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문익환
아버지
자유라는 말을 우리말로는 뭐라고 할까요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꽃 절로는 아닐 거구요
밖에서 누가 따 주지 않으면 예서 한 걸음도 못 나가지만
마음은 눈만 감으면 순식간에
아버지 옆에 올 수 있으니
이 마음이 자유인가요
하루 세 끼니 보리밥을 앞에 놓고
느끼는 고마움이 자유인가요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죽어 가면서도
낟알을 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땅
번개 번쩍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퍼붓는 소나기
사랑처럼 쏟아지는 햇빛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는 마음이 자유인가요
고마운 농부들 왜 한숨뿐인가요
밭고랑처럼 주름 깊은 몸과 마음
왜 그냥 눈물인가요
갈퀴가 된 손으로 숟가락을 꼽는
밥그릇들은 왜 그냥 피눈물인가요
그렇구나 아들아
자유는 그냥 아픔이다 슬픔이다
피맺힌 한을 날려 보내는 일이다
아픈 가슴들로 모여 와서
이 철조망을 뽑아내는 일이다
가서 쇠줄에 찢겨 터지는 살갗이다
그 상처 상처에서 돋아나는 핏방울이다
묻어 둔 지뢰라도 터지는 날이면
찢어진 살조각으로 흩어졌다가
봄이 되면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이다
끊어진 경의선 경원선을 다시 잇는 망치 소리다
아버지 그렇군요
철로를 타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철마 구르는 소리 그것이 자유이군요
암 그렇다마다
서울을 떠난 기차가 원산 함흥 청진으로 굽이굽이 돌 적마다
죽었던 함경도 사투리들 봇물 터지듯
왁자지껄 쏟아져 나오는 소리 그게 바로 자유란다
황주에서 꿀맛 같은 홍옥을 사 먹고
평양에 가서 냉면 두어 그릇 사 먹고
신의주에 가서 압록강 물에 참외를 씻어먹는 막 그게 자유란다
문석이 형님을 모시고 목포에 가서 소주를 받아 놓고
홍어 민어 광어 낙지 회를 먹으며
회포를 푸는 일도 정말 눈물겨운 자유겠군요
거기서 고깃배를 얻어 타고 여수에 가서
전복죽으로 아침을 때우는 자유도 여간만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겠군요
거기서 유람선을 타고 부산에 가서 동해 바다 끝으로 해 뜬 ㄴ 걸 보는 일도 기막힌 자유인 거구요
모두들 배낭을 메고 삼수 갑산 무산으로 해서
또 신의주 강계 혜산진으로 해서
우리의 얼 백두 영봉에 올라
얼음보다 차운 물에 몸을 씻고
쏟아지는 푸른 하늘을 한 아름씩 가슴에 안고
내려오는 일 그게 자유이군요
그보다 먼저 더 큰 자유가 있구나 아들아
무덤에도 못 묻히고 조국이 된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앞장을 서고
나같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무덤을 열고 나와 뒤따르고
너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뒤에 서서
휴전선에 모여 와 풍물을 잡히고
사흘 낮 사흘 밤을 춤을 추다 추다
내편 내편 없이 무너져 쓰러지며 쏟는 눈물
풀잎에 이슬로 맺혔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굴러떨어져
온몸으로 땅을 적시는 노래만큼
큰 자유가 또 어디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