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如如)의 뜻 / 원순 스님
온갖 시비분별 사라진 마음자리
텅 빈 그대로의 마음이 ‘여여’며
깨달음이니 더 닦을 것도 없어…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사라진 텅 빈 마음자리가
변함없이 영원한 것을 ‘여여’라 합니다.
이 자리를 대주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문) 여여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여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고 변함이 없이 여여 하므로 ‘여여’라고 한다.
과거 모든 부처님도 이 여여한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며,
미래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닦아 도를 증득한 것이
이와 조금도 다를 게 없으므로, 이를 여여라고 한다.
<유마경>에서 “모든 부처님도 여여하고, 미륵보살도 여여하며,
모든 중생도 다 여여 하니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의 성품은 끊어짐이 없이 여여한 성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강설 : 여여한 마음 그것이 본디 우리 마음입니다.
<능엄경>에서 이 마음을 알기 위해 아난은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마음을 찾습니다. 아난은 일곱 군데에서 마음을 찾았다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모두 참마음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아난이 찾아 낸 것은 모두 망념으로 그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몸과 마음 등 세간의 모든 법은
허깨비나 이슬, 꿈과 같은 것으로 임시로 인연이 모여 있을 뿐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사라져 그 실체가 없으니,
공(空)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공(空), 공(空) 하는 것은
망념이 다 사라진 마음자리를 말하는데,
중생의 온갖 시비 분별이 사라진 이 마음자리가 부처님입니다.
이 마음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는 이 마음을 ‘여여’라고 하고,
‘참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여여한 마음에서 오신 분’이 바로 여래입니다.
시비분별이 사라져 여여한 마음이 드러나게 되면
그 마음이 드러나는 자리가 부처님이 오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여’ 그 자리의 참마음을 얻고자 하면,
먼저 이 세상 모든 것이 환(幻)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온갖 존재가 환인 줄 알면 그 자리에서 환을 여의는 법입니다.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실체가 환인 줄 알았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집착하는
중생의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환을 여읜 이 자리를 깨달음이라 하니,
여기서는 더 이상 집착할 깨달음도 없습니다.
중생들은 ‘허깨비와 같은
이 세상의 온갖 허망한 경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허망한 경계를 멀리 벗어나려는 마음도
집착에서 생긴 것이니 이 또한 ‘허깨비 같은 마음’이요,
여기서도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허깨비 같은 그 마음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것’도
‘허깨비 같은 마음’이 되니, 여기에서도 다시 더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멀리 벗어나려는 ‘허깨비와 같은 마음’을 벗어나고
또 벗어나서 더 벗어날 바 없는 곳에 다다르면,
곧 모든 ‘허깨비와 같은 그 마음’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입니다.
모든 ‘허깨비 같은 마음’이 사라지면
이 자리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참마음이 드러납니다.
‘허깨비 같은 마음’인 줄 알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나니
방편 쓸 일이 없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난 그 자리가
깨달음이니 점차 닦을 깨달음도 없습니다.
이런 참마음을 <금광명경>에서 ‘여여(如如)’라고 하니,
참마음은 참되고 영원하여 조금도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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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순스님은
<금강경오가해> <대승기신론> <치문> <중론> <명추회요>
<법보장경> 등의 해설서를 펴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
해인사·송광사·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조계종 교재편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송광사 인월암에서 안거 중이다.
출처 : 불교 신문