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고아>를 통해 본 창의적 연극 컨셉2
-분신의 연극성, 코러스의 상징성
1. 죽음의 변주음과 핏줄 이어가기
한궐 장군의 배려로 포위망을 빠져나오지만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3개월 이내 낳을 아기 모두를 죽여 바치라는 왕명이 하달된다. 고아를 살려낼 방도는 없는 걸까. 속수무책이다. 관가에 자수하려는 정영, 대신 고아를 선비 공손저구에게 맡기고자 한다. 공손저구(이기봉 분)는 죽음을 각오한 정영(함건수 분)의 충의 정신에 감동한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역 제의, 두 사람 사이의 실랑이, 갈등하는 정영, 공손저구는 정영 대신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해서는 안 될 일, 그의 손으로 의인 공손저구를 죽여야 할 강제 상황이 발생한다. 정영의 고초와 수모는 이 때부터 시작된다.
죽음의 동기, 그 변주음은 충의를 지키려는 발상에서 시작된다. 이는 한궐 장군, 정영의 아내, 공손저구로 이어진다. 과연 이런 충의의 세계가 정욕의 흐름을 앞설 수 있을까. 관객 역시 진한 고민에 휩싸인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실존적 화두이다.
극도의 혼란에 빠지는 고아, 자신이 믿었던 우주가 송두리째 바뀔 찰나다. 생부 노릇을 해온 정영, 이 시대 진정한 의인이지 않는가. 수양아버지라 여겨왔던 도안고, 자신의 가족 모두를 죽게 한 원수이지 않는가. 왕명을 어긴 죄로 정영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왕명 수행 직책인 도안고, 고아가 보는 앞에서 정영을 죽인다. 왕이 경공으로 바뀌자 왕명 역시 바뀐다.
죽을 병에 걸린 도안고, 고아를 수양 아들 삼아 뒤를 이어가게 하려던 희망, 그 희망이 산산이 무너진다. 인과응보 행동으로 일관하는 도안고, 고아 앞에서 자결이 이루어진다. 뒤바뀐 세계, 뒤집힌 우주, 고아는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가야 할까.
분신 이미지 설정, 그리고 코러스를 통한 상징 이미지 구현 작업, 이는 이 작품의 매력이자 주요 공연 미덕이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불안 심리, 초조와 분열 심리, 그 대조 스펙트럼을 진지하게 성찰케 한다.
코러스를 통해 색다른 분신 이미지가 구현된다. 분신 이미지와 코러스와의 조합 전략, 그 상징의 의미가 앙상블을 이룬다. 인간 내면의 다중성 발현, 이를 위해 콜라쥬 작법, 해체 작법이 동원된다.
공연 설계진은 인물에게 고정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물의 관점이 교차하고 충돌한다. 해체주의적 구성 색조가 일부 선을 보인다. 도안고의 시각, 정영의 시각, 장희의 시각, 정영 아내의 시각이 변화무쌍하게 만나고 교차한다. 인물은 늘 고정되어 않다. 탕녀이자 악녀인 젊은 장희는 아기 해산을 통해 성숙한 어머니 인물로 변신한다.
명예와 권력을 휘둘렀던 젊은 도안고, 이제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상실감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인물로 변신한다. 현숙한 정영의 아내는 상실감에 젖어 자살하는 또 다른 인물로 분열한다. 정영의 평범함을 좇아 살아가려던 여린 고아는 도안고 장군처럼 강한 이미지의 인물로 변신, 분열한다.
이 처럼 각 인물은 늘 상황에 따라 정 반대의 캐릭터로 변신, 분열한다. 이를 위해 인물은 늘 잘게 분할, 해체된다.
2. 분신의 연극성, 코러스 기법의 입체성
고아의 두 인물 분신, 고아의 두 표정이 이채롭다. 어린 고아(이강미 분)는 여성성, 어른의 보호가 필요로 하는 나약한 이미지로 변용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성인 고아(조원종 분), 한 손에 기다란 창을 들고 서 있다. 그 앞에 펼쳐진 문제, 이를 그는 당당하면서도 의연하게 바라본다. 이제 그는 스스로 독자적인 현존을 펼쳐가려한다.
고아가 강한 고아로 분열될 때 코러스 역할 역시 급변한다. 코러스 역의 무사들, 일제히 창을 들어 상대를 위협한다. 우호적 환경과 적대 환경, 그 급변 순간이 탄력적으로 창출된다. 해체주의 공연 작법과 상징 공간 설계 작법이 날씨줄로 연합하여 연극성을 발한다. 분열된 인물, 그 내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파열은 광기의 분출 유무로, 의도적인 정적 이미지 대조 사이클을 통해 구체화된다.
