의 물소리,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역시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소리다. 이때 무도회장에서 들릴 법한 음악[묘하게 장르는 거의 유사하다.] 소리는 산행의 여유로움을 방해한다. 소리가 거슬린다고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 빠르게 추월해가거나 한참을 휴식하여 간격을 벌려 놓기 일쑤다. 본인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냐고 이해하려 하지만 정도가 과하면 취향을 강요하는 수준이 아닌가 의심된다.
앞의 행동은 귀를 피곤하게 한다면 코를 피곤하게 하는 행동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토고납신(吐故納新)이라고 하여 깊은 곳에 존재하는 노폐물을 뱉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는 글귀가 있다. 산행할 때 가쁜 호흡을 이용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뱉어내고 싱그러운 산 공기를 받아들이려는 순간, 짙은 분 냄새는 구역질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분 냄새도 역겨운데 개중에 화장품을 넘어 향수까지 뿌리고 오는 이들이 있으니 그 심산을 이해하기 어렵다. 화장을 곱게 하고 오는 이유도 이해가 안 가는데 향수 사용이라니. 중년 여성들이 단체로 산행 할 때는 그 향이 혼합되어 백화점 1층에 들어설 때와 같은 냄새가 난다. 이런 단체 산행 그룹을 산 입구에서 서너 차례 빠르게 추월하고는 정상 조금 못 미쳐 산행을 포기할 뻔한 일도 있었다. 초반 무리가 그 원인이었다. 남성의 경우는 짙은 향의 스킨로션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산행 악취 신공의 남녀 성비를 조화롭게 맞추고 있다.
술은 나쁘지 않다. 한데 정상에서의 만취는 사고를 부른다. 맑은 정신에도 사고가 나기 쉬운 곳이 산이다. 중앙일보 2014년 9월 27일 자 기사에 의하면 10년간 북한산 백운대 인근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85명으로 같은 기간 동안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셰르파를 포함한 등반객 사망사고(80명)를 앞지르는 수치이다. '킬러 마운틴'이라는 오명이 붙기도 한 험한 산이 북한산인 것이다. 장비를 갖춘 10년 경력 이상의 프로들도 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음주하고 능선을 위태롭게 오르는 호기는 객기일 뿐이다.
가지 말라는 곳엔 가지 말아야 한다. 능선에 장비 없이 가지 말라면 음주 여부와 관계없이 가지 말아야 한다. 뉴스에서 보듯 구급 헬기를 이용해 구조되는 상당수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위험구간 외에도 산길 보호를 위해 입산금지표시와 함께 밧줄로 막아 놓은 샛길을 가랑이를 한껏 벌려 넘어가면서 '이 길은 사람이 없어서 좋아'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출입하지 말라고 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을, 좋아라고 그쪽으로 넘어다니는 치기는 점심시간에 담넘기 좋은 지점[담 너머에 트럭이 항시 주차되어 있어 발판 노릇을 한단다]을 안다는 중학생과 비슷하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배려'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폰이 안전상 위험하다면 귀에 들릴 듯 말듯 음량을 줄이고, 기초화장이 필요하다면 무 향취의 화장품을 사용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음악을 크게 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 더 나쁜지, 남의 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여 개인트레이너를 고용하고 시설을 만들어 실내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더 나쁜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한진우 인산한의원 원장, 허핑턴포스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