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니 로프튼의 '부활의 날개짓'
지난 4월 23일 (이하 한국시간) 제이콥스 필드에서 벌어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간의 경기에서는 유난히 관중들로부터 환영받았던 화이트삭스 선수가 한 명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이곳 제이콥스 필드를 누비며 온갖 갈채와 찬사를 받았던 선수. 90년대 빛보다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며 인디언스의 전성기를 이뤄낸 장본인. 바로 이제는 인디언스 유니폼이 아닌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케니 로프튼이 그 주인공이었다.
올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1번타자로 출장중인 케니 로프튼은 90년대 가장 뛰어났던 1번 타자 중 한 명이다. 지난 1991년 로프튼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데뷔했으나 당시 포수로 출장하던 크레익 비지오의 2루 전향 때 비지오를 대신할 포수가
필요하던 휴스턴은 시즌 후 클리블랜드의 에디 터벤시를 데려오기 위해 전도유망하던 유망주 로프튼을 떠나보내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당시 휴스턴에 로프튼보다 훨씬 뛰어난 평가를 받았던 또다른 유망주 스티브 핀리 (現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트레이드를 통해 팀에 합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레이드 후에 로프튼은 클리블랜드에서 92년부터 내리 5번의 도루왕을 차지했고.
94년부터는 6년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고. 수비에서도
93년부터 4년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며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이자 중견수로 군림했다. 휴스턴으로서는 땅을 칠 노릇. 더구나 로프튼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에디 터벤시는 휴스턴을 위해 단 두시즌을 뛰며 .222 와 .250 의 형편없는 타율만 기록한채 팀을 떠났으니 속된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 이었을 것이다. 휴스턴은 91년 보스턴에서 제프 배그웰을 거저 줍다시피 얻어오는 횡재 이후 단 일년만에
그에 버금가는 손해를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로프튼은 92년부터 클리블랜드의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활짝 열어 제쳤다. 특히 96년까지 5년간
그가 매시즌 평균 기록한 도루의 숫자는 65개나 되었고. 94년에는 .349 (4위)의 고타율과 리그 1위였던 160개의 안타. 도루 60개 (1위). 105득점 등으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MVP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었다 (투표 결과 4위). 또한 소속팀 인디언스를 5차례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킨 공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칠줄 모르던 그의 상승세도 세월의 흐름 앞에선 기가 꺽이고 말았다. 97년 잠시 내셔널리그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외도를 하고 다시 돌아온 이후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애틀란타에서 시작된 부상 때문이었을까. 빠른 발도 이제 더이상 예전같지 않았고 특히 지난 2년간 그의 모습은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는. 쓸쓸한 노장 선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3년간
그가 기록한 .301 → .278 → .261 의 타율과 .405 → .369 → .322 의 출루율은 확연히 전성기를 떠나보내는 평범한 보통 선수로의 몰락을 우려하기 충분한 성적이었다. 또한 30대를 넘긴 후부터 신체의 이곳저곳에서는 잦은 고장이 찾아왔다. 떨어져가는 성적과 많아져만 가는 나이로 인해 점점 버거워 지는 체력. 그리고 팀내
유망주들의 급성장 등으로 인해 인디언스는 더이상 로프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시즌 후 리빌딩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800만 달러의 높은 연봉을 받던 로프튼이 FA 자격을 얻자 마자 닥친 현실은 역시
냉엄한 프로 세계의 벽이었고.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로프튼에게 기회를 열어준
곳은 다름아닌 화이트삭스였다. 로프튼은 연봉 125만 달러에 성과급과 각종 옵션을 모두 합치더라도 지난해까지 받았던 800만 달러의 연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을 받고. 결국 선수 생활을 연장하게 됐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시즌초 화이트삭스가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사실이 그것이다. 90년대 최고의 리드오프였던 선수를 놔두고 애런 로웬드 라는 새파란 애송이를 주전 중견수로 기용하겠다고 밝힌 것. 이는 로프튼에겐 또 다른 큰 치욕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로프튼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시범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70타수 29안타로 타율 .414 를 마크한 것이다. 반면 애송이 로웬드는 .282 의 타율로 로프튼과 상당한 대조를 이뤘다.
