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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원 입법계품 (211)
지난 한달 또 병원에 간다고 쉬고 12월 공부가 시작됐는데 상당히 오래 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침 오늘은 문수원 회원들도 그전보다 많이 불어난 것 같고. 또 서울서도 오셨고 대구서도 오셨고. 뭐, 창원 진주 이렇게··· 마산. 늘 오시는 분들이 숫자는 얼마 안 되더라도 전국에서 많이 오시고 그렇습니다. 또 밀양서도 오셨네··· 그래도 귀한 강의라고 이해하시고 이렇게 와서 들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문수원도 근래 부처님 법을 좀 열심히, 좀 활발하게 전하려고 마음을 먹고. 법공양 운동도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치되어 있는 경전이라든지 일반 신도들이 읽을만한 게 종류가 불과, 한두 가지에 불과하지마는. 앞으로 계속 필요한 것을 인쇄를 해서 많이 보급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하고 인연되신 분들, 특히 문수원에서 인연되거나 아니면 여여선당에서 인연되시거나, 그다음에 염화실 인터넷 전법도량에서 인연이 되거나 하는 분들은. 되도록이며는 혼자 공부하고 마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 법을 널리 전하는 생각을, 좀 많이 해주십사하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 강의하는 중에 간간이 그런 말씀도 드리기도 하고. 또 부처님 가르침 속에 법이 소중하고. 또 소중한 만치, 그만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큰 공덕이 되고 참으로 사람으로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이 경전 속에서, 강의 속에서 많이 있어서 다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서도 또 제가 부탁을 많이 드리고 그런 문제에 있어서 깊이 이해해 주십사··· 하는 마음입니다.
근래에 몇 년 동안에 제가 모시고 선방 생활을 하거나 강원 생활을 하거나 한 큰 스님들도 많이 열반에 드셨고. 몇 년 동안 그래요. 그전에는 전에는 십년, 이렇게 가서 큰 스님 한 분 가시는 걸로 이렇게 기억이 나는데. 근래에 와서는 한 해 몇 분 씩 그렇게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어서 더 이제, 급한 생각이 들고, 또 저도 이제 나이 들다 보니까 제 도반도 한분, 두 분 자꾸 이제 가고. 그렇게 되니까 더 급한 생각이 나고. 이게 뜻있는 일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데. 이걸 좀 더 열심히 좀더 왕성하게 그렇게 해야 죽은 뒤에도 후회가 없겠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힘닿는 대로 크-게 하지는 못하지마는 힘닿는 데까지 법공양 운동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문수원에 오신 분들은 인연 닿는 데마다 여기 비치된 책들을 자꾸 가지고 가 가지고 나눠 주세요. 비록 관음예문 같은 작-은 책자고,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작은 책자이지마는, 그거 하나를. 예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이 우리가 음식 한 끼를 배고픈 사람에게 공양 올리는 것하고 비교를 한 번 해서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저는 그걸 가끔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하고. 부처님 말씀을 한 그릇 대접하는 것하고 이게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겠나··· 이런 것을 스스로 가만히 헤아려 보며는 이게 비교가 아예 될 일이 아니거든요. 그와 같이 값지고 소중한 것을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이니까, 뭐, 따로 돈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비치돼 있는 경전만 가지고 가서 공양 올려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거든요. 여러분들은 심부름만 하는 일입니다, 심부름만. 심부름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가서 주면 고맙다는 소리 듣고. 또 주는 사람은 주는 대로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잖습니까. 그러니까 일부러 천하게 그렇게 굴릴 것은 아니로되, 인연 닿는 대로 그렇게 널리 법공양 올리는 일을 해 주십사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모두 절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불교에 처음 입문하신 분들도 아니고. 모두 익숙하고 이제는 다- 전문가의 입장, 프로의 입장이 거의 됐거든요? 대승불교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뭐, 출가승이다 재가불자다 하는 이런 분별이 없습니다. 그런 분별이 일찍이 하기로 했으면 그게 뭐, 사람사람이 다- 불성이 있어서 부처가 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어찌 할 수가 있습니까. 대승불교 정신이란 바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불성을 가진 부처님 존재라고 하는 사실에 밑바탕을 두고 사람을 깨우치기 때문에, 그래서 승속을 따로 분별한다든지, 남녀를 분별한다든지 노소를 분별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예,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있어서도 안 되고요.
