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1회 강진 수인산 산행안내(9월7일)
수인산(561.2m)은 강진군 병영면과 장흥군 유치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막기위한 수인산성을 비롯 조선시대 병마절도사가 있던
국방상의 요충지이다.
수인산의 억새 감상지는 조릿대와 어우러져 황금 벌판을 이루고 있는
천평 규모의 정상부이다.
또한 날만 좋으면 정상에서 무등산과 지리산, 천관산 그리고 월출산 등이
수인산을 성처럼 둘러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위 치: 전남 강진군 병영면과 장흥군 유치면
2. 산행 일시: 2008년 9월 7일(일요일)
3. 출 발 지: 진월동 해태마트앞 7시30분
광주역 광장 8시정각
운암동 문화예술회관 후문앞 8시10분
4.산행코스: 홈골 저수지 우측--성락산--병풍바위--홈골재--수인산--한바위재 --홈골저수지
5. 산행시간: 4시간 (B코스 있음)
6. 회 비: 男20,000원. 女18,000원 (입장료포함)
7. 준 비 물 : 중식,간식,생명수(충분히),윈드자켓(필수),여벌옷,우의
8. 산행 문의 및 신청
회 장 : 산나그네 (010-6246-7231)
산행대장 : 양동뫼 (011-9621-8851)
총 무 : 인 애 (011-624-9995)
*산행신청은 아래의 꼬릿말에다 꼭 달아 주세요^^
산행신청시 탑승지를 기재해 주세요[진월동은(진),광주역은(역),예술회관은(예)]
★ 산행참여시 예약은 " 필수 "이고 예약후 참석 못할시 취소는 " 에티켓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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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홈골제)에서 본 정상부근의 능선
나비 모양이지만 천연의 성곽으로 인공성곽과 연결되어 있다.
오르는 중에 가끔 보이는 바위의 괴이한 모양
한시간 정도 오르는 등산길이지만 돌산이다.
수인산성이다.
계곡을 가로 지르는 이곳은 물이 흘러 가도록 배수구가 있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서
계단식으로 올라가 산 능선을 한 바퀴 돌고 (약 6km)
이런 모양으로 산의 경사면을 따라 오른다.
고려시대 때 왜구를 피하여 보성, 벌교, 강진의 백성들이
이 성으로 피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능선의 등산로는 이 성곽 위로 타고 있다.
보호해야 할 우리의 문화재가 방치되어 훼손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일부 구간에 조릿대가 하늘을 덮어
너무나 아름답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정상에서 보는 장흥의 제암산
병영면을 내려다 본다
멀리 우측으로 영암의 월출산이 가물거린다.
성의 남문 자리에 있는 병풍 바위
12월의 눈 산행 때의 이곳 분위기는 잊을수 없는 풍경이였다.
이 병풍바위의 수직면에 새겨진
사람의 이름과 벼슬?
성에 어찌 물이 없을쏜가?
정상 부위에 우물과 커다란 맷돌과 깨어진 기왓장으로 만든 탑이 있다.
등산로를 벗어난 어느 능선에 이런 커다란 돌 하르방이 있어
참으로 자연의 조화가 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마을로 내려 오니 새로운 쌓기 방식의 돌담이 눈에 보인다.
이 방식은 하멜 일행이 여기 살면서 주민에게 일해 주고
먹을 것을 구한 듯 하다 한다.
빗살무늬로 한 줄씩 교대로 쌓은 이 방식은
성동리 이 지역이 유일하다 하니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고 있다.
마을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
하멜 표류기에도 이 나무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돌 하르방
이국적인 모습에 하멜이 고향을 그리면 만들어 놓고간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그 돌 하르방 뒤에 홍교라는 이름의 아치교가 있다.
숙종 때 만든 이 홍교는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기품있는 예술품이다.
병영성이다.
커다란 돌덩어리의 한면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생긴 모양대로 돌을 짜 맞추었다.
폭은 약 4m정도 높이 3m정도로
웅장, 정교함에 놀라울 뿐.
하멜일행은 1653년에 네덜란드 무역회사(동인도)에서
토목 기술자로 일본으로 무역선을 타고 가다
제주도 근해에서 풍랑을 만나
우리나라에 상륙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후 1656년~1663년까지 병영면에 살면서
굶주림과 병으로 일행들 거의가 죽어갔고
이때에 먹고 살기 위해 돌담을 쌓고 나막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중에 여수에서 7명이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쓴다.
이 표류기는 기행문이 아니라
조선에 억류 기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서이다.
강진 병영면 성동리
조그만 시골의 어느 마을이지만
그 유적으로 인해 역사 속에 지금도 살아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