이로 인해 결국 개막전 주전 중견수 자리는 스프링캠프 기간 중 혼신의 힘을 다한
노장 로프튼이 차지하게 되었고. 개막 이후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로프튼은 놀라우리만치 좋은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다. 5일 현재 .342 의 타율 (리그 7위)과 .423 의 출루율 (공동 5위)을 기록함과 동시에 득점 1위 (30점). 도루 1위 (14개)를 기록하며 리드오프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특히 14개를 기록하고 있는
도루 등은 전성기 때에 비해 훨씬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로프튼의 이러한
활약은 팀의 성적과도 직결됐다. 막강한 공격력으로 대표되는 화이트삭스는 팀타율 .295 로 1위 보스턴 레드삭스의 .298 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2위에 올라있기도
한데. 총 188득점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이는 로프튼의 활발한 출루와 함께 2번으로 출장중인 레이 더햄의 테이블 세터진의 몫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레이 더햄은 .310 의 타율과 .388 의 출루율을 기록 중이다. 테이블 세터진과 함께 폴 코너코. 프랭크 토마스. 매글리오 오도네즈 등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중심타선은 '나가면 불러 들인다' 라는 정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화이트삭스는 20타점을 넘기고 있는 선수가 5명이나 된다).
90년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는 막강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견제할 만한 팀으론
프랭크 토마스를 앞세운 화이트삭스가 유일했었다. 두 팀은 94년 지구가 새로 개편될 때 중부지구에 함께 묶인 후 항상 1 - 2위를 나란히
걸었던 팀이었지만 번번히 화이트삭스의 앞에는 인디언스가 있었을 뿐이었다. 화이트삭스는
94년 지구 우승을 차지한 이후 96년부터 99년까지 내리 지구 선두를 인디언스에게 빼았기는 2인자의 설움을 겪었었다. 물론 지난 2000 시즌에는 화이트삭스가 보기좋게 인디언스를 따돌렸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팀의 간판 프랭크 토마스의 부상 공백과 형편없는 테이블 세터진으로 인해 지구
3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올시즌 화이트삭스는 중부지구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미네소타 트윈스에 반게임 뒤진 2위를 달리고 있고. 이런 화이트삭스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선수는 프랭크 토마스가 아닌 바로 케니 로프튼이다. 90년대 번번히 화이트삭스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인디언스의 선수였던 로프튼이 지금은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인디언스를 따돌리고 있는데 앞장서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인디언스 팀의 간판이자 최고실력의 리드오프였던 로프튼은 팀으로부터 버림받을 당시만
해도 선수생명이 끝나지 않겠냐는 주위의 우려까지 받았지만 현재 그동안 겪었던
설움을 모조리 날려 보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로프튼을 이제 한물 간 선수로 인식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고 냉담했던 다른 팀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특히 화이트삭스와 함께 유일하게 로프튼에게 관심을 보였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단 몇십만 달러를 아껴보려다 화이트삭스에 빼았겼고 시즌 개막후 11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했으니 가장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팀일 것이다.
물론 현재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로프튼이 시즌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그의 많은 나이는 어지간한 성적이 아니라면 팀으로서는 큰 부담이 느껴지기에 충분할 것이며. 올시즌이 끝난 후 또다시 갈 곳을 잃고
방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선수생명이 쉽게 중단되리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이유는 현재 그만한 리드오프를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그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있다.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팀으로 부터 버림받은 현실과 고액 연봉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그의 몸값. 더이상 주전으로 봐주지 않는 주변의 냉담한 현실. 그 누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해도 극복해 내리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로프튼은 이 모든 걸 이겨내며 '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라는 단순한 진리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그렇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프로는 실력으로 모든걸 말해 주어야 한다. 쉽지 않았던 부활. 로프튼은 바로 '부활의 날개짓' 을 활짝 펴고 있고.
그런 로프튼의 모습은 진정한 프로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그가 더 훌륭한 선수로 보이나 보다.
부디 로프튼의 롱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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