인간의 본성이 본래로, 그런 차별이 없는 아주 위대한 것을 부처님이 발견하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그래서 그런 대승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불교를 공부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전법활동을 열심히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마침 달력. 문수원, 염화실, 또 일지경. 염화실이라고 하는 신문. 이런 것들, 다 소개해서 달력도 조그마하게 활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마침 나왔으니까 필요한 만치 가져가서 또 나눠 드리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3) 深證懸同(심증현동)
오늘은 화엄경 349쪽 3. 심증현동(深證懸同)이라고 하는 제목부터 공부할 차롑니다. 이것은 화엄경 전체, 앞에 보이듯이 73권에 해당되고 입법계품으로서는 14권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또 선지식으로. 53선지식으로 보자며는 서른 아홉 번째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大願精進力救護 主夜神). 법으로 배대 하자면 제8 부동지(不動地) 선지식에 해당되는, 선지식입니다. 대원정진력구호. 얼마나 근사한 이름입니까. 큰-- 원력으로 앞으로앞으로 나아가는 정진의 힘으로 이 세상을 주관하는. 밤을 주관한다, 그렇게 돼 있죠, 주야(主夜)니까. 밤을 맡은 신이다, 이름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증거가 뭡니까. 열심히 활동하고 베풀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씩씩하고 힘차게 사는 것. 그게 불교의 정진이죠. 또 그게 꿈이고. 불교적 용어로 말하면 원력이고 서원이고 발원이고 축원이고 그렇습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 이게 이제 불교에서 많은 배울 점 중에 우리가 참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서 내 삶의 거울로 삼아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앞에서 지난 시간에 열 가지 마음을 낸다, 선지식에게서 열 가지 마음을 낸다[於善知識에 生十種心하니],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선지식이란 뭐냐. 선지식은 멀리는 부처님이요 보살들이요 조사스님들이요 이웃이요 도반이요 내 자식이요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형제자매요··· 나에게 인연 닿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이 따지고 보면 전부 선지식이다···, 이런 말씀도 드렸습니다. 선지식에 대해서 열 가지, 아주 훌륭하고 수승한 마음을 내고.
發是心已에
발시심이
이러한 마음을 내고 나서.
得彼夜神과 與諸普薩의 佛刹微塵數同行하니
득피야신 여제보살 불찰미진수동행
저 야신이.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이. 여러 보살들. 그 여러 보살들은 얼마나 많은 보살인고 하며는. 불찰미진수(佛刹微塵數)와 같은, 그런 많고 많은 보살들. 우리 모두도 이 속에 다 포함됩니다. 그런 보살들로 더불어 동행한다, 그랬어요. 동행하는데 이른바. 무엇들로 동행하는고 하니. 여기 동행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여-러 가지를 이제 동행하지요.
所謂同念이니
소위동념
소위 생각을 같이한다, 이거야. 생각을. 생각이 같아야 돼요. 무슨 생각이 같은가.
心常憶念十方三世一切佛故며
심상억념시방삼세일체불고
마음으로 항상 기억한다. 마음에 항상 기억한다. 무엇을? 시방삼세 일체부처님을. 마음으로 항상 기억한다, 이 말이라. 이게 대원정진력구호라고 하는 주야신이 수없는 불찰미진수보살들로 더불어 함께 시방삼세 일체부처님을 늘 같이 생각한다.
同慧니
동혜
그 다음에 지혜가 같다, 이거야. 이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이 수많은 보살들로 더불어 지혜가 같은데.
