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접니다!)
그자릴 피하곤 하는데요.
여러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자신의 사진속 모습과 실제 자기얼굴이라
고 기억하고 있는(유일무이한 방법이 바로 거울을 통해서 자기얼굴을
갖게되죠. 물론 맑고 깨끗한 물위나 유리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서...
라고 우기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요즘같이 문명화된 세상에서 이
런 방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간직하는 바부탱이는 없겠죠? ^^)
모습의 괴리 에서 찍어봐야 필름값이며 현상비만 아깝지 그리도 남에
게 당당히 보여 줄수 있는 용기도 없고 한데 굳이 인화지에 자신의 모
습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기때문이 아닌가 전 생각합니다 - 물론 제가
이렇습니다만.. 크크
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많이들 있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한다는 분들
과 위의 저같은 괴리가 없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들이 민답니다 헤헤
지금이야 저두 이제 나이가 좀 먹어선지 이 괴리가 많이 사그라 들었
다 란걸 느낍니다만...
각설하고 , 요아래 강형구님처럼 자신의 얼굴을 주제로 한 전시가 웬
지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노병사 희노애락의 감정이 녹아있는 작가의 자신의 얼굴을 보다 보
면 깊숙한 서랍장, 책갈피속에 숨겨놓은 우리 자신의 좀 못 나온 얼굴
들을 대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않을까 합니다 ^^;

작가 강형구(48)씨의 경기도 분당 지하 작업실.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의 시선이 찌를 듯 하다. 세상 만사에 납작하게 눌려버린 얼굴, 격
정을 못 이겨 고함을 지르는 얼굴, 고통을 참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은
얼굴, 늙고 지친 얼굴, 또 숨이 멎어버린 얼굴…. 모두 작가 자신의 자
화상이다. ‘자화상 전’(14~20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29~9월4
일 분당 삼성 플라자 갤러리)에 등장할 그림들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45점은 극사실주의와 포토 리얼리즘이 만나 마치 사진 그 자체,
혹은 사진의 충실한 모사와도 같은 효과를 낸다. 게다가 120호~600
호에 이르는 대형 작품 속 얼굴에 한올 한올 살아있는 머리카락과 수
염, 또 숭숭 뚫리고 패인 땀구멍과 주름살이 워낙 생생해 섬뜩하기도
하다. 강씨는 유난히 얼굴에 집착해 왔다. 지난해 첫 개인전에서는 유
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선보였다. 현재 미국 지미 카터 기념관에는 그
가 그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초상화가, 포항공대에는 아인쉬타
인, 올림픽 회관에는 손기정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강씨는 “얼굴
에는 희로애락 뿐 아니라 세월의 흐름이 담겨 있다”며 “인간 감정,
또 역사성과 사회성을 표현하는 데는 얼굴이라는 소재가 적격”이라
고 말했다. 강씨는 또 “렘브란트와 고흐 등 수많은 화가들이 자화상
을 그렸다”며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화가에게 본능적인 욕구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자신은 극사실 풍으로 선비 내면의 엄격
함을 그려낸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실감나는 거짓말을 위해 붓 자국이 나는 회화의 느낌을 모조
리 없애 버리고자 에어브러쉬를 사용한다”는 작가는 또 “캠코더로
늘 내 얼굴을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 속 얼굴은 늘 관객
을 응시하고 있다. 강씨는 “클로즈업 된 대형 얼굴로 관객에게 충격
을 주려 했다”며 “어찌 보면 관객과의 눈높이를 100% 맞춘 전시”
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초대형 자화상으로만 채운 전시’란 어쩐지
작품 보다는 이벤트를 앞세운 전시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자신의
얼굴만 그린 작가에게는 ‘나르시시스트 아닌가’ 라는 혐의도 따라
붙는다. 작가의 답변. “내 얼굴을 골랐을 뿐, 사실 얼굴이 아니라 감
정을 그렸습니다. 또 내 얼굴이 아니라 우리 얼굴을 그렸다고 보면 됩
니다.” (02)399-1671 정재연기자 / 조선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