텅 빔과 채워짐의 무대 구성, 다양한 빛깔과 높이로 설계된 음성 색조, 해설과 밀고, 살육 행동의 변별성을 구체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코러스 연희를 향한 자연스런 리듬 발현, 봉과 인간 신체가 만나 빚어지는 상징 의미망, 광기, 그 절제와 분출, 그 변별성을 향해 설계된 역동성 넘치는 동작, 움직임의 속도와 진폭의 변화, 이를 통해 분열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진다. 한 개인의 분열은 또 다른 인물의 분열을 부추긴다. 그것은 어제의 집단을 형성하여 왔고 새롭게 변형, 분열된 자아들의 조합은 오늘 또 다른 집단 구성체로 변모, 발전한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 이는 전망 부재의 오늘의 상황, 모순투성이의 우리네 삶에 대한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이 연극의 미덕은 바로 이런 삶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철학적으로 성찰토록 함에 있다.
이 작품에선 수많은 죽음을 볼 수 있다. 장희의 자결, 정영 아내의 죽음, 한궐의 죽음, 공손저구의 죽음, 그리고 정영과 도안고의 죽음이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의 주검, 죽은 자의 머리, 이를 상기시키는 빨간 보자기가 무대 이곳저곳에 내팽개쳐진다. 죽어 가는 자, 자결하는 자, 배우들이 쓰러질 때마다 이 보자기가 무대 바닥에 나뒹군다. 시공 경계를 뛰어 넘어 고아는 지금 이런 죽음을 목격한다. 죽은 자들에 반응 정서, 이를 통해 그의 분열은 커지고 확장된다. 충의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 핏줄 살리기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상황, 그 축적, 반복의 상황이 관객의 각성을 촉구한다.
무대(박동우 미술)는 정사각형 빈 무대, 그 가장자리는 무대 높이 보다 30센티미터 정도 아래다. 코러스를 제외한 몇몇 인물은 조명 투사 상황에 맞추어 빈 무대로 등장한다. 극중 연희가 끝난 코러스나 배우들, 가장자리 무대로 빠져나와 북 연주 및 소리 효과 창출을 주도해 나간다. 인물 변신 및 분열 작업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유도하는 공연 처방이다. 이를 통해 철학적 사유 묘미와 품격이 우러나온다.
창을 들고 갈등하는 고아(조원종 분), 두 발을 넓게 벌리고 깊은 상념에 사로잡히는 고아, 그 배면에 무사 코러스들이 동일 이미지를 빚어나간다. 자신의 기존 철학 및 관점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상황, 의리를 저버렸다고 못마땅해 왔던 분, 그 분이 목숨을 던져 자신을 살리려 했던 의인으로 판명난다. 진실이라 여겨왔던 지난 과거가 허구로 판명된다. 혼돈에 처한 고아,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젊고 건강한 강한 고아, 보호가 그리운 여린 고아, 이 둘이 충돌한다. 사람 안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있어 왔다니..., 이제 충돌은 자신과 세상과의 대립이 아니다. 이제 충돌은 나약한 자아와 강인한 자아사이의 갈등이다. 엄마 장희 공주에 대한 실망, 죽어가면서 자신을 살리려 했던 성숙한 엄마 장희에 대한 사모의 정, 이 두 영역에 대한 상반된 반응, 고아의 내적 분열은 확장된다.
수양아버지를 닮아가고자 했던 마음, 그를 존경하고자 했던 마음, 생부 조삭과 자신의 가문을 말살하려 했음에 대한 실망, 이로 인해 불거지기 시작한 인물의 내적 분열과 갈등 과정, 이제 이게 문제다. 이제 이 커다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갈등을 부추긴 분들이 다 죽고 없다. 그분들의 죽음, 자신의 현존과 관련성이 있다. 조씨의 후예로서의 새롭게 분열된 자아, 그리고 이제 고아의 신분으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 이를 통해 재탄생될 자아, 뒤집힌 관계로 인해 파생된 제2, 제3의 자아, 듣지 못했던 귀, 보지 못했던 눈, 이제 새롭게 거듭나야한다. 진한 회한과 성찰이 이어진다. 텅 빔과 홀로 있음의 이미지, 그 여운의 판타지, 이를 상기시키는 선율이 관객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