分別決了一切法海差別門故며
분별결료일체법해차별문고
지혜가. 우리도 이런 지혜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이런 지혜를 내 살림살이로 만들어야겠죠. 분별결료(分別決了)한다, 이랬어요. 이건 이제 잘- 이해하고 해석하고 분석하고, 해 내는, 그런 일을 하는데. 그 대상은 뭔고 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이야. 또 세상의 이치야. 또 인생의 이치야. 그게 일체법햅[一切法海]니다. 인생의 이치가, 또 세상의 이치가 어디 한 가지 뿐이겠습니까. 단순하지 않거든요, 얼마나 복잡합니까. 시대시대에 따라서·사람사람 따라서·상황상황 따라서 얼마나 복잡합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가지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그런 어떤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고 그것을 남에게 전하려고 하며는 참- 답답해요. 사실 알고 보면 그 속속들이 그 깊은 내막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모릅니다. 본인 밖에 몰라요. 아-무리 옆에, 이웃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속속들이 사정이 어떻게 돼서 그 집에 그런 일이 있었는가···, 재판이 붙었는가,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이런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몰라요, 본인밖에 모릅니다, 당사자 밖에 몰라요. 당사자도 다 모를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 모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지혜가 뛰어나며는. 지혜가 출중하며는 분별결료(分別決了)한다. 다- 분별하고 이해하고 분석해서 환-하게 이해한다, 그런 의미도 됩니다. 그런데 이건 뭐,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상의 문제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세상의 이치·세상의 도리·부처님의 가르침의 이치··· 얼마나 많고 많은 중생들. 그 많고 많은 중생들의 많고 많은 번뇌병. 그런 번뇌병에 따라서 처방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약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지혜가 뛰어남으로 해서 그런 가르침을 환-히, 다 이해한다, 그랬어요.
同趣니
동취
그 다음에 동취(同趣)라, 그랬습니다. 나아가는 것이 같다. 이건 나아가는 것이 같다하는 것은 하는 일이 같다, 이런 뜻도 됩니다.
能轉一切諸佛如來妙法輪故며
능전일체제불여래묘법륜고
능전(能轉)한다, 그랬어요. 능히 굴린다. 바퀴를 굴린다·차를 굴린다·또 목탁이면 목탁을 친다·죽비면 죽비를 친다, 무슨 뭐, 책장을 넘긴다··· 이런 게 전-부 ‘전’자[轉]에 다 포함되는데. 무엇을 이렇게 같이 보살과 더불어 함께하는고 하며는.
모든 깨달은 분들의. 모든 부처님들의 미묘한 법의 바퀴를 같이 굴린다, 이 말이야. 능히 같이 굴린다. 관세음보살만 중생들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관세음보살처럼 같이 함께 굴린다. 여기는 대원정진력구호가 그렇다는 거죠. 대원정진력주야신이 그랬다는 겁니다. 이게 이제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만이 해당되는 일이 아니죠. 우리 모두도 그렇게 돼야 됩니다. 그래도 마음에 그렇게 되려고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저--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무의식중에 그게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거예요.
앞에서 제가 전법활동 문제를 서론에 말씀을 드렸는데 바로, 여기에 내용이 그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참··· 부처님을 이야기할 때. 그 분은 길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길에서 사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다. 한번도, 태어난 것도 편안하게 태어나지도 못했고. 사신 것도 편안하게 사신 적이 없고. 중생들에게 어떻게 하더라도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평생을, 돌아다니면서 교화활동을 폈고. 그러다가 끝내 열반에 든 것도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가신 게 아니라 그저 길에서 가시다가. 교화활동을 하러 길에 가시다가 그렇게 열반에 드셨다고 하는 것. 참- 그 아름다운 열반이죠. 정말 좋은 열반이죠.
그 때 나이가. 3천년 전에 나이가 80이라면 이, 큰··· 보통 연령이 아니거든요. 참 건강하게 사셨고. 그러다가 크게 앓지도 않고. 잠깐 뭐,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앓다가 바로 열반에 들었다. 보통 복이 아니죠. 부처님이니까 당연하겠지만 보통 우리들의 삶과 연관시켜서 생각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죠. 그런데 그 생애를 전부 당신의 깨달음을 준비하고. 깨닫고 나서는 깨달음에 의한 진리의 가르침을 펴는데 모든 인생을 바쳤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값지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同覺이니 以等空智로 普入一切三世間故며
동각 이등공지 보입일체세간고
그 다음에 깨달음이 같다. 깨달음이 같다, 하는 것은 공과 평등한 지혜로. 등공지(等空智)로서. 공과 평등한 지혜[等空智]로서 일체삼세간에 널리 다 들어간다. 보살들이 그렇고 보살들과 함께 대원정진력구호도 그렇고. 또 우리도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할려며는 사실은 그 공성(空性). 존재의 공성을 이해해야 됩니다. 이게 첫째 우리가 터득해야 할 지혜예요. 내 인생의 공성·내가 쌓은 어떤 업적에 대한 공성··· 공(空)이라는 거지요. 또 나하고 가장- 가까운 모든 사람과 명예와 재산과 부귀와··· 이런 것들도 실상은 공(空)이라고 하는 사실. 섭섭하지. 공(空)이라고 생각할려니까. 애지중지 아끼고 정말 피땀흘려서 모아놓은 재산이고 명옌데. 그게 공(空)이라며는 얼마나 애석하고 아깝고 허망하겠습니까.
