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문화일보의 기사 헤드입니다. 다 아시다 시피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벌어진 삼촌(KCC의 정상영회장)과 조카며느리(정몽헌 회장의 미망인 현정은 여사)의 지분경쟁은 삼촌의 완승으로 결판이 났습니다.
KCC는 정상영회장의 개인지분과 (신한 BNP 파리바 사모펀드 포함)과 더불어 현대종합금속등의 기타 우호지분을 포함하여 44%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보하여 현대엘리베이터 산하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택배등의 현대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현대그룹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창업주 왕회장의 사고를 이해해야합니다. 유교적 사고관으로 경영철학을 일군 왕회장은 철저하게 유교적 전통을 기업경영 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장남이 사업을 일구어 사업을 확장하면 그 성과를 분배하여 동생들을 분가시키는 형식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왕회장과 그 형제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현대는 아시다시피 창업주 왕회장 (정주영 회장)이 일군회사입니다. 맏이였던 왕회장에게 현대를 창업할 당시에 유능한 참모 역할을 한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 동생분이 바로 정세영 회장 (현재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입니다.
정세영 회장은 미국에 유학 중이던 시절 현대자동차를 만들고 도와달라는 형님의 부탁을 받고 그때부터 왕회장을 도와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 분입니다.
이분의 별명이 바로 그 유명한 포니정입니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분의 노력과 애착이 어느 정도 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현대자동차를 장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주라는 형님 왕회장에 명령에 일언반구 반항도 없이 "현대자동차 대신 현대산업개발 같은 좋은 회사를 물려준 형님에게 감사 드린다"라며 울음을 터뜨린 일화는 그분이 형님인 왕회장을 얼마나 신격화(?) 했는지 알만한 에피소드입니다
또 왕회장의 동생으로 한라그룹의 정인영 회장이 있습니다. 이분은 왕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이자 현대가 조선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현대의 역사를 같이 출발한 동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분은 왕회장과의 관계는 앞서 정세영 회장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입니다. 현대중공업의 전신이 현대양행을 두고 형제간에 다소 소유권 분쟁이 있었습니다.
정인영 회장 생각으로는 내 땀과 정력이 들어간 회사인데 형님이 그 점을 인정 안 해준 것에 대해서 다소 섭섭했나봅니다. 이것을 두고 한동안 이 두사람 사이는 아주 냉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두사람 다 늙은 노인이 된후 부터는 다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월이 흘러 두사람의 사이에 다시 온기가 흘렀다고 합니다. 한라의 정회장이 중풍으로 쓰러지고 나서 초인적인 의지로 다시 재기하자 두 노인네는 드디어 감격의 화해를 하게됩니다.
그 밖의 동생으로 성우그룹의 정순영회장이 있고 이번 현대그룹의 지분경쟁을 승리한 KCC(금강고려화학)의 정상영회장이 있습니다. 두사람 모두 현대에서 출발하여 왕회장의 도움으로 현재의 그룹을 만든 것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튼 "아버지는 당신이 하신 것처럼 동생들을 책임지고 분가시키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새벽 4시께면 나를 깨워 농토로 데려가셨다” (정주영 명예회장 자서전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이 말처럼 왕회장의 형제들은 부모와 동급으로 취급받던 맏형 왕회장의 권위로 지금의 입지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라고 해서 과거 1. 2차 왕자의 난과 동급으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일단 현대그룹은 이제 과거와 같은 규모가 아닙니다.
1.2차 왕자의 난을 거치고 난뒤 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 그룹(현대/기아자동차, 현대 모비스, INI스틸등)과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현대 해상화재보험등이 계열 분리되어 현대와 지배권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현대의 경영난으로 현대그룹의 모체라고 할 수있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가 붕괴하여 채권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이제 현대그룹에 남아있는 것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현대택배등 뿐입니다.
자산순위로도 재계서열 10위권대 안에 들지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 쪼그라든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있는 가라는 것이 세간의 궁금증으로 노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왕회장의 유훈통치인 "대북사업"이 어떤 식으로 계속될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번에 현대그룹을 인수한 KCC는 앞으로 대북 사업에 과거처럼 무한정 투자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사실 대북 사업을 현재 대표하고 있는 현대아산의 대주주는 지분의 40%를 가지고 있는 현대상선입니다.
현재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중에 유일하게 남은 알짜회사입니다. 경기회복에 따른 물 동량 증가로 인하여 전 세계적인 해운운임이 3배이상 오르고 있는 형편에 현대상선의 매출과 이익회복은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잇습니다.
올해 3사분기에만 대략 1800억의 매출이익이 발생했습니다. 현대상선이 흑자구조로 전화되어 과거 부채를 모두 상환하고 관리종목에서 탈출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입니다. KCC도 이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대상선의 턴 어라운드를 발판으로 유동성을 확대한 후 그것을 발판으로 과거 현대그룹의 명예를 다시 회복하겠다라고 야심차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목표에 제일 리스크로 자리잡는 것이 바로 대북사업의 투자문제입니다. 현대 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의 적자규모는 지난 2000년 1288억원에 달했고, 2001년 511억원과 지난해는 88억원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적자가 다시 306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금강산 관광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오히려 현대아산의 적자는 커집니다. 이것은 대단한 모순입니다. 2002년 금강산 관광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자 현대아산의 적자폭이 88억원으로 감소했으나 올해 정몽헌회장의 사망이후 금강산 관광의 관심이 다시 확대되자 오히려 상반기에만 다시 적자폭이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의 대북 사업 특히 금강산 관광이라는 것이 이래서 어렵습니다. 대북 사업을 가속화하면 수익이 증가하여 과거 적자규모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자규모가 커지는 구조라는 것이 현대그룹을 인수한 KCC의 고민입니다.
KCC는 큰형님 왕회장의 정통성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체제를 무력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왕회장의 유훈인 "대북 사업의 중단"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KCC가 대북 문제에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는 향후 전개될 현대그룹의 임원인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KCC 모습이 완전히 대북 사업을 교착으로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CC의 액션에서 좀더 대북 사업의 긍정적인 면도 엿보게 됩니다.
사실 이제부터 KCC는 대북 사업에 관해서 좀더 적극적인 딜을 과감하게 북한에게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대북 사업에 관해 왕회장이 가장 잘못한 부분은 김정일을 흡사 박정희라고 착각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김정일과 박정희는 둘 다 절대권력으로 무소불위의 초법적 결정을 내일 수 있는 자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박정희는 자본주의식 정경유착을 이해하는 자인데 반해서 김정일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김정일에게 자본주의란 어떤 것이다 라고 알려주고 협상을 진행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수익성이 나지 않으면 한발도 전진할 수 없다"라는 것을 북한에게 이해시키는 액션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KCC의 발언과 제스처는 의미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또다시 현대아산이 진공청소기처럼 현대그룹의 유동성을 휩쓸고 지나가면 그건 대북 사업은 물론 통일과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남한 기업의 패망이라는 등식이 고착화되면 민족경제 통합을 통해 통일시대 개막이라는 과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 제가 다시 테헤란밸리의 온라인 게임회사로 입성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아실 그런회사입니다. 8개월여 야인시대를 접고 다시 테헤란로로 오다보니 일에 적응하느라 다소 서프의 집필에 소흘했습니다. 독자님들에게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좀더 가열차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