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 들고 한강 갑시다~~~

[한건수]

폭우에 강물 뒤집히자 장어 낚시꾼들 물때 만나 "일당 벌자" "보신하자"
'목' 좋은 곳 수백명 북적

"왔다! 왔어!"

13일 오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철교 밑 한강 둔치. 4m 길이 릴낚싯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직각으로 휘더니 부르르 요동쳤다. 두 손으로 낚싯대를 움켜진 김형진(47·건설공사 일용직 인부)씨가 상체를 뒤로 젖혀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걸렸다! 힘 좋다!"

김씨는 낚싯대 아랫부분을 가랑이 사이에 고정시키고 천천히 낚싯줄을 감아 올렸다. 구릿빛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고, 관자놀이에 새끼손가락만한 핏줄이 섰다. 황토색 강물 속에서 등이 시커멓고 배가 하얀 장어가 튀어 나왔다. 강가를 산책하던 사람들과 주변 낚시꾼 10여 명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50㎝ 길이 장어는 아스팔트 둔치 위에서 몸을 튕겨 어른 무릎 높이까지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김씨가 장어를 움켜잡았다 싶으면 미끄덩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김씨 손에 남은 미끈미끈한 점액에서 비린내가 물씬 났다. 날뛰는 장어 꼬리에 맞느라 김씨 팔뚝은 회초리 맞은 것처럼 벌겋게 자국이 났다.

흰 운동복을 입고 조깅하던 중년 부부가 김씨에게 다가와 흥정했다. "방금 잡은 장어 얼마예요?"

김씨는 유유자적 느긋했다. "다른 데서 알아보세요. 이미 팔기로 한 사람이 있어요."

여름 비로 불어난 한강에서 민물장어 낚시가 한창이다. 이날 오후 강태공들이 서울 양화대교~당산철교~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1.5㎞ 길이 둔치에 몰려와 수백 대의 낚싯대를 1~2m 간격으로 빽빽하게 세웠다. 먹구름 아래 흙탕물이 된 강물이 둔치 바로 밑까지 불어나 콸콸 흘렀다. 그 속에 통통하게 살진 장어들이 뛰어 노는 것이다.

국산 민물장어는 한강, 임진강, 금강 등에 주로 산다. 필리핀 심해에서 부화해 중국, 일본, 한국으로 헤엄쳐 오는 '앙길라 자포니카' 종이다. 장어는 주로 깊은 강바닥에 서식하지만, 물이 불어 유속이 빨라지는 장마철에는 물살이 느린 강가로 헤엄쳐 나온다. 요컨대 장마철은 장어 낚시의 계절인 것이다.

▲ 13일 폭우가 지나가며 한강의 강물이 뒤집히자 장어 낚시꾼들이 물때를 만났다. 한강 당산철교 아래에만 수십명의 낚시꾼들이 모여 장어를 낚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한강에서 잡은 민물장어는 보통 무게가 400~800g쯤 나간다. 값은 100g당 1만원 선이다. 장어 1마리만 잡으면 4만~8만원을 거머쥘 수 있다. 하루 일당이 빠지는 것이다. 1㎏이 넘는 대형 장어는 값이 훌쩍 뛰어 15만원 선에서 흥정이 시작된다.

한강에서 만난 장어 낚시꾼들은 장어가 특히 잘 잡히는 '목'으로 가양대교, 양화대교, 방화대교, 당산철교 부근 등 7~8군데를 꼽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각 '목'마다 장어 낚시꾼이 200~400명씩 몰려 북적거린다. 한강 전체적으로 따지면 장대비가 쏟아질 때마다 최소 1000명 이상이 장어를 노리고 강둑으로 달려 나오는 셈이다.

당산철교 인근에서 낚시점을 운영하는 백진후(50)씨는 "다른 때는 온종일 낚시대를 드리워도 한강에서 장어를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장마철에는 하루 평균 2~3마리는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새벽에 한강 하류 지역 어민들이 몰래 서울 지역 한강으로 배를 끌고 와서 장어를 잡는 걸 봤다"는 낚시꾼도 있었다. 서울 한강에서 어업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불법 어업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낚싯대를 던진다고 모두 장어를 잡는 것은 아니다. 실력과 운에 따라 하루 20마리 이상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을 서 있어도 1마리도 못 잡는 사람도 있다.

이날 저녁 7시쯤 되자, 오후 내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던 먹구름에서 후드득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낚시꾼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비옷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하얀 비닐종이를 꺼내 비를 피할 임시 천막을 만들었다. 낚싯대 바로 옆에서 비를 맞으며 자장면과 짬뽕을 배달시켜 먹는 이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그래도 강둑에 늘어선 낚싯대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낚시 가방을 들고 둔치를 어슬렁거리며 끼어들 자리를 엿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장어는 야행성이라 밤에 더 잘 잡혀서다.

"어딜 들어와! 내 자리야!"

"자리 전세 냈냐!"

둔치 여기저기서 목청을 돋워 자리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났다. 이상돈(51·건설현장 인부)씨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손전등으로 낚싯대 끝자락을 비췄다.

"전쟁이야, 전쟁…. 장어 잡아 몸보신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재미로 나왔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제일 많은 건 '노가다'예요. 장마철엔 공사도 적고 그나마 비 오면 공치니까 장어 잡아서 일당이라도 벌려고 기를 쓰고 덤벼."

이씨는 친구 3명과 함께 전날 자정에 일찌감치 나와 자리를 잡고, 2명씩 조를 짜 6시간씩 교대로 비닐 천막에서 토막잠을 자며 장어를 잡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네 명이 합쳐 네 마리(3㎏)를 낚아 30여 만원을 벌었다. 일행 이중호(53)씨는 한기가 드는지 비에 젖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한마디 했다. "돈 버는 게 쉽나."

좀 떨어진 곳에서 만난 윤모(60)씨는 "직원 30명을 거느린 건설회사를 하다가 작년 이맘때 경기가 나빠져 문을 닫았다"며 "나 때문에 고생만 한 집사람에게 장어 한 마리 잡아주려고 나왔다"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정기섭(66)씨는 흠뻑 젖은 채 수심 어린 낯으로 지렁이 미끼를 갈아 끼웠다. "외아들이 몇 달 전 교통사고가 났어요. 한 마리는 잡아가야 고아줄 거 아냐."

취직시험에 번번이 낙방 중인 젊은이도 있었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전모(27)씨는 "집에 있으면 부모님한테 괜히 미안해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장어 잡아서 어머니 등산화라도 한 켤레 사 드리고 싶다"고 말하다 말고, 다른 낚시꾼을 향해 고함쳤다. "할아버지! 제가 던진 데로 던지지 마세요!"

축축한 어둠 속에서 나이든 누군가가 대답했다. "미안해!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아서."

[토마토]

지도 한번 나가봐야겠네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