그래도 할 수 없어요. 그대로 그것이 공성인 걸 어떡해. 그 본성이, 실상이 공이라. 그거 이겨낼 장사는 아무도 없어요. 그거 거역할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걸 깨닫는 거, 그게 좋은 지혜라. 등공지(等空智)라고 했잖아요. 공과 동등한 그런 지혜[等空智]로서 일체삼세간에 널리 들어간다. 이게 그들의 깨달음과 이 대원정진력구호의 깨달음이 같고, 우리도 결국은 그들과 같아져야 된다.
이 삼세간(三世間)이라고 하는 것은. 기세간(機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그래요. 세상. 이러면. 불교에서 이런 불교는 참 뛰어납니다. 어떤 철학에서도, 어떤 종교에서도 이런 뛰어난 분류법은 없어요. 세상, 하며는 몇 개의 세상이 있느냐. 기세간(機世間). ‘그릇 기’자[機], 세간(世間)이라고 하는 세간, 있잖아. 그릇은 뭡니까. 물건을 담는 거죠. 이건 이제 지구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지구를 기세간(機世間), 그래요. 우리가 모두 지구에 담겨 있잖아요. 지구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거라. 그릇이 오염되며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음식물도 썩는다고요. 그러니까 좋은 음식을 담을 때는 그릇을 깨-끗이 씻어야 되요. 씻고 소독하고 그래야 돼요. 씻는다고 그게 다 씻어지는 게 아니니까 소독을 잘 해야 된다고요. 그래야 그 음식을 담아 놔도 그 음식이 보존이 잘 되는 거라. 우리가 활용하는 그 음식 담는 그릇도 그런데. 우리 생명이 담겨 있는. 모든 생명이 담겨 있는 이 지구라고 하는 그릇. 이걸 일찍이 기세간이라고 그릇이라고 표현한 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이걸 그릇이라고 했거든요. 우리가 사는 환경을. 지구와 환경을 전부 그릇이라고 했기 때문에. 요즘 환경운동에 대해서 얼마나 활발히 들고 일어납니까.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걸 이제 하나의 세간, 그랬어요.
그 다음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중생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큰 세상이라. 그것이 사실 주(主)지. 중생들의 삶이라고 하는 게, 이제 사실은 이제 주된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래요.
그 다음에 성인들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무시 못 하지 않습니까. 무시 못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이 불교라고 하는 거, 또 경전 공부라고 하는 거. 이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 아니면 조사스님들의 깨달음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세상이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그렇게 부릅니다. ‘지혜 지’자[智], ‘바를 정’자[正], ‘깨달을 각’자[覺].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이 세상에 다 들어간다. 등공지(等空智)로서. 공과 같은 지혜로서. 그러니까 기세간이 어떻고 중생세계가 어떻고 깨달음의 세계가 어떻든 간에. 이 공과 같은 지혜가 있다며는, 등공지(等空智)가 있다며는 이건 겁날게 없어요. 다- 들어가고 다- 알 수 있고 다 파악할 수가 있고 다 함께 할 수가 있는, 그런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대원정진력구호가 다른 보살들과 같이 그렇게 그런 세상에 들어간다.
同根이니
동근
그 다음에 뿌리가 같다. 뭐가 그러냐.
成就菩薩淸淨光明智慧根故며
성취보살청정광명지혜근고
보살의 청정광명지혜근을 성취했다. 모든 보살들이 가지고 있는 청정한 광명 지혜. 지혜를 흔히 광명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죠. 어떤 경전을 봐도. 지혜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게 아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가지고 드러내서 표현하려니까. 세상의 것으로 표현하고 비유를 해야 되는데 빛이라 는게 제일 근사해. 우리 정신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지혜를, 그런 게 빛으로 표현하면 좋죠.
그 지금 이렇게 낮인데도 불을 많이 켜서 더- 밝아졌죠. 여기 만약에 어둡다며는, 아무 일도 안 돼죠. 책도 못보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물건이 있는지, 부딪치는지 부딪쳐서 다치는지 어떤지 전혀 모릅니다, 캄캄하면. 그런데 빛이 있음으로 해서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잘 안 다치고 걸어갈 수가 있고 옆에 사람에게 상처 안 주고 잘 지나갈 수가 있어요, 빛이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고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이 지혜가 없으면요, 곳곳에 상처투성이고 온갖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그 문제가 부딪쳐서 내가 어떤 아픔을 당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고 그럽니다. 그게 지혜가 없어서 그래요.
그러면 우리가 지난날. 어!떤 이유에서든지. 내가 잘못해서 상처받았든지.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든지, 아니면 정책이 잘못돼서, 국가정책이 잘못돼서 내가 상처를 받았든지. 뭣 때문에 상처를 받았든지 간에, 일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지혜가 없었다,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혜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제 책임은. 책임이랄 것도 없습니다마는.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혹 탓할 수도 있어요. 세상을 탓하고 정치를 탓하고 남을 탓하고 이웃을 탓하고 자식을 탓하고··· 뭐, 등등 탓할 거리가 있지마는. 그것도 내가 좀 봐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고. 사실은 탓할 일이 아니예요. 일차 책임, 이차 책임, 삼차 책임··· 모두가 내 자신이 지혜가 없어서 그렇다, 어리석어서 그렇다. 그래, 어리석음은 어두움으로 비유하고 지혜는 빛으로 비유하고, 그러죠.
길이 좁고 오르막이고 내리막이고, 그거 뭐, 탓할 게 있습니까. 빛이 있고 내 눈이 밝으면 그거 아-무 상관없어요. 오히려 오르막 있고 내리막 있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가기가 좋다고요. 어디 산책하는 길. 등산하는 길도 오르막 있고 내리막 있고 돌길이 있고 물길이 있고···, 이러면 더 가는데 더 재밌고 좋잖아요. 그게 탓할 일이 아닌 거야. 그런데 어두우며는 이제 그런 모든 조건들이 전부 상처받을 장애요소 밖에 안 돼. 전부 내가 상처받을 요소가 된다고요. 오르막 내리막, 무슨 옆에 나무 있는 거, 벽이 있고 돌담이 있고··· 뭐, 하는 거, 이런 것이 전-부가 요소가. 캄캄하면 내가 가서 부딪쳐서 상처받을 일이야.
그 세상은 사실은 어떻게 보며는 복잡하고 힘들고 어렵고 하는 게, 오히려 살아가는데 재밌고, 살만한 가치가 있기도 하지요. 단 지혜만 있으면 그런 것이, 어려운 환경. 세상이 살기가 어렵고 세상이 어떻고 하는 게, 그게 오히려 아름답고 재밌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은 지혜만 있으면. 잘- 보고 해결하고 이리 피하고 그렇게 해결해 나가면 재밌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일이 없다면 그건 아주 심심하고 재미없는 인생이잖아요. 그와 같이 끊임없이 불교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자비의 종교라고 하지만 사실은 지혜를··· 거의, 8,90% 지혜를 강조하지요. 지혜가 있을 때 자비도 생명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광명지혜의 뿌리를 성취한다. 빼놓을 수 없는 거죠.
同心이니 善能修習無碍功德하야 莊嚴一切菩薩道故며
동심 선능수습무애공덕 장엄일체보살도고
마음을 같이 한다. 잘 능히 무애공덕을 수습한다. 닦아서 일체 보살의 도를 장엄한다, 그랬습니다. 걸림없는 공덕. 이게 무슨 공덕에 걸림이 있고 없고 하는 게 아니죠. 요는 내 마음에 걸림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이제 공덕에도 걸림이 있고 없고 하는 게 돼 버립니다. 내가 어떤 좋은 일을 했다. 그러면 거기에 내가 예를 들어서 익히 아는 대로, 상을 낸다든지 생색을 낸다든지 그 뭐, 자기 소유라고 해서 고집을 한다든지, 주장을 한다든지···. 그렇게 되며는 그건 당연히 걸리는 거죠. 걸리게 돼 있어요. 근본을 알고 보며는 그렇게 주장할 것도 아니고 상을 낼 일도 아닌데 그것도 역시 어리석고 못나서 그런 거죠. 그래서 우리가 성인의 가르침을 자꾸 이렇게 공부하는데.
무애공덕(無碍功德)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되. 그게 수습(修習)이죠. 하되.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상을 내지 않는 것. 그게 일체보살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길을 장엄하는 거지. 마음 씀씀이가 밝지 못하고 좋은 일을 했다! 그럼 그건 보살도(菩薩道)라고 할 수가 없죠. 그건 세속 사람들의 일입니다. 세속적인 일이예요. 세속적인 일도 밝지 못하게 그렇게 내세우고 주장하고 뭐, 생색내고 상을 내고 그러며는, 다- 그게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 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장엄이 안 되죠. 그 사람을 장엄하는 일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장엄을 할려며는 상을 내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것. 그것이 제대로 그 사람을 장엄하는 게 되죠. 그래서 장엄일체보살도(莊嚴一切菩薩道)다. 무애공덕(無碍功德)이라야 일체보살도를 장엄하는 것이 된다. 그게 대원정전력구호가 보살들하고 마음이 같다. 그런 뜻이예요.
同境이니 普照諸佛所行境故며
동경 보조제불소행경고
경계가 같다, 그랬어요. 모든 부처님의 행할 바, 경계를 널리 비춘다. 부처님의 행할 바, 경계가 뭐겠습니까. 중생교화예요. 당신의 깨달으신 지혜에 의해서, 그 깨달음에 의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제불소행경(諸佛所行境)이라. 부처님의 행할 바의 경계라. 그걸 이제 환-하게 널리 다 비칠줄 안다, 이거죠.
보통 우리 중생들도 불교공부 조금만 해도 그건 알죠. 그러나 크게 감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부처님의 소행경(所行境). 부처님의 행할 바의 경계를 알며는 선뜻 나서죠. 우리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 알아도 아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거죠. 그냥 안다는 는 말 가지고는 표현이 안 돼죠. 그 정도 차이가 있으니까 제대로 가슴이 울릴 정도로 감동하는 게 아니니까 선뜻 나서지지 않는다, 자꾸 공부하며는 불법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고, 가치를 알게 되며는 부처님의 소행경(所行境). 행할 바의 경계에 대해서 동참을 하게 된다, 이런 설명입니다.
同證이니 得一切智하야 照實相海淨光明故며
동증 즉일체지 조실상해정광명고
증득함이 같다. 깨달음이 같다. 이 ‘증’자[證]는 깨닫는다 하고 뜻이 비슷합니다. 저 위에 ‘각’자[覺]하고. 그런데 일체지(一切智)를 얻어서. 불교에서 지혜라고 할 때도 뭐, 표현이 여러 가진데. 일체지(一切智)란 말을 잘 쓰죠. 일체지(一切智). 모든 것을, 일!체를 다 꿰뚫어 아는 지혜. 그런 뜻입니다. 이것도 하나하나 분석해서 아는 게 아니예요. 근본을 안다. 뭐, 꽃을 알고 줄기를 알고 잎을 알고 뿌리를 알고··· 이렇게 연구해 가는 게 아니예요. 근본을 알아버리며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게, 꿰뚫어 알게 된다, 이거죠.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아는 지혜를 얻어 가지고서 실상해정광명(實相海淨光明)을 비춘다. 실상의 바다. 청정한 광명을, 청정한 광명을 비춘다. 실상해(實相海)라고 하는 게 지혜를 알며는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알게 되는 것이고. 존재의 실상을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가, 일체지가 있다는 뜻이 되고 그렇습니다.
이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말, 참 좋은 말이고 중요한 말이죠. 저는 가끔 전문가의 안목, 이런 표현을 쓰는데. 사람이 됐든 세상사가 됐든. 또 하나의 어떤 물건이 됐든 간에. 전문가의 안목하고 비전문가의 안목하고는 달라요.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 또는 불법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분들은 모든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졌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 인생이 첫째고, 그 다음에 세상이죠. 인생과 세상의 실상을 꿰뚫어 아는 안목을 가졌다. 이를테면 여기에 고려청자 같은 찻잔이 있는데. 이건 제가 보기에는 고려자기 같애요. 그런데 전문가가 보며는 고려자기 근처도 안 갔다, 이거야. 전문가가 보면 그런 거야. 또 정작 고려자기를 가지고. 고려자기나 고려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백자 가지고 개밥그릇을 쓰는 거는 많이 봤어요. 저도 어릴 때 그게 뭔지 몰랐지. 그런데 그거 많이 봤단 말이예요. 그런데 그건 아마츄어 눈이니까 그 좋은 보물을 가지고, 몇 억짜리 보물을 가지고 개밥그릇을 쓰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이제 그거 수집하는 사람들이 스텐 그릇을 잔-뜩 사 가지고 다니면서 스텐 그릇 주고 그거하고 바꾸자 이러니까, 모르는 사람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웬 이렇게 빛나는 그릇이 있는고 하고는 그 개밥그릇 다 줘 버리고 스텐 그릇 몇 개 얻는 거야. 그게 비교가 되냐 말이예요.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그런 가슴 칠 일이 있는 거라. 나중에 알고 보니까 조선 백자라, 이거야. 그래 몇 억 짜린데 그게 스텐 그릇 하나하고 바꿨다 이거야. 시골에 그런 일이 많아요. 엄-청나게 많아요. 전문가의 눈과 비전문가의 눈은 그런 것입니다.
그 전에 제가 서울에서. 어떤 대학교 교순데 난초에 빠져서 난초를 아주 많-이 키워. 그 분 집에 가서 자다가 난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일본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나무꾼이 소 먹일라고 풀을 베어 왔는데 난초 캐는 사람이 보니까 그 풀 속에 자기가 평-생 찾던 난초가 거기 있는 거라. 그게 난초가 어떤 거냐하고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그게 야생란인데, 전설적으로 내려오는데 보랏빛이라고 그래요. 난 꽃 색깔이 보랏빛이고 뭐, 어떻고···이야기를 잔뜩 들은 거야. 근데 난초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사가 있어요. 책에도 실리고 그랬는데. 서울에 늘 제가 가서 자던 대학교 교수가 방에. 방이 이렇게 쭈욱 넓어요. 그래 스님들이 여럿이 가서 자고··· 거긴 스님들이 대개 들끓는 그런 방인데. 아예 객실로 내놓다 시피한 그런 집이더라고. 그래 스님들이 여럿이 자고 그랬는데 제가. 마침 관심이 있어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그러다가. 마침 장등이라고. 사람들이 여럿이 자는데는 그러니까 불을 조그마하게 켜놓잖아요. 그런데 그게 보랏빛 불이야. 교수가 자기도 몰랐는데 이야길 하다 보니까 조그마한 등불이 자기 방에 하나 있는데 그게 보랏빛이야. 벌떡 일어나더니 아이구, 스님 저런 불빛 이었던 모양인가 봅니다, 하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 난초를 나무꾼은 뭣도 모르고 베 왔는데. 그게 몇 억짜리. 한 뿌리에 몇 억짜리야. 그 사람들은 촉으로 이야길 하대요. 한 촉에 몇 억짜리고 전설의 난초라고 이렇게 불릴 정도라. 그런데, 그 다음날 이제 나무꾼이 난초를 베 온 그 곳에, 벼르고 가 가지고 아-무리 찾아도 못 보겠는 거라. 몇 날 며칠을 찾아도 못 보고 결국은 못 찾고 돌아왔다, 하는 그런 아주 재미난 얘기가 있어요.
그래 전문가는 그걸 평생 찾아 나섰는데 비전문가 나무꾼은 그거 그냥, 산에 올라가면 쎄고 쎘는 거라. 나무로 막 낫으로 막 베다가 소 먹이로 준, 그런 정돕니다. 모-든 분야에 그렇다고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주 정말 값지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실상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또 사실은 어떤 입장에서는 너무 허망하고 형편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또 애지중지해서 뭣인냥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불보살들은요,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인고 하며는. 인생과 세상을 실상을 꿰뚫어 아는, 전문가의 눈을 가진 분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도자기에 대해서 전문가가 있고 난초에 대해서 전문가가 있고··· 스님들 행색도 전문가가 보는 것 하고, 일반 신도들이 보는 것 하고 달라요. 우리는 척 보면 저 땡초다 아니다 독살이 중이다 큰 절 중이다 저거는 선방 중이다 강원 중이다, 그냥 알아요, 우리는···. 어떻게 아냐고? 모르지··· 신도들은 모르는 거라. 아, 그 중이 그 중같고 먹물 옷만 입고 머리만 깎았으면 다 큰 스님이지 뭐, 어떻게 아냐고. 이건 눈에 보이는 거야, 우리 눈에는 환-하게 보이는 거야. 한 가지 힌트를 드리며는··· (대중 웃음) 걸망을 멨는데. 걸망을 바-짝 이렇게 감아 가지고, 가능하면 부피를 적게 해 가지고 중간에, 바짝 이렇게 끈을 조아 맨 사람은, 요건 제대로 된 중이야. 근데 중간에 끈을 안 매고 느슨-하게 해 가지고 위에 묶는 거 그대-로 이렇게 걸머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거는 백발백중 땡초야. 근데 그것만 가지고 또 판단하면 안 되지. 꼭 그런 건 아닌데 대개 보면 그래요. 정신, 그대-로 정신을 표현하거든. 동작 하나, 뭐, 옷 입는 거 하나, 여러분들 머리 매무새 하나까지 전-부 그 사람 마음이 표현된 거라. 그러며는 제대로 된 비구승은 걸망 하나도 바!짝, 조여 매 가지고 어깨 위에 탁! 달라붙도록 메고 다녀. 여차하면 들고 달릴 수 있도록 그냥··· (대중 웃음) 그런데 탁발 다니는 땡초들은 절대 안 그래요. 그렇게 안 하는 거라. 느슨-하게 해 가지고 끈도 없어. 끈도 없고, 본래 달려 있는 그거만 이렇게 하면 그 저··· 걸망이 밑에 추욱-, 쳐져 가지고··· 그런 걸 메고 다녀요. 그거 하나에도 정신이 그대로 나타나잖아요, 그래 아는 거지 뭘 알아. 그래, 옷 입은 거 하며 걸음걸이, 이런 데 그냥 나타나요, 뭐··· 신도님들 모르지 그거··· 밥은 다 잘 알겠지.
그 전에 성철 스님은 참 음식이 단촐했거든요. 그래 가지고 밥 한 수저 딱, 뜨면 너 임마, 여기 밥솥 밥 짓다가 두 번 열었지? 그래, 시자가 있다가 아구, 스님 어떻게 압니까? 그거, 밥솥을 한 번 열었는지 두 번 열었는지 아니면 안 열고 끝까지, 밥 풀 때 열었는지 그냥 알아. 그거 알죠, 여러분들? 모르는가··· 모르면 아직 프로 주부가 아니구먼. 그 정도예요. 미세하기, 섬세하니까 그 음식 냄새를 맡는 게··· 그런데 밥 하다가 이렇게 옛날에는 장작 때다가 이렇게 푸욱- 넘어 버리잖아요, 그거는 나도 알아. 넘긴 밥하고 안 넘긴 밥하고 그거 모르는 바보는 없지. 그거는 그냥 먹어보면 알지, 아무라도.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죠. 이야기가 딴 데로 많이 나갔구만. 어쨌든 이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건데. 이거 참 중요한 거예요. 뭐든지 실상을 우리가 알려고 하는, 그런 자세 필요하다···
첫댓글 어느 법우님의 물음에 덜컥 녹취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입법계품까지 왔습니다. 부처님과 그 법과. 그리고 그 가르침을 이어가는 수많은 스승들께 지심귀명례하오며 시방세계 모든 중생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발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지심귀명례...()()()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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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행복한 공부 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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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녹취해 주신 공덕을 찬탄합니다. 스님의 강의는 여기서 일단 숨을 고르시려나 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 합니다
내가 상처받은 것은 내가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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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간(機(器의오자